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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Nov 07. 2020

가족의 이야기를 책에 쓴다는 것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 독립출판 작업기 36편: 책쓰는 딸내미의 삶

부모님께서 책을 30만원어치나  가셨습니다.

기분이 좋아보였습니다. 원래 지갑을 그렇게 술술 여는 분들이 아닌데. 제가 첫 책을 냈을 때도, 두 번째 책을 냈을 때도 이런 흥겨운 느낌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사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그 모습을 보는 제 마음이 참 신기하더라고요. 좋기도 한데, 또 마냥 좋아하기만은 어려웠습니다.


언니는 민주가 가족의 치부를 드러내도 괜찮아?

제 첫 책 『94년산 박민주』를 읽은 이모가 그런 말을 엄마한테 했다더라고요. 참고로 그 말을 했다는 건 엄마가 알려주셨습니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다"라고 말하셨지만, 아무렇지 않지 않았던 거겠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부모님에게, 또 가족에게 꽤 부끄러운 이야기를 책에 썼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나로 살 수 없을 것 같았고, 한 번은 꼭 제 아픔을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그 이후 가족들이 제가 정말 많이 아팠다는 걸 알게 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말해야 할 것을 너무 늦게 말했다고는 생각해요.


"엄마는 언젠가 네가, 너의 책을 부끄러워하게 될만큼 잘 되면 좋겠어."

물론 첫 책이 나왔을 때 엄마는 이렇게 말씀하시기도 했죠. 그걸 들은 제 마음이 참 괴로웠는데, 요즘엔 이 말을 이렇게 저렇게 잘 써먹고 있는 걸 보면 2년이라는 시간이 저를 그냥 스쳐간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실은 곱씹고 또 곱씹었거든요. 저 말이 '엄마는 네가 부끄러워'나 '엄마는 너의 글이 부끄러워'가 아니라 그냥 그 글자 그대로 들어오게 될 때까지요. 제 안에는 그러니까, 어쨌든 죄송함이 있었던 거죠.


그러다 두 번째로 낸 책 『지난민주일기』는 너무 작고 귀엽고 익숙치 않은 포맷이라 그냥 반응이 없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저는 홍보도 거의 없이 1년 안에 생각보다 많이 팔고. 2쇄를 다음년초에 뽑을까 생각하고 있어서 나쁘게 생각하진 않지만. 부모님께서 누군가에게 자랑하기엔 좀 그랬던 것 같고(흠... 우리 꼬맹이 지난민주일기도 사랑해 주세요, 여러분)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은 자랑거리가 될 수 있었나 봅니다.

책의 크기나 볼륨이 익숙했던 거겠죠. 그래서 자꾸 책 사는 방법을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는 늘 서점에서 사시라고 하는 편이었습니다. 물론 저한테 돌아오는 건 적어지지만, 뭐랄까... 좀 얄팍한 생각일 수 있긴 한데 서점 사장님들한테 잘 보이고 싶었어요. 가족이나 지인의 힘을 빌려서라도. 독립서점에 그렇게라도 한 번 가보면 좋겠고. 별천지라는 걸 알게 되면 좋겠고, 그래서. 근데 이번 책은 많이 사고 싶어하시더라고요. 10권 이상을 사고 싶어하는 데 독립서점에 가라고 할 수가 없잖아요(최소 입고 수량이 5권이고 최대가 10권인데). 그래서 얼떨결에 팔다보니 30권이 되었습니다.


복에 겨워 호강을 하는 구나, 엄마찬스가 따로없다!

이런 이야기를 말씀드리면 '엄마찬스'라는 반응을 보이는 분도 있었습니다. 표현은 좀 마음에 안 들지만 맞는 말입니다. 감사한 일이죠. 최근에도 엄마가 돈 줄 테니까 일곱 권만 어느 주소의 어떤 분께 보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는 지인인데 책을 좋아하고,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분이라 보내주려고 한다고요. 저는 솔직히 좀 말리고 싶었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모두가 책 선물을 좋아하진 않거든요. 오히려 자기 취향이 분명해서 선물로 오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도 꽤 있고요. 그렇지만 엄마의 즐거움인 것 같아서 모른 척 포장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했죠.

'적어도, 우습게 보이지는 말자.

이건 엄마의 자랑이니까.'

글씨가 예쁜 편은 아니지만 펜을 꺼내들었습니다. 그 어떤 책방에도 보내지 않았던 손글씨 소개글을 쓰기 시작했죠. 엄마가 소개를 잘 해줄 여력은 없으셨을 것 같고, 책을 읽는 독자가 어떤 분인지 미리 재단하는 건 꽤 건방진 짓이긴 하지만, 엄마 또래의 어른들은 본인이 생각하는 '작가 같은 작가'의 '책 같은 책'을 읽고 싶어하시는 편이니까요. 지인의 딸이 쓴 책이고 기성출판물도 아니라면, 아무래도 기대치가 낮아서 그냥 감사히 받고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은 채 책장에 들어가지 않을지 염려되더라고요. 그렇다면 작은 성의라도 보이고, 조금이라도 더 이 책의 반짝임을 어필해서 펼쳐보게 하자. 뭐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잘 먹히면 좋겠어요.


지금 엄마의 자랑은 우체국 택배로 이동중입니다.

사실 전 별 기대가 없지만 엄마가 기뻐했으면 좋겠습니다. 아빠가 친구들한테 자랑하면서 책을 주었더니, 친구분이 아빠 통해서 후기도 전해 주시고, 제게 전화로도 책 주문을 했거든요. 솔직히 그 분은 제가 어릴 때부터 알았던 분이라 그정도의 반응은 바라지도 않지만, 그냥 어떤 피드백이라도 들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뭐, 받는 입장에서는 이런 기대가 부담되겠지만.



그때는 부끄러움이고, 지금은 자랑이 되어버린 글쓰기라니.

생각해보면 그래요. 첫 책을 낼 때의 저는 엄마가 '부끄러움'을 말하기도 전에, 이미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94년산 박민주』라는 제목에서도 보세요. 제 성이 박씨가 아닙니다. 근데 또 지은이가 '민주 친구'예요. 맞아요, "내가 친구한테 들은 얘긴데..."하고 쓰고 싶었던 거예요. 그러면서도 장르는 '취중성장에세이'입니다. 이거 보고 많은 분들이 술먹고 돌아다니는 에세이인 줄 아세요. 하지만 사실은 "어린시절 지속적으로 폭력에 노출되어 있던 인간이,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서 발버둥치는 이야기"가 그 골자랍니다.  근데 왜 취중성장에세이냐고요? 취한 척을 하고 싶었거든요. 제 정신이 아니라서 고백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제 첫 책은 정말 뭐랄까 부끄러움을 형상화한 책이나 다름이 없어요. 저는 이미 미친듯이 부끄러웠고, 그렇지만 "부끄러워도 이제 할 말은 해야 해!"라는 상태에 도달해 있어서 쓴 거죠.


그래서 이제는 별로 부끄럽지 않은가?

넵. 부끄럽지가 않네요. 부끄러움을 형상화한 책을 지금은 내라고 해도 못 낼 거 같아요. 정말 그런 상태였고, 그런 상황이었으니까 할 수 있었던 거잖아요. 당연히 부럽지도 않고, 그 시절로 돌아가서도 그걸 다시 낼 거 같냐고 물으면 "아니, 일단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부끄럽진 않습니다. 잘난 책은 아닌지 몰라도 잘 낸 책입니다.


흠,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어떠한 걸까, 이제 내 과거는 나에게?' 생각해보니 제가 『멀어서 가까워지는 것들』에 써놨더라고요. 어느 날엔가 과거를 떠올리면서 길을 걷다가 썼던 글에.


 무너지면서도 걸어나가서 지금에 온 거겠지. 햇볕처럼 잘 익은 마음으로 과거를 안아본다.


지금은 부끄러움보다는 안고 싶은 과거가 된 게 아닐까 싶네요. 아마도 나를 안고 싶어서, 글을 썼나봅니다.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군요. 나 이제 그런가봐. 축하하자. 근데 엄마는 지금 자기도 하고, 너무 간지러운 얘기니까 그냥 조용히 우리끼리만 알도록 합시다. 흠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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