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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주 Apr 15. 2022

타이포그래피가 처음이라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해요?

삐빅- 정상입니다. 모두가 그렇게 시작하죠.

좋은 폰트를 찾고 싶다고요? 텍스트를 더 잘 표현하는 방법도요? 이용제 활자 디자이너와 신민주 에디터가 함께 그 방법을 찾아봅니다. 첫째주와 셋째주 금요일마다 연재하는 좋은 폰트 가이드입니다.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책이었다. 일러스트든 사진이든 무엇이 들어가도 멋지긴 했지만, 내 눈을 잡아 끈 건 글자였다. 글자를 잘 쓴 책이 가장 멋있고 기억에 남았다. 어떻게 그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서 타이포그래피를 그저 구글링하기 시작했던 게 한 3년 전쯤이던가.


허나 타이포그래피의 세계는 너무나 방대했다. 내 머릿속엔 지면 위에 큼직하게 올라가 존재감을 드러내는 튼실한 명조 계열의 글자들이 보였고 그 지면을 만들고 싶다는 건 알겠지만, 어떤 물음표를 가져야 거기에 다다를 수 있는지. 나는 그걸 알 수가 없었다.


이런 막막함(무엇을 통해 어떻게 해야 할 지 알 수 없음)이 글자의 세상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을 가장 어렵게 하는 것 같다. 지금 글자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사람들이라고 크게 다르진 않겠지? 그래서 이번에는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글을 써 본다.



Write or Use, 활자를 어떻게 쓰고 싶은가


“막막하다면서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뭘 하고 싶은지가 중요하죠. 만들고 싶은 게 뭔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어요.”


활자를 그려서 폰트를 만들거나, 만들어진 폰트를 잘 쓰거나 ©오늘폰트

대체로 사람들은 1) 글자를 그리거나 2) 자신의 목적에 맞는 좋은 폰트를 발견해 알맞게 사용하고자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두게 된다. 관심을 가지고 난 뒤엔 나처럼 비전공자나 졸업생이라면 맨땅에 헤딩하듯이 구글링을 할 수도 있고, 학부생이라면 교수님께 물어볼 수도있다. 그렇다고 또 모든 교수님이 타이포그래피에 정통한 것도 아니고 타이포그래피도 범위가 넓으니 학생이 궁금한 것을 다 풀어주기 쉽지 않다. 그래서 교수님한테 오는 학생 중에는 ‘소개받고 왔어요'라고 하는 경우도 많다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았다면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요?”
“무엇이 좋았는지 가져와 보라고 하죠.”


사람들이 글자에 꽂힐 때는 저마다의 계기가 있다. 한글에 꽂힐 수도, 영문에 꽂힐 수도 있는데 이에 따라 배워야 할 것이 다르다. 관심사에 따라서는 한국에서 해결할 수 없어 유학을 가야 할 수도 있다(그러기 위해서는 각오도 남달라야겠지만). 


기호를 파악할 수 있는 어떤 편집물이나 글자를 가져오면 교수님은 그 글자체에 대해 이야기 해 준다고 한다. 만든 사람, 쓰임, 그리고 그 외의 역사적인 배경에 대해서. 그렇게 조금씩 당신이 글자로 하고자 하는 것의 정체를 알아내고 나면, 앞으로 어떤 것을 배워나가면 좋을지 가늠해 볼 수 있다.



폰트를 만들고 싶다고요? 레터링만으로 충분할 수 있어요.

©오늘폰트


큰 지면 위에 올라간 담백하고 당당했던 글자. 바탕색 위에서 하얗게 몸체를 뽐내던 그 글자. 나는 그게 너무나 멋지다고 생각해서(이를테면 백자를 보는 느낌?) ‘이거다!’라며 꽂혀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타이포그래피로 내가 원하는 지면을 만들려면 폰트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 건가. 아니면 폰트를 내가 다 그리거나, 그걸 못할 거 같으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면서 살아야 하나?’ 생각하며 막막해 했었다.


“그렇게 찾아온 분들에겐 레터링을 권합니다. 몇 자 그려서 될 일을 수 천자를 다 그려가면서 폰트까지 만들어야 할 필요는 없죠.”


폰트 제작엔 시간이 많이 든다. 년단위다. 교수님이 운영하는 한글타이포그라피학교에서도 1년 동안 배웠던 사람들 모두가 자기만의 글씨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 한 40명이 들으면 10명 정도가 자신의 글씨로 전시에 참여 할수 있을까 말까. 그렇게 결과물을 전시했다고 폰트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전시 뒤에도 짧으면 1년 반에서 2년 정도를 더 들여야 폰트가 나온다. 그게 한 서너명 쯤 된다. 그만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러니 시간과 노력을 덜 들이고 레터링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좋은 일이겠지? 그렇게 몇 자를 그리다 ‘아, 이대론 안 돼!’란 생각을 하며 무엇이 부족한 건지 파악해 폰트를 만들어 보는 것도 방법일 수 있고. 실제로 교수님은 ‘처음부터 폰트를 만들겠다고 찾아오는 학생은 드문 것 같다’고 하셨다. 


더해서 교수님 인터뷰를 진행하다 폰트를 처음 제작하는 분께 ‘어떻게 폰트를 제작하게 되셨나요?’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들은 말도 맥락이 같았다. 시작은 레터링이었으나, 끝은 폰트였다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이해되더라. 그냥 좋으니까 하는 거지. 더 붙잡을 수 있고, 붙잡고 싶으니까.



글자를 정교하게 배치하고 싶다고요?
(다양한 시선으로) 조판을 (많이) 해봅시다.

폰트를 잘 고르고 알맞게 사용하고 싶어서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을 가질 수도 있다. 편집디자이너나 콘텐츠 디자이너 혹은 콘텐츠 디자인까지 맡아서 하는 마케터, 에디터들에게 필요한 능력이다...(내 얘기다). 


이를 위해선 글자의 생김새를 보는 눈을 가져야 한다. 글자마다 구조와 공간이 있고, 그것들이 연속해서 나열되면 어떤 인상을 주는 판면이 만들어진다. 좀 예민한 사람은 폰트의 모양, 즉 글자체만 보고도 어느 정도의 공간을 쓰면 되겠구나 알 수도 있겠지만, 처음부터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오늘폰트

예를 들어 글자체의 구조와 공간에 따라 글줄 길이가 길어도 괜찮은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읽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활자를 많이 써 봤다면 그 감을 빨리 잡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단 조판을 많이 해 보는 것이 좋다. 똑같은 글자체로 다양한 글줄 길이에서 어느 정도가 읽기 편한지 봐야 한다는 거다. 글줄 길이뿐만 아니라 단과 단의 사이, 행과 행의 사이를 구분하기 위해 어느 정도를 줘야 하는지도 눈으로 보면서 파악하는 게 좋다.


“이런 건 디자인 학부에선 다 가르쳐 주나요?”

“대학에서는 제가 느끼기엔 가르쳐 주지 않는 것 같아요. 오히려 조금 더 특화된 외부 기관에서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대학에서 모든 걸 다 기대하긴 좀 어려워요.”


이 말이 지금 타이포그래피의 숲에서 헤매고 있는 당신에게도 약간의 위안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한다. 학부생도 헤매는 것이 타이포그래피라고.


“결국 스스로 직접 조판을 많이 해야 하는 군요?”

“많이 해보는데 그냥 많이만 하면 안 돼요. 혼자만의 세상에서 몰두하다가 주화입마에 빠질 수가 있어요. 조언자가 있다면 좋은 모습과 안 좋은 모습을 분간하고, 눈의 경험치를 계속해서 업데이트해 나갈 수 있죠.”


생각해보니 가끔 내가 좋아하는 것이 파격인가 아니면 창작자의 아집인가 고민될 때가 있던 거 같다. 내가 해놨을 때 좋지만 이게 좋아도 되는 건가 싶을 때도 있고. 그럴 때 엉뚱한 곳에서 헤매지 않으려면 누군가 옆에 있는 것이 좋긴 하겠다. 이상한 데서 자기만의 개똥철학을 공고하게 세우면 그게 더 큰 일일 수도 있으니.



보너스.
글자를 어디에 올려도 예뻤으면 하는 당신을 위한 팁

나는 늘어서 있는 베스트 셀러 표지를 보면 제목이 어디에 어떻게 배치가 되어 있는지, 무엇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건지, 그래서 이게 왜 좋은지를 생각해 보곤 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해서 교수님께 이런 니즈를 사람에게는 어떤 조언을 주시는지 물어보았다.


이 단락의 말미에 폰트 이름을 적어놨다 ©오늘폰트

“기본적으로 잘 그려진 글자는 어디에 가져다 놔도 예뻐요.”


글자는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인류가 다듬은 것이기 때문에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오랫동안 써온 글자체들도 그렇다. 그래서 근본이 있는 글자체의 아름다움에 주목해야 한다. 시대의 미감에 따라 미세하게 호응을 해오면서 점점 더 발전해 나갔던 그 흔적들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는 거기 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계속 다듬어온 족보 있는 글자를 써보면 알아요. 그냥 표지에 커다랗게 한 글자만 올려도 토를 달기 힘든 모양새죠.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드는 폰트만 올리려고 해요. 당연히 어렵죠.”


생각해보니 그랬다. 내가 본 글자들은 하나같이 클래식했다. 그래서 교수님은 책이 됐건 활자가 됐건 과거부터 시각 문화에 있어서 잘했다고 했던 것들, 공통으로 짚고 있는 과거의 결과물들을 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왜 모범이 되었을까 계속 찾아보고, 그 미감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결국 근-본, 근본이 중요했다.


©오늘폰트



타이포그래피에 접근하기 어려운 이유: 지도가 없다

‘아니, 이걸 꼭 누구한테 물어봐서 배워야 한단 말이야? 혼자서 익힐 방법은 없어? 뚜렷한 커리큘럼 같은 건 없는 거야?’

-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어쩌면 여기까지 모니터 너머로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방법이 있겠지’라는 기대를 나도 했는데… 그런 건 딱히 없고 그냥 배고픈 사람이 밥 짓는 거였다. 내가 타이포그래피도 그렇지만 전자음악도 건드려 보고 있는데, 둘이 되게 비슷하다. 지도 같은 게 없다. 그냥 선생님들 찾아가 보고, 많이 보고 뒤지고, 돈 들이고 깨지고, ‘이 길이 아닌가벼… 하지만 하고 싶은데… 그럼 어쩔 수 없다. 다시!'의 반복이었다.


©오늘폰트


‘그래도 혹시?’ 하는 사람들을 위해 교수님께 받은 자료가 있어 공유하려고 한다. 이건 10년 전을 기준으로 타이포그래피에 속한 주제들을 교수님께서 정리해 놓은 건데, 그중 일부만을 올린다(일부만 올릴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사이즈가 큰 자료였다). 이런 상황이니 타이포그래피를 교육하는 권위자도 자신이 공부한 부분에서만 전문가일 수 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타이포그래피를 공부했다고 하는 사람과 교수님이 대화를 하다보면 ‘응? 뭘 배운 거지?’라고 생각을 할 때도 많았다고 한다. 물어보면 분명 타이포그래피라는 학문 안에 있는 주제인데, 교수님과는 다른 주제를 파고들어 간 경우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원래, 타이포그래피는 맞춤형으로 공부하기 어렵다. 이것이 결론.



생각해보면 문자라는 건 아주 오랫동안 우리의 곁에 있었다. 학문의 깊이가 깊고 넓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는 아직 안 다룬 것들도 있을 거고. 그러니 당신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 것의 미스터리함에 감탄하며, 마음을 다잡아라.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반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대를 알려고 노력하고 어떻게든지 곁에 두기 위해서 이렇게도 시도해보고 저렇게도 시도해 보면서 될 때까지 하는 것뿐. 그러니까- 글자는 왜 예뻐서 이 난리일까. 하… 적당히 예쁘지.


인터뷰 이용제 활자 디자이너

정리 신민주 에디터

디자인 김민기 그래픽 디자이너


글자를 잘 그리고 싶고, 더 잘 쓰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막막하다면 
이럴 때 일수록 좋은 글자를 보고 투지를 불태워야 한다  ☞ 오늘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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