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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제이 Nov 01. 2024

선함과 자기 보호 사이 경계 찾기

지혜로운 경계 설정의 기술


"착하면 호구야."

이 말이 단순한 농담이 아님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내담자의 이야기가 그것을 잘 보여준다.


"처음에는 그저 제가 좋아서 한 일이었어요. 팀원들이 야근할 때면 저도 함께 남아 일을 도왔고, 동료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힘들어할 때면 제 일까지 떠맡았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이상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점점 더 많은 일들이 제게 몰리기 시작했어요. '너는 잘해주니까', '네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라는 말과 함께요. 처음엔 인정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깨달았어요. 제 친절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다는 걸요. 상사는 제 업무 능력을 인정하는 대신, 제가 모두의 일을 떠맡아주는 '편리한 사람'으로만 보더라고요."


이는 현대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패턴이다. 선한 의도로 시작된 행동들이 오히려 자신을 옭아매는 올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내담자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돈을 빌려달라고 했어요. 거절하기 어려웠죠. 그들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돈을 돌려받는 건 늘 힘들었어요. 심지어 제가 독촉하면 저를 나쁜 사람 취급했죠. 결국 저는 친구도, 돈도 잃었어요."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선한 본성을 불신하기 시작한다. 더 나아가 사람 자체를 믿지 못하게 된다.


"이제는 누가 다가오면 경계부터 해요. 혹시 나를 이용하려는 건 아닐까, 내 선의를 악용하려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먼저 들더라고요. 한때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는데, 이제는 새로운 만남이 두려워요. 언제부터인가 혼자 있는 게 더 편해졌어요."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서 열심히 일했는데, 오히려 그게 독이 됐어요. 점점 더 많은 일이 제게 몰렸고, 다른 동료들의 실수까지 제가 수습해야 했죠.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팀워크를 깨는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웠어요. 매일 밤 머리가 아프고, 불면증에 시달렸지만... 그래도 참았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많은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더 이상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않기로 하는 것이다. 선한 본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차갑고 냉소적인 태도를 방패 삼아 자신을 보호하려 한다.


"제가 정말 착한 건지, 아니면 그저 호구 같은 건지 헷갈려요. 이제는 제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착함이 호구가 아니라, 본성과 경계는 공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고, 그 선을 넘는 무례함에 '아니요'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상담을 통해 깨달은 게 있어요. 문제는 제 착한 마음이 아니었더라고요. 문제는 경계를 설정하지 못했던 거죠. 착한 것과 우유부단한 것은 달라요. 착한 건 선택이고, 우유부단한 건 두려움이었던 거예요."


'착함'과 '자기 보호'는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다. 오히려 건강한 경계선이 있을 때, 진정한 선의도 가능해진다. 그것은 마치 정원을 가꾸는 일과 같다. 울타리가 있어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듯이, 적절한 경계가 있어야 진정한 선함도 꽃필 수 있다. 자신의 본성을 지키되, 적절한 경계도 함께 설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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