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yer May 29. 2021

자, 우리 학폭에 관해 말해볼까?

이 이야기의 발단은 학교폭력이었다.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가장 마음이 가던 인물

주인공이 아니라,

이호진

<이태원클라스>는 학폭이 아니었으면 이야기가 전개되지도 않았을 이야기이다.

학교폭력으로 시작해, 완벽한 복수로 마무리된 속이 다 후련한 이야기.


그리고 아래는 위 사건에 비해 이야기 전개에서 중요도는 떨어지지만,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사이다를 부어준 에피소드.


학폭 논란이 여러 분야에서 뜨거운 감자(였)다.

몇 년 전에는 관련 책도 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적으로 크나큰 관심을 받기 전부터,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 전부터, 나는 학폭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초등학생 무리를 만나면, 남들 눈에는 '아이구, 발랄하기도 하지'하고 넘어가겠지만, 그 무리 속에서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아이가 꼭 보인다. 내 눈과 귀에는 확실히 감지되는데, 이걸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아마 내 경험이 이런 '감지력'에 한몫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도 학폭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가증스럽던 가해자들

대입 후, 전철에서 마주한 가해자들은 저마다의 잘못을 잊었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그때마다 메고 있던 무거운 노트북과 전공책이 든 가방을 면전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 후로부터 오랫동안 깊이 묵상하고 고민했던 문제이다.

나는 저들을 용서해야만 하는가? 그들은 기억하지도 못하는데?

그리고 이런 고민도.

나는 물리적으로 맞거나 찢기거나 몸이 상하진 않았다. 그러나 정신적 타격이 너무 컸다. 그런데, '맞지 않았으면 다행'이라거나 '물리적으로 다친 흔적이 없으면 그냥 넘어가'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 말들이 더 큰 상처를 냈다. 내가 경험한 것은 폭력이 아니란 말인가?

*혹시, 물리적 폭력이 아닌 정신적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이 글을 본다면, 내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그것 역시 폭력이다.
물리적이든 물리적이지 않든, 악의적인 따돌림과 소외감을 주는 말/행동은 폭력이다.
오히려 더 나쁜 짓거리라고 생각한다.
아주 교묘하고 영악하지 않은가? 가해자들은 '그냥 놀다가 그랬어요.' 하면 되지만, 피해자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로 남아 곪는다. 아주아주 오랫동안 아물게 하기 위해 애써야 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힘들다는 것도 아프다는 것도 모른다. "그래도 너는 다행이다, 야(안 맞아서/큰 사건으로 안 번져서 등)"라는 상처에 식초 뿌리는 말들을 한다. 몰라서 그러는 거니까, 그들에게 화는 내지 말고, 인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확실히 전해주자!


피해자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흔적이 남는다. 남들 앞에 나서지 못하는 소극적인 행동으로 자신을 맞춰갈 수도 있고(본디 적극적 성향인데 이렇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삶에 대한 불만과 불편함이 쌓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폭발한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리기도 한다. 무엇을 하든지 자신이 쓸모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 영향이 한 두 해만 이어진다고 할 수 없다. 아주 오래 남는다.


해결방안은?... 나도 잘 모르겠다.

경험자이긴 한데, 나도 아직 당장의 학폭에 대해 해결방안이 뭔지 잘 모르겠다.


그때 '도와준다'며 나름의 친절과 관심을 베푸셨던 어른들의 도움이, 사실은 문제 해결에 1도 도움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상담을 시켜준다고 하면, 왜 이런 걸 하는지 애들도 다 안다. 그리고 그 상담으로 돕고자 하는 학생을 '귀찮은 일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더 닦달한다. 더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더 영악해진다).

경험자가 자라서도 해결방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데, 안 경험해본 어른들이 어떻게 알맞은 해결방안을 생각해내고 실행할 수 있겠는가. 당시엔 되레 힘들어져서 원망도 많이 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들도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제도로 갖춰져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도와주려 했던 것 같다.

물리적 증거도 없으니 신고를 해도 크게 도움받을 상황도 아니었고.... 참.... 다시 생각해도 갑갑한 일이다.

*시간이 해결해준다는 말도 '현재 겪고 있는 자'에게는 일말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것도 되레 상처에 식초 뿌리는 느낌이다. 폭력에 시달리지 않는 미래의 삶이 상상되지 않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나중엔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버텨'라는 말이 과연, 실질적으로 유익할까?

과거의 한 부분에서 내가 그런 '조언이나 격려'랍시고 하는 말을 들을 때 든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

그럼 그 '나중'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하는 '지금'은 이렇게 망가져도 괜찮 고?

가정에서, 엄친딸/아들과 비교 금지!!!

그래도, 한 가지 '장기적인 해결 방안'은 생각해둔 게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 누구와 누구를 비교하는 말 금지. 부모가 아이 앞에서 누군가를 욕하거나, 괴롭히거나, 내가 누굴 눌러줬다든지, 누가 미워 죽겠다던지 하는 말보다는 좀 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라는 걸 숙지시키는 방향으로 자녀교육을 하면 도움이 많이 될 거라 생각한다.


현재 힘든 시간을 버티고 있는 당신에게

가장 최선의 방법은 환경을 벗어나는 것이다. 여건이 된다면, 사람들이 날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게 도움이 된다. 아주 많이.

*참고로 나는 중학생 때 힘든 시간을 버텼고, 고등학교는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갔다.
나를 못 괴롭혀 안달인 사람들보다 나를 생판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 더 편했다. 잊어버렸던 긍정적 성향을 되찾기도 했고, 긍정적 영향을 주는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그리고, 이미 그 시간을 지나온, 어떤 방식으로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나도, 당신들도, 피해의 경험이 있는 누구든지. "나는 이런 일을 경험했고, 그 시간을 지나왔지만, 이렇게 평안한 삶을 누리고 이렇게 현명하고 행복한 삶을 누린다"는 생생하고 확실한 증거가 되길 바란다.

오해는 없길 바란다! 꼭 증거가 되기 위해서만은 아니고, 힘든 시간을 이겨냈으니까 그보다 갑절의 보상을 삶 속 이곳저곳에서 발견하고 누리고 즐겁게 살아가길 바란다.

힘든 상황에 놓인 사람을 구경하는 군중이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도로 기민한 감각은 유지하기를. 그러나, 그 이상의 나쁜 기억들은 현재의 행복을 위한 거름이 되어 흔적도 못 찾기를. 그렇게 성숙하고 현명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기를/되기를 바란다. 나도 그렇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렇고. 정말 그러길 바란다.

*나는 최근에 마음이 편해졌다.
얼마 전까지도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우울하고,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달라졌다.
'지금, 정신만 그때로 돌아간다면 어떻게 하고 싶어?'라는 물음을 던지며 잠이 들었고, 줄곧 내 악몽의 배경이었던 그때 그 학교로 돌아갔다. 그 교복을 입고 비웃음과 노골적인 비난을 받고 있었다. 꿈인 걸 알면서도 아무것도 못하곤 하다가 우울한 기분으로 깨곤 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꿈에서 말과 행동으로 '나를 또 건드렸다간 뼈도 못 추릴 줄 알아라'라고 표출을 했다. 잠에서 깨고 나서 기분은? 퍽 괜찮았다. 그 후로 학교 꿈은 내게 악몽이 아니게 되었다.

**현실에서는 좋은 방법일지 의문이 든다.
어떤 사람은 하나로 묶은 자기 포니테일(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른 동급생에게 가방과 의자를 집어던지며 분노를 표출했고, 그 뒤로 그 반에서 아무도 자길 건들지 못했다고도 하는데...
내겐 신체적 상해가 없지만, 가해자에게 물리적 상해가 남는다면 복잡해질 수 있다.
이런 걱정을 하는 것도 참.... 마음이 안 좋다.

학폭으로 시작되고,
시원하게 복수 해준 이야기.

그래서 이 드라마, 이 이야기가 너무 고마웠다.

비록 가상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이런 식으로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


내 얘기로 돌아와 볼까?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도 있고, 꾸준히 연락을 한다. 각자 사는 곳이 견우직녀급이라, 이동을 자제하기 위해서 못 만나 그렇지... 서로 못 만나는 걸 아쉬워하는 중. 그 마음 달래기 위해 화상채팅을 하기도 한다.


사람과 부대끼며 작업하는 게 기본인 공연 경험을 많이 했고, 개성과 에너지 강렬한 그 집단에서도 따돌림이나 괴롭힘은 없었다.


내가 말을 꺼내지 않는 한, 학폭 피해자였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야기가 나와서 내 경험을 말하다 보면 듣던 사람이 함께 분노한다. 그리고 함께 이런저런 경우의 해결방안을 토의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 그럴싸한 해결책을 찾지는 못했다.


하굣길 가까이 산책을 하다 보면, 종종 언어폭력을 당하는 아이나 노골적으로 무리에서 무시당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개나리가 피던 즈음에는 초등학교에도 가방셔틀이 있다는 걸 발견하곤 놀랐다.

우연히 어떤 장면을 목격하고, 감지하면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이때, 당사자가 후폭풍에 휩싸이지 않을 방법을 궁리해서 실행에 옮긴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 욕하는 학생과 욕먹는 학생 사이에 일부러 서서 먼 산을 보며 배리어를 친다.
꽃이 예쁘다는 말을 거듭 무시당하는 학생의 말에 "어머 진짜네"하고 일부러 폰 사진을 찍곤 "우와 진짜다~"하고 대꾸하기도 한다.

그러면 잠깐 동안 그 학생들의 눈에 평온함이 깃든다. 아직은 이런 방법밖에 모르고, 못하는 소극적이고 힘없는 사람이지만, 확실한 해결책을 찾는다면 전심으로 도울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따돌림이라는 게 멸종하기를 더 바란다.

영웅이나 우상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영웅이나 우상을 필요로 하는 재해/재난이 없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