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주제에 대해 한 페이지 에세이를 쓰는 글 모임
퇴근 중, 버스 안에서 여느때처럼 맘에 드는 음악을 듣다가 번개처럼 쓱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어 급히 메모했다.
한 가지 글감(주제)에 대해
한 페이지씩만 에세이를 써서 공유하는 모임을 운영하면 어떨까?
당장 지금은 신입으로서 회사에 적응하느라 운영을 시작하자는 용기가 안 난다. 하지만, 몇 개월 또는 몇 주 후에라도 기꺼이 개시하고 운영할 수 있게, 구상을 차근차근 시작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대학 재학 중, 흥미로운 교양 강의를 많이 들었다. 항상 내 마음대로 수강신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나는 최고의 계획과 굉장히 다른 모양의 시간표를 맞췄지만, 교양강의 운은 좋았다. 재밌는 강의를 정말 많이 들었다. 그 중 한 강의는 특히 과제가 재밌었다.
과제가 재밌다? 얼핏 보면 굉장히 미친 소리 같지만, 정말 재밌는 과제였다. 1주에 한 번 한 페이지 분량의 에세이를 작성하는 과제였다. 그런데, 그 주제가 '어린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만화/영화 등 콘텐츠'라거나 '내가 기억하는 예전의 ㅇㅇㅇ' 등 콘텐츠나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는 것들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작성한 한 페이지 에세이 중에서 무작위로 3개 정도의 글을 교수님께서 읽어주시며 공유했다. 여기에서 '무작위'라는 말은, 에세이의 점수에 관계 없이 공유해주셨다는 것이다.
꽤 수강생이 많은 강의에서 매주 한 페이지 분량의 과제를 내시는 교수님이, 매주 그 글들을 다 읽으시고 코멘트 메모도 꼭 해주시고, 그 중 인상깊었던 3페이지는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굉장히 즐거웠다. 공유할 겸 읽어주시는 글 내용을 듣고는 저마다 앉은 자리에서 앞옆뒷사람과 웅성웅성 각자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통제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 웅성웅성한 분위기를 오히려 이끄시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나누면서도 어수선하지는 않았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 수업, 그 과제가 재미있었던 이유가 두 가지 더 있다.
먼저, 다양한 학과에서 모여 듣는 교양강의였기 때문에, 학과별 특징이 담긴 글들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특징으로 사람을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공유되는 글을 잘 들어보면 '야, 진짜 어느 학과스럽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국문학과는 국문학처럼 쓰고, 어학계열은 꼭 번역서적을 듣는 것 같은 글을 썼다. 나같은 상경계열은 에세이를 무슨 보고서처럼 쓰고ㅋㅋㅋㅋㅋ 이공계열에서도 생명 분야, 건축학과 그리고 미디어 학과 등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정말 그 학과같은 글을 썼다. 그 점이 우습고, 재밌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각자의 아이디어, 생각을 나눈다는 것이 즐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주제로 주어지는 글감 범위가 좁은 편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꼭 몇 가지로 글감이 수렴했다. 예를 들어, '그 시절 봤던 만화/영화 등 콘텐츠'라는 과제에서는 가장 많이들 선택한 글감이 "해리포터 시리즈"였다고 한다. 그 다음 순위가 기억나진 않지만, 교수님께서 합산해서 매긴 순위대로 글감을 공개하실 때, 동급생들과 함께 워어어어 오오오오 오소름 와대박 이런 감탄섞인 추임새를 거듭 냈던 기억이 난다. 얽힌 경험은 다 다를지라도, 그 시대의 유행이나 분위기를 따라 비슷하게 영향을 받는 부분이 있다는 게 새삼 놀라웠다.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 데 모여 글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좋았다.
사실, 지금은 '그거 재밌었는데. 그러니까, 그거 비슷하게 해보자!'라는 생각 뿐이다. 아직 아무 계획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서 일정한 활동을 지속하려면, 규칙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글 모임이니 글감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모임에서 어떻게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어떻게 이야기를 모을 것인지, 이 모임의 '목적'은 무엇으로 할 것인지(공유? 꾸준히 글쓰기? 어떤 것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 등을 정해두는 것이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차분히 준비해보려 한다.
커버 이미지 출처 : Photo by Patrick Tomasso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