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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Dec 24. 2022

영화로도 깊은 울림을 주는 "영웅"

뮤지컬로는 두 번, 영화로는 초면인 안중근 의사의 이야기 "영웅"

"영웅"이라는 작품은 영화로 만나기 전에 무대 공연으로만 두 번을 보았던 작품이다.

한 번은 '이제 공연을 공부하자'라고 맘먹었던 초기, 혼자 관람. 다른 한 번은 아는 친구가 해당 공연 관계자로 일할 때, '친구야 나 놀러 갈래'하고 관람 갔던 때.

그리고 오늘, 뮤지컬 영웅을 영화로 다시 만났다.


영웅이 영화로 개봉된다는 소식을 접했던 때부터 궁금했다. 과연 어떤 면이 달라졌을까, 그 배역은 누가 맡고 그 역할은 어떻게 그려질까.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은 살아남았을까, 잘렸을까.


뮤지컬 영화

특유의 빙빙 도는 무빙과 클로즈업을 싫어하는 이유

뮤지컬에서는 '무대가 비어 보이지 않게' 춤, 배우들의 동선 변경, 조명 색 변경, 무대 세트 변화, 조연들의 소리 없는 행동 연기 등으로 가사 사이, 대사와 노래 사이를 메워준다.

하지만, 뮤지컬 영화에서는 무대와 같은 '메우기'가 없다.

그 유명한 '누가 죄인인가' 장면. 이 장면도 무대에 비해 아쉬웠다.

특히 한 인물이 혼자 노래를 부르는 솔로 곡 장면에서는 얼굴 클로즈업과 인물을 가운데 두고 빙빙 도는 카메라 무빙이 메우기를 대신한다. 뮤지컬의 메우기 방식이 익숙한 내게는 이런 장면들이 참 심심하다. 이 솔로 곡에서 담고 있는 메시지가 중요하고 인물 서사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도 알지만, 어색하다. 그래서 나는 뮤지컬 영화의 클로즈업과 빙빙 도는 카메라 무빙을 싫어한다. 이런 장면들을 볼 때는 손깍지를 끼었다가 바꿔끼기를 반복하게 된다.


그럼에도, 뮤지컬 영화의 장점

무대에서는 섬세하게 표현하지 못했던 장면을 더 잘 표현해주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조마리아 여사)께서 수의를 준비하는 장면이 있다. 공연에서는 수의가 전달되는 장면에 어머니께서 아들에게 말을 건네듯 '사랑하는 내 아들 도마야'하는 넘버가 얹어진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수의를 만드시는 장면이 등장한다. 마음이 철렁한다. 무대에서 보던 장면보다 더한 충격을 받게 된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던 인물인 '설희'도 영화에서는 좋았다.

그 인물의 고뇌와 슬픔 등이 공연에서보다 영화에서 더 잘 전달된다. 인물이 어떤 행동을 하는 계기, 임무 수행을 할 때의 모습, 최후의 모습이 공연보다 더 극적으로 그려지는데 신기하게도 무대에서보다 더 그 인물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대버전과 영화버전의 설희 일본 이름이 달랐다.

(좌) 조마리아 여사(나문희 배우), (우) 설희(김고은 배우)



아쉽게도 볼 수 없었던 명장면들

야성적이고 전투적이고 대결구도가 드러나며 긴박한 '비상구는 없다'와 '추격'

그리고 간드러진 음색이 중독성 있고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게이샤'장면이 축소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여기에서 축소되었다는 말의 의미는, 가사 없이 반주만 등장하거나, 해당 장면의 등장인물이 매우 단출해진 것 등을 포함한다.

게이샤 장면의 배경음악과 더불어 춤사위는 눈에 익은 춤사위여서 반가웠다. 뮤지컬 오디션 지정안무이기도 했고, 무대 위에서 게이샤들이 노래하며 춤을 추는 안무였다.



영웅(들)의 삶을 기리며

오늘 알게 된 것

일본에서 의도적으로 안중근 의사의 시신을 '어딘지도 모르게'매장했으며, 아직도 어디에 안치되셨는지 모른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정말 지독한 놈들일세.


극장을 나서며 했던 생각, 아직 답을 못 찾은 한 문제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며 유·청소년기를 보낸 나는 '일본은 자국 문화와 전통을 참 중시 하는구나'라는 것을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한 국가의 문화와 전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는 국가가, 다른 국가의 문화와 전통을 말살할 계획을 꾸리고 실행했다. 얼마나 잔악한가.

그 잔악함 속에서도 굳이 한글로 글을 쓴 이도 있었고, 굳이 고생길을 택해서 독립군이 된 이들도 있었고, 재산을 모두 독립에 쏟아부은 이들도 있었다. 얼마나 앞을 내다본 것인가. 얼마나 넓은 마음으로 고생을 견뎌낸 것인가.


고3, 대학 재학 중, 그리고 올해도 같은 강사님의 한국사 강의를 들으며 세 번째 들었던 말씀이 있다.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자.
-최태성 선생님

수년의 시간차를 두고 올해로 세 번째 듣는 말씀이었지만, 아직 그 말에 대한 나의 답을 찾지 못했다.


끝내기 아쉬우니 남겨두는 여담

· 이토 히로부미 역할 배우가 왠지 익숙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예전에 일본 극단 시키(욕 아님. 사계가 일본어로 시키.)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공연한 적 있는 재일교포 김승락 배우다! 뮤지컬 라이온킹에서 '스카'역을 맡았던 배우인데, 그 뮤지컬은 다큐멘터리로도 남아있다. 오랫동안 좋아했던 박은태 배우가 코뿔소 다리 역할로 박제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ㅋㅋㅋㅋㅋ

· 김고은 배우는 감정을 실어서 노래를 표현하는 것조차 너무나 잘한다. 뮤지컬에서 설희는 파워풀하게 노래하지만, 노래에서 느껴지는 것만큼 힘이 있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나오는 장면마다 '왜 저렇게 파워풀하기만 해.... 파워풀을 외치다 왜 저렇게 퇴장하는 거야'하는 생각에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영화에서 김고은 배우가 보여준 설희는 노래를 힘 있게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인물의 서사를 보여준다. 뮤지컬과 영화라는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김고은 배우가 표현해준 설희에 굉장히 매력을 느꼈다.

· 영화 보러 가기 전, 인터뷰 영상에서 ‘그날을 위하여’에서는 출연 배우들도 쭈뼛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감격스러웠다고 들었다. 해당 장면은 백 명이 넘는 실제 뮤지컬 배우들과 학생들이 합창하며 연기하는 대목이었다. 극장에서 보며 소름이 돋았다. 한편으로는 애틋하기도 했다. 저 목소리 속에 내가 아는 사람들이 남모르게 출연하지는 않았을까 해서 말이다. 실제로, 옛 동료가 잘 알려진 어느 콘텐츠에 무언가로 출연했다는 소식을 늦게 전해줬을 때, 참 자랑스러웠고, 응원하는 마음과 애틋한 마음이 가득했다. 힘든 길을 계속 가는 의지와 노력과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과 꿈을 이뤘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지금도 여러 사람들과 서사를 만들어가는 무대와 영상 길을 걷는 내 친구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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