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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yer Dec 07. 2023

"겁먹지 말고, 하고 싶은 걸 계속해봐."

정말 좋아하는 것을 외면하거나, 참고 또 참은 이유

경주마들이 경주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 눈가리개를 착용시킨다. 오직 자기가 '달려야 하는'트랙만 보도록, 시야 양쪽을 아주 가려버린다. 해야 하는 것만 신경 쓰도록, 다른 것은 볼 기회도 차단해 버리는 것이다.

*말이 아주 예민한 동물이라 옆에서 달려가는 다른 말에 놀라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단다. 어쨌든 '해야 하는 것에만 집중하도록 설계한 장치'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난 학창 시절을 대체로 그렇게 보냈다. 몇 달에 한 번, 시험을 잘 봐서 탄 문화상품권이나 용돈 등으로 관람하는 공연(주로 뮤지컬)은 내게 아주 작은 숨구멍이었다.

학창 시절에 '내가 해본 것 중 가장 즐겁고 숨통이 트이는 경험'이 바로 공연 관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꾸준히 했고, 그러다 보니 한 때는 꿈이었다.


지금은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이 뭘까? 생각해 봤다.

독서도, 브이로그 시청도, 영화감상과 운동도 즐겁지만 그보다 좋아하는 것은 여행.

나는 여행의 전반적인 활동을 모두 좋아한다.


나는 내 상상보다 더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을 2023년 올해 활동들을 곱씹어보며 깨달았다.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고, 기록을 남기는 모든 활동이 즐겁다.

학창 시절에 공연을 대하던, 숨통이 트인다는 느낌과는 다르다. 그건 마냥 즐기기만 했는데, 여행은 아니다. 준비와 마무리까지 손이 많이 간다. 일행이 있다면 준비 과정이나 여행 중에 다투기도 하는데, 그것도 감수해야 한다. 다녀와서 된통 앓았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경험이 가치 있다. 경험을 통해 느끼는 '내가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있구나'하는 생각과 감정도 좋다.


올해 친구들과의 모임도, 가족과의 나들이도 준비를 하면서 신났다. 함께하는 사람들의 긍정적인 반응에는 더 흥이 났다. 동료들과도 동네 또는 다른 지역의 가볼 만한 곳 정보를 공유하며 이야기 나누는 것이 즐겁다. 올해 여행의 주 동행자였던 엄마와 다녀온 곳에 대해서 두고두고 이야기하며 여행을 곱씹어보는 행복도 누렸다. 드라마를 보다가 '어 저기 여행 다녀왔던 곳이다!'하고 반가움에 눈을 반짝이기도 했다.


스스로 여행을 좋아한다고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걸 좋아한다고 자각하면 더 많이 다닐까 봐.

좋아하는 걸 더 많이 하면 괜찮은 인생 아닐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겐 즐거움 못지않게 경제적 안정감도 중요한 삶의 가치이기 때문에 여행 심리를 꾹꾹 눌렀다.

극단적으로 비교를 하면, 여행은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 것. 대여한 책 읽기에 비해서 여행은 정말 많은 돈이 들어가는 취향이자 취미이자 꿈이다. *0원 독서 vs N만원 여행. 비용만으로 견주어 보면, 독서 KO승!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는 게 너무 힘들다, 이제 못 참겠다 싶을 때마다 계획을 세웠다. 이 계획 정말 좋다, 이거 이대로 꼭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3일 내내 머릿속을 맴돌면 마침내 여행일정을 확정하고 다녀왔다. 2023년 나의 여행 스케줄을 확인해 보니 한 달에 한 번 ㅋㅋㅋㅋㅋㅋㅋ 국내 여기저기, 우리 동네에서 안 가봤던 곳 나들이를 포함해서 이 정도의 빈도로 집을 나섰다가 돌아왔다. 마음을 누른 게 이 정도니 안 누르면 얼마나 대단할까? ㅋㅋㅋㅋㅋㅋㅋ


하고 싶은 것을 할까 말까 결정할 때, 사치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무리가 아니라면 '돈이 많이 드는걸'하고 한정 짓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그런데 자주 까먹어 탈이다.


'일단 하고 싶은 걸 계속해봐.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이고, 어느새 그 길을 가고 있어.'라는 조언도 마음에 새겼으면서 자꾸 잊어버린다.

이 조언을 해준 오빠는 어쩌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고, 커피가 너무 좋고 재밌어서 커피에 대해 공부했고 바리스타가 되었다. 본인이 만족하는 직장에서 커피 일을 하면서 흥미가 생긴 새로운 분야도 공부하고 실행하고 있다. 아주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인생 선배다. 본인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 멋진 사람.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고 생각은 하면서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는 걸 느낄 때,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인데, 정말 답답하다.

그냥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라니까? 그게 왜 어려워?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우리말과 다른 언어를 공부하고, 그 언어를 주 언어로 사용하는 곳에서의 문화를 경험하는 생활을 해보고 싶다. 쭉 그렇게 살고 싶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생활을 해보고 싶다. 예전에 지금과 다른 지역에서 공연 공부를 한다고 몇 개월을 보냈던 것처럼. 낮은 주택과 논밭이 대지를 대부분 채우고 있는 동네에서 하얀 돌과 높은 천장이 인상적인 외국 같은 대학으로 통학하며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던 것처럼.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자.

이렇게 쓰고 있지만 아마도 자고 일어나면 또 까먹고 하루를 보낼 것이다. ㅋㅋㅋㅋㅋ 그러고 나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다가 '아 맞다! 이랬었지!'하고 반성 가까운 피드백을 하겠지.

하지만, 또 잊을 것을 알더라도 한 번씩 더 나를 위한 내 메시지를 새겨두는 것이 좋다. 계속 잊지 말라고, 잊지 말아 달라고 셀프 체크를 하다 보면 내가 주입한 메시지에 가까운 사고방식으로 좀 더 용감하게 서있을 수 있겠지. 그렇게 기대한다. :D


*커버 이미지는 스벅에서 직접 촬영한 사진. “온 마음을 다 해라”라는 뜻. 의역한 것이다 ㅎㅎ 직역하면 “네 마음을 때려 부어라”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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