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

나에게 정리라는 것은

by 김태한

정리 整理

나는 주변 정리를 꽤 하려는 인간인 것 같다. 쉬는 공간, 일하는 공간이 정리가 되어있지 않으면 쉽게 집중할 수가 없다. 매일, 매순간 물건을 정리하려는 습성이 있다. 이 정리라는 것이 그대로 풀이를 하자면,

[정리 整理]
흐트러지거나 혼란스러운 상태에 있는 것을 한데 모으거나 치워서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함.

이라는 사전적 정의를 가지고 있다. 즉, 어질러진 물건들을 한데 모아서 상황을 질서 있는 상태가 되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또 다시 궁금해졌다. 질서는 무엇인가. 이 질서라는 놈은

[질서 秩序)]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사물의 순서나 차례.

라는 뜻이라고 한다. 혼란 없이 순조로운 상태다. 즉, 마음이 혼란 없이 순조로운 상태라는 말과도 통하는 것 같다.
몇 해 전 아버지의 전 회사 직원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희 아버지는 항상 걸레를 들고 계셨어. 언제 사무실을 들어가도 항상 걸레를 들고서는 책상이며, 책장의 먼지를 훔치곤 했어. 그게 직원들 사이에서는 두고두고 회자가 됐었지.”

그들의 말을 들으며 집안 풍경을 다시 머릿속에 떠올려 봤다. 그런 아버지는 매번 어머니에게 한 소리를 듣곤 하셨다. 정리를 못한다며.
다시 어머니를 생각해봤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엔 어머니는 하루 종일 ‘일’을 하셨다. 쓸고, 닦고, 털고. 그리고 다시 그것을 반복했다. 마치 그녀의 삶에는 그 ‘일’이라는 청소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혼(?)나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그 밑에 있는 나는 정리에 ‘정’자도 모르는 사람일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정리를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회사에서 동료 여직원과 함께 외근을 나가는 날이었다. 하필 그날따라 다른 직원들이 회사차를 가지고 외근을 나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내 차로 여직원과 동승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주차장으로 나와 차문을 열고 차에 오르려는 순간 몇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만약 여직원의 손톱이 길면 차문을 열 때 손잡이에 흠집이 날 수도 있는데 괜찮겠지?’
‘차에 오르기 전에 충분이 다리를 들지 않으면 도어 스커트에 내가 정성스럽게 붙여 놓은 시트지에 흠집이 날 텐데 괜찮겠지?’
‘신발에 흙을 털어내지 않고 탄다면 자동차 매트에 흙이 묻을 텐데. 괜찮겠지?’

그 짧은 순간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에 놀랐다.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는 찰나 이미 여직원은 옆자리에 몸을 얹었고 타지 않고 있는 나에게 어서 빨리타라는 듯 고개를 내빼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생각(걱정)을 멈추고 차에 탔다. 타자마자 여직원이 이야기를 한다.

“어머, 차가 굉장히 깨끗하네요. 매일 청소하시나봐요?”

그 말을 듣고는 다소 충격이었던 것이 어머니는 매일 같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곤 하셨다.

“차 좀 청소하고 다녀라! 이게 뭐냐! 귀신 나오겠다! 귀신!”

이라고 말씀하시며 차에 타자마자 물건들을 정리하곤 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정리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했다.
얼마 전 회사를 조금 더 확장 이전했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글을 자유롭게 쓸 공간을 제공하고 싶다는 것이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24시간 개방이라고 하니 밤늦게까지 사람들이 있곤 한다. 여하튼, 전 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오가게 되었다.
여러 사람이 한 공간을 이용하다보니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차를 마시고 아무 곳에나 놓아두고 가는 사람. 아이스크림을 먹고 안내데스크 위에 막대를 올려놓은 사람, 의자를 한껏 뒤로 미뤄 놓고 가는 사람.
그때부터였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자정이 가까워서야 책상을 정리하고 어질러 놓은 물건들을 정리했다. 5분의 1쯤 마시고 놓아둔 컵들을 모으고 닦지 않고 아무 곳에나 놓아둔 컵을 설거지하고, 펼쳐져 있는 책은 덮어서 책장에 꽂아 두었다. 냉장고 안 먹다 남은 음식은 밀봉을 하고 오래된 것은 버렸다.
그런데 이 일이 한두 번인 것이 아니라 매일, 매번 반복되다보니 이 사소한 일에 정신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정작 본업을 해야 하는데 그 시간에 누가 정리를 하지 않는지에 신경이 쏠려있고 그 와중에 일은 꾸역꾸역 해야 하니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차라리 아침 일찍 사무실에서 나와서 근처 카페에서 일을 해볼까도 생각해보고 귀에 이어폰을 꽃아 놓고는 음악을 크게 들어보기도 했다. 이것은 아마 내가 장님이 되지 않는 한 고쳐지기 어려울 것 같다.
질서 있게 정리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 규범이 만들어 놓은 감옥 같은 것인지 모른다. 우주적 관점에서 본다면 정리고, 질서고 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될 수 있다. 어쩌면 선(善)과 악(惡)의 구분도 무의미 할 지도 모른다. 그곳엔 오직 무질서한 질서만이 존재할 뿐이다. 어지르는 사람. 정리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내 자신. 내 자신의 시선과 생각이 잘못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냥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 결론짓고 사는 것이 오히려 더 편할 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나는 흐트러져 있는 책상을 잘도 보고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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