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직장 생활 때의 일입니다. 당시 저는 총무팀에서 총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회사의 시설물(체육관, 운동장, 강의실 등)을 대관하는 업무도 함께 맡고 있었는데요.
공공시설물이다 보니 대관하면 각 종 시설들을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어서 1년 내내 지역 주민들의 대관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관 업무는 단순히 시설물만 대관하는 것이 아니라 요청이 들어오면 관련된 음향, 조명 기기들을 세팅 해 놓아야 하고, 하절기나 동절기에는 미리미리 냉난방기를 틀어 놓아 적절한 온도를 유지시켜야 하기도 하는 등 소소한 일들이 많은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비록 업무 분장표에는 [대관 담당]이라는 네 글자로 지정해 놓았지만 잔손만큼은 일등인 업무였습니다.
사건은 시(市)에 출입하는 한 기자 때문에 시작됐습니다. 평소 취재차 총무팀에 자료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아 안면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성심성의껏 준비해 전달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전화를 걸어 대관 요청을 해왔습니다. 물론 그가 원하는 날짜가 일정이 없으면 괜찮지만 확인해보니 그날은 지역 청소년들이 농구를 하기 위해 실내 체육관 대관이 잡혀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정중히 해당 날짜에는 예약이 되어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전달했습니다.
그러자 대뜸 하는 소리가
“그래요? 허허. 이거 참. 곤란하네. 저 ○○일보의 박기 자에요. 박기자.”
그게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재차 곤란함을 전달했습니다.
“네. 그렇지만 먼저 예약이 잡혀있어서 좀 곤란합니다. 다른 날로 알아보시면 안 될까요?”
그러자 그는 말 한마디만 남기곤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버렸습니다.
“그래요. 한 번 두고 봅시다.”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의 수화기를 한동안 멍하니 쳐다보다가 별 사람 다 있다 하며 이내 잊곤 다른 업무에 집중했습니다.
그날 오후. 한창 일에 집중하고 있는데 사장님이 호출했습니다. 요는 박기자의 대관 요청을 거절했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일에 대해 여차저차 해서 어렵다고 전달한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사장님 왈. 웬만하면 그 사람에게 대관을 해주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그가 원하는 날짜에 그의 행사는 진행됐고 선거 관련 관계자들의 행사로 도배가 되었습니다. 물론 미리 선약을 한 청소년들은 체육관을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시청의 고위 공무원에게 압력을 넣어 결국 탑다운 방식으로 소위 위에서부터 ‘내려 찍은’ 것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매번 이런 식으로 일을 진행했고 그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저의 윗 상사들과도 매우 이상한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습니다.
결국 제가 터득한 방법은 “YES” 맨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불합리해도, 효율적이지 않아도 그저 시키는 대로 하면 적어도 저에게 화살은 돌아오지 않았거든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와 같은 경우를 많이 접하곤 합니다. 윗선과 연결된 끈이 있다고, 혹은 좀 친하다고 온갖 지인들을 끌어들여 정작 업무의 실무자들을 건너뛰는 경우를 말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습니다. 때문에 담당자를 지정하고 직급 체계를 정해 놓은 것입니다. 그것을 거스르려 할 때 결국 문제가 생기고 탈이 나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 기자요? 모든 일을 지인으로 해결하다가 결국 본인이 일하던 곳에서 쫓겨났습니다.
이후엔 무슨 영업을 한다고 기자 생활 때 인연이었던 사람들을 찾아가 강매를 하다가 결국 그 사람들 또한 잃었다는 소문을 전해 들은 것이 마지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