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과상 이야기

그들의 기막힌 비즈니스 엔지니어링 시스템

by 김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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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한껏 물러났었던 추위가 무엇을 두고 갔는지 가던 발걸음을 돌려 찾아온 듯 한 날이었습니다. 아침부터 동네 앞 이층 카페에 앉아 이리저리 끼적이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좀이 쑤셔 창문 밖으로 시선을 옮겼는데 그 아래로 분주한 청과상이 보였습니다.


휴대폰 매장이 폐업하고 팝업 스토어 형식으로 생겨난 청과상은 초창기 작은 규모로 시작해 어느새 매장 앞 도로로 야금야금 전진하며 그 세를 확장했습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주변 상가들은 텅텅 비어서 주인들의 시름 깊은 표정이 늘어만 가는데 유독 이 가게만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궁금해 잠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매장에 근무하는 인원은 총 5인조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매장 안에서 청과를 손질하는 사람 여성 1명, 계산을 전담하는 여성 1명, 매장 측면 청과 판매를 담당하는 여성 1명, 그리고 매장 전면의 청과를 판매하는 남성 2명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들을 마치 따로 똑같이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하나의 기계 같았는데요.



예를 들어 매장 안에 있는 캐셔인 그녀는 말 그대로 계산만을 전담하고 있었습니다.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 모양인지 오로지 현금만을 받고 있었습니다.



현금이 오갈 때마다 신속하게 거스름돈을 주고받았습니다. 그 옆 간이 바구니에 현금이 일정량 이상 쌓일 때에 마다 손님이 잠시 끊긴 틈을 타 그간의 액수를 빠른 손으로 셈하고 돈 통에 넣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신속한 그녀의 셈은 손님이 밀릴 틈이 없이 계산을 척척해냈습니다.



그녀의 바로 옆에는 1평이 조금 안 돼 보이는 공간 안에 한 여성이 짙은 벽돌색의 커다란 고무 다라이(たらい)에 손질이 필요한 청과를 손질해 부지런히 쌓고 있었습니다. 쌓던 청과가 어느 정도 고무대야 안에 쌓일 때 즈음이면 매장과 측면을 오가는 여성이 쏜살같이 다가와 손질된 청과를 가져다 매장 밖에 디스플레이를 합니다. 그녀는 마치 전장의 척후병처럼 매장 안팎을 오가며 상황을 전달하고 부족한 청과를 채워 넣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매장 전면의 남성 두 명입니다. 이 두 명이 하이라이트인 것이 바로 호객 행위를 하는 것인데요. 이 호객 행위라는 것이 자칫 고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을 해야 하는데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고등학교 시절 친구 놈들과 함께 옷을 사려고 이태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동네 이외엔 다녀 본 적이 없는 촌놈들이라 서울 나들이는 한마디로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태원의 해밀턴 호텔이 보일 즈음 버스의 정차 버튼을 누르면 거짓말 같이 매장의 무서운 아저씨들이 버스 뒷문을 둘러싸고 내리는 사람 중 어려 보이는 사람들만 골라 매섭게 몰아치던 기억이 납니다. 그들은 무엇을 사려고 왔는지 집요하게 묻곤 했습니다.



“DMC 티셔츠 사러 왔는데요.”



라며 겁에 질려 대답한 저에게 “아~그거 그거 우리 있어. 따라와”라며 이미 옷소매를 잡곤 으슥한 골목으로 우리 일행을 이끌면 우린 겁에 질려 속수무책으로 끌려가곤 했습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끌려가는 제 모습을 보고 같이 온 친구들도 서로 눈치를 보며 어수룩하게 뒤를 졸졸 따라왔는데요. 그날 저는 반 강압에 못 이겨 강매하듯 티셔츠를 구매했습니다. 그 티셔츠 전면에는 아주 큰 글씨로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DMZ SPIRIT’



뭐가 비무장지대 정신인지 모르는 상태로 옷을 구매하곤 했습니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이 두 명의 중년 아저씨들이 기업으로 따지면 홍보팀 역할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그들은 인도 측면에 서서 한 손엔 각자 다른 과일을 들고 깎아가면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한 조각씩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길거리 중간을 지나는 사람들에겐 과일을 권하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매장 앞으로 다가와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만 한 조각씩 과일을 권했습니다.



신기한 것이 그 둘의 동선이 겹치는 법이 없습니다. 청색 점퍼를 입은 남성이 역 쪽으로 올라가면 짙은 밤색 점퍼를 입은 남성은 역의 반대편으로 내려와 그곳을 구경하는 사람들을 공략합니다. 그 둘은 마치 잘 훈련된 군인처럼 간격을 유지한 채 모객에 열중했합니다.



여기에 이 두 남성이 과일을 권하는 동작이 독특합니다. 일대일로 조심스럽게 사람 측면에서 접근해 은밀한 물건을 건네듯 옆에서 슥~하고 자른 과일 조각을 건넵니다. 그러면 고객들은 마치 주변을 경계하듯 물건을 건네받곤 누가 볼 새라 홀린 듯 과일을 건네 받고 황급히 입 속으로 감춥니다. 그러면 조금 뒤 계산대에 망고를 들고 서있는 그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하이라이트인데요. 이 5인 조의 메인 스테이지는 매장 앞 바로 빠레트(pallet)에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망고를 팔아야 하는 타이밍이라면 이 빠레트 위에는 망고들이 전면에 배치되고 서브 과일은 측면과 후면으로 배치-됩니다. 그리고 이 남성 둘은 집중적으로 망고를 깎아 고객들에게 권합니다. 마치 순식간에 구성된 TF팀 같이 보이는 이 둘은 시간이 얼마간 흐르고 망고의 판매가 정점을 찍고 어느 정도 판매가 되면 신속하게 망고를 후면으로 배치하고 새빨간 딸기를 전면으로 배치시킵니다. 그리곤 다시 딸기를 들고 각자의 동선대로 움직입니다. 이때 빠레트는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디스플레이가 되어있습니다.



한 가지 더 독특한 것이 이 주기가 매우 빠릅니다. 순간순간 고객이 많이 몰리는 과일을 캐치해 그것들을 빠레트 위에 멋스럽게 디스플레이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척후병 그녀가 진열을 돕습니다.



청과상 주변의 청과들이 줄어가는 것이 눈에 띌 만큼 빠르게 줄어갔고 제가 카페를 나설 때 즈음엔 문이 닫혀있고 문 밖엔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습니다.



‘과일 매진’



이 5인조의 부지런한 분업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자신에게 변명을 하며 손을 놓고 있을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처세를 바꿀 수 있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요.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어떤 책처럼 걱정만 한다고 문제의 근본이 해결되지 않는 것처럼 지금 당장 실행하는 단호한 결단력에 이은 실행력에서부터 문제의 설루션은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석에 들어서지 않고는 홈런을 칠 수 없고 낚싯줄을 물에 드리우지 않고는 고기를 잡을 수 없으며 시도하지 않고는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캐시 셀리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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