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말이 가진 힘은 때론 다정하고, 때론 매섭다. 주변에 '극'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이나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짙은 사람이 있다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말했을 뿐이라며 냉소를 담은 표정을 지을 땐,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 자책까지 하게 된다. 이 수준까지 왔다면 이미 가스라이팅이 완성된 상태다. '문제의 원인이 모두 나에게 있다고 종결되는 이상한 대화법' '상대방만 속 시원하게 쏟아내는 대화법' '상대는 승리하고 나는 죄인이 되는 이상한 대화법' 대화가 길어질수록 내 정신상태가 무너져간다. 평소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더라도, 서서히 나는 상대방이 하는 말대로 나를 평가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나는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 "나는 이것조차 못 하는 사람." "나는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
많은 정신의학과 담당의들은 말한다. 이런 사람은 피하라고. 다시는 상종하지 마라고. 하지만 세상 일이 어디 내 마음대로 되던가. 가끔은 어쩔 수 없는 관계도 있는 것이다. 가족. 천륜. 매일 보는 사람. 사회생활을 하다 만난 사람 같으면 똥 밟았다 생각하고 안 볼 수 있지만, 이건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이 사람들을 평생 안 보고 살 수 있을 리가 없다. 가족이라도 인연을 끊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다시 얼굴 볼 날이 생기게 되니까, 완전한 절연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과 대화를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도 있겠다.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극'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과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짙은 사람들은 자신의 말을 멈추지 않는다. 뒤통수에 말을 쏟아내고, 심장으로 칼을 던진다. 듣는 사람이 없고, 대답하는 사람이 없어도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다.
처음엔 주는 대로 상처를 받았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고,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에 홀로 아팠다. 모든 것이 내 탓이 되어 버리는 대화법 때문에 나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심리학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상처받은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쓸모없는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내가 "피해자"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을 믿기 어려웠다. 책 한 번 읽었다고 해서 긴 세월 받아온 가스라이팅과 플러팅이 사라질 리 없었으니까. 살다가 그런 사람을 만나면 피하라는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나에게 상처 주는 상대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한 권에서 하는 말로는 믿기지 않았다. 다른 책을 읽어도 내가 피해자란다. 또 다른 책을 읽으니 상대방이 가해자란다. 책을 쓴 사람은 다 다른데, 내용은 다 같다. 나는 피해자. 안 보고 살 수 있으면 그러는 게 최고로 좋은 방법이라고.
가스라이팅이 그렇게 벗겨지기 시작했고, 나는 그 사람들과의 절연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지했다. 그렇다면 이 사람들과 부딪힐 때 내 마음을 지켜낼 방법이 필요했다. 상대방이 던지는 날카로운 말들을 막아낼 방패가 되어줄 방법. '저 사람은 지금 화가 났다. 감정적으로 폭발했을 때, 내가 상처받을 말을 골라서 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만 중요하고, 내가 상처받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현재 그런 상태다. 내 감정은 내가 관리할 수 있다. 저 사람이 내뱉는 말들이 내가 될 수는 없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제삼자에게 설명하듯 현재를 정리한다. 상대가 하는 말을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나에게 던지는 말들은 나에게 닿지 않는다. "옛날 일 말고 지금 일어난 일로만 이야기하자."고. 상황을 정리하면 그렇게 분노를 쏟아내던 사람들이 조용해진다. 지금 일어난 일로만은 자기가 만족할 만큼 나를 상처 줄 수 없으니까, 할 말이 없을 수밖에.
그 사람들에게 사과를 강요하지 않는다. 다신 안 볼 사람이라면 대차게 한바탕 하고 다신 연락하지 말라고 할 테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을 인정한 후, 화가 난 사람에게 사과까지 바라는 욕심은 내려놓았다. 다만 그 사람이 평소와 같은 모습일 때, 이야기를 한다. "화가 난 건 알겠지만, 지난 일까지 끄집어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당신이 나에게 던지는 인신공격은 당신 자신에게 욕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가족이니까." 내 생각을 정확히 전달한다. 가만히 듣고는 있지만 사과하는 법은 없다. 그런 사람들이니까. 나는 그들과 싸워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아니다. 그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안 보고 사는 거겠지만, 나처럼 가족이 스릴러와 서스펜스를 제공하는 분이 계시다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연습을 해보시길 추천한다. 이미 받은 상처가 아파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기 힘들다면, 이런 생각을 해 보자. "나는 이 사람과 다르다. 이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겠다." 가장 강력한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