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가일기 #12
나의 하루엔 언제나 자괴감이라는 녀석이 따라붙는다.
전반적으로 나는 병가를 낸 3년 전에 비해 너무나 건강하고 2년 전에 비해서도, 1년 전, 아니 한 달 전에 비해서도 나는 훨씬 건강하다. 이렇게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하루는 내 마음과는 다르게 증상과 그날그날의 상태에 따라지는 순간이 많고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문제는 이것이 게으름과 비슷해서 자괴감이 든다는 것이다.
매일 따라붙는 이 자괴감을 애써 모른 척할 때도 있고 감사일기나 다른 활동으로 극복해 보려 하지만 뭉근하고 기분 나쁘게 남아 있는 녀석이라 개운하지 못할 때가 많다.
다만 내가 공황장애를 겪으며 배운 것이 있다면 겸손함이다.
통제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겸손함.
과거의 나는 그야말로 통제 마니아였다. 모든 상황을 통제하려 했고 실제로 통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내 삶에 있어 통제력을 완전히 잃었다고 생각했을 때 나도 함께 무너졌다. 그리고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두려움에 벌벌 떨며 시간을 보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건강에 있어서 건강을 잃고 그것을 회복하는 순간은 우리 권한 밖이다. 나을 때가 되면 낫는 것이다.
병가를 낸 뒤 한 달 후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는데 공황장애가 마음의 감기랑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짜 감기 취급했다. 약 먹고 푹 쉬면 낫는 게 감기니까. 그런데 웬걸 약을 먹은 지 두 달쯤 넘었나 예전보다 증상이 더 심해졌고 하루종일 누워있을 만큼 체력도 떨어졌다. 약은 더 추가됐고 약 부작용이 심해 몇 달을 침대에 누워만 있었다. 병가기간이 1년이 넘어갔을 때 나는 약과 시간에 기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노력하기 시작했다.
노력하고 난 뒤에는 컨디션이 좋고 나쁨을 반복했다. 대체적으로 나쁜 시간이 더 많았지만 나는 컨디션이 조금이라도 좋아졌다 싶으면 '오 이대로 한 달 후면 완치겠지?'라는 말도 안 되는 희망 회로를 돌렸다. 한 달 후 회사에 복귀하고 일상으로 복귀한 달콤한 상상을 했다. 그러나 한 달 후 예전 보다 더 안 좋아진 상태를 경험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세상에 온갖 원망을 퍼붓고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고 좌절했다.
좌절 - 또 노력 - 완치에 대한 희망 회로 - 더 안 좋아짐 - 원망 이 사이클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완전히 항복했다. 이건 내 권한 밖이야.
오늘 내가 달리기로 하루를 시작할 만큼 컨디션이 좋아 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냈다고 해서 내일 또 그 하루가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음을 배웠다. 이제는 그런 것에 나를 몰아세우거나 이렇게 병을 얻게 된 나의 상황이나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다. 나는 어쩌다 보니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받아들였고 이제는 완치에 대한 기대도 버렸다.
다른 병도 마찬가지겠지만 마음의 병은 좀처럼 완치를 예측하거나 판정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다리가 부러졌다면 언제 완치가 될지 사람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뼈가 굳는 상황을 엑스레이라도 찍어 볼 수 있지 않나. 그러나 마음의 병은 상태를 가늠하기 어렵기에 언제 완치가 될 것인가는 의사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그저 나보다 앞서 앓은 선배 환자들의 데이터를 통한 평균값으로 가이드를 주거나 증상 빈도수와 같은 서베이로 짐작해 볼 뿐이다. 이마저도 들쑥 날쑥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잃거나 노력을 멈춰서도 안된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에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때로는 길고 지루한 이 하루를 그저 받아들이고 이 길의 끝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에 더 집중하고 오늘 내가 가지고 누린 것에 집중하고 감사하는 수밖에.
모든 일에 있어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그러나 그 성공의 순간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어차피 나는 내가 완치될 것을 안다.
아니, 완치 되건 말건 상관 없다 이젠.
그러던지 말던지 나는 나의 노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라이팅게일 #Never_stop #You_Will_Never_Walk_Al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