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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Jun 21. 2024

못 견디게 사랑스러운 나의 불안

병가일기 #11

내게는 불안 장애가 있다. 


꽤나 오랫동안 불안과 그에 따른 생각에 압도되어 아무것도 못하고 옴짝달싹한 시간을 보냈다. 

불안은 불안을 낳고 생각은 꼬리에 물어 가슴 두근거림과 가슴 조임 등 심해지면 공황발작등의 신체화 증상으로 이어진다. 스스로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을 때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두렵고 고통스러워서 어떤 이는 자해를 하기도 하고 심지어 자살 기도까지 한다. 나의 경우는 내 몸의 장악력을 잃었다는 것에 망연 자실해서 내 몸을 멍이 들 때까지 사정없이 때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걸 바라보고 견디는 가족들의 마음도 처참해진다. 그 처참함에 나는 또 한 번 무너졌다. 

살기로 결심한 이후엔 남은 생을 이런 상태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작년부터 나는 나 자신을 새롭게 탈바꿈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나는 운이 좋게도 회사에 병가를 오랜 시간 낼 수 있었고 보험회사로부터의 금전적 지원과 건강 보험 혜택 및 남편으로부터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거기다 아이는 손이 덜 가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아픈 몸과는 별개로 내 인생 최고로 안정적인 시기여서 감사하게도 나는 내 병세에만 집중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이 시간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고 정리했는데 불안만큼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가 최근 불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고 이 덕분에 나는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 새로운 관점이란 불안을 나의 찐 팬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간 나는 불안 증상이 오면 신체화 증상으로 바로 이어졌기 때문에 어떻게 하질 못했고 보통 불안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기도하며 다른 곳에 주의를 돌렸다.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TV를 보거나 쇼츠를 봤다. 그리고 그 쓰나미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그런데 가만 보니 불안은 나의 에고와 닮아 있었다. 트라우마를 떠올리게 하는 특정 상황에서 찾아오기도 하지만 누군가에 대한 질투의 감정을 느낄 때도 불안은 찾아왔다. 

아 불안은 나의 사랑스러운 에고의 경고였구나. 

나의 사랑스러운 에고는 나를 너무도 사랑하는, 나의 안전을 최우선시하고 사적 이득에도 관심이 참 많은 아이다. 나의 사적 이익이나 내가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논리 따위 집어던지고 말도 안 되는 생각과 지저분한 감정(대개는 부정적인)을 마구 던지며 나에게 경고한다. 나는 우주의 관점에서 봤을 때 먼지보다도 작은 존재인데 나의 에고에겐 온 우주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다. 에고가 보기엔 내가 세상의 중심이다. 에고만큼 나를 사랑해 주는 존재가 또 어디 있을까?

이렇게 생각이 미치니 나는 에고의 하수꾼인 불안을 독대하기 시작했다. 

다른 분들의 좋은 글들을 보면 여지없이 나의 에고가 꿈틀거린다. 이내 나를 언제든 갉아먹기 위해 질투의 감정이 으르렁 거리며 찾아온다. 

감정을 느끼면 그간 여러 힘든 일을 겪으며 나도 모르게 피해자 감정으로만 산 나의 에고를 바라본다. 널 이해한다고. 오랜 시간 동안 피해자의 감정으로 가득 차서 살았으니 다른 이에게 마음의 여유를 줄 턱이 있냐고. 그런 감정들이 떠오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넌 나를 사랑하고 지켜주는 나의 소중한 존재니까 그런 걱정을 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나는 놀라서 불안해 어쩔 줄 모르는 나의 에고를 안심시키며 부드럽게 달랜다. 괜찮을 것이라고 안아준다. 나눔이 너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너를 살리는 길이라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좋은 글들을 보면 배울 수 있어서 좋고 다른 이들에게 내 글로 영감을 줄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일이라고, 결국 내가 잘되는 길이 너에게도 좋지 않냐고 설득한다. 너도 내가 잘 되길 바라잖아?라고 되묻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더 큰 비전을 에고에게 공유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이내 에고는 어린아이 울음 그치듯 잠이 든다. 

나는 에고를, 그에 따른 불안을 나를 가장 사랑하는 찐팬, 혹은 나라면 깜빡 죽는 멋진 보디가드쯤으로 생각한다(내 상상에선 언제나 모래시계의 이정재님을 떠올린다). 에고는 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으로부터 - 그게 말이 안 되는 것들 일지라도- 나를 지키는 게 그의 임무니까. 그는 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기에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 내가 부도덕하네, 시기질투 하는 쿨하지 못한 사람이네 하며 스스로를 손가락질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에고는 에고가 하는 임무에 충실하면 되고  나는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나는 나를 지켜주려 노력하는 에고가 못 견디게 사랑스럽다. 


#라이팅게일 #You_Never_Walk_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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