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온전히 살아낸 다는 것

by 라이팅게일


그가 관심을 둬야 할 일은 닥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운명을 찾는 것, 그 운명을 모두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었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중

즐거운 주말 보내셨나요,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작가 #라이팅게일 입니다.


최근 <데미안>을 읽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즐겨 했지만 소설이나 고전은 손이 가지 않더라고요. 학창 시절에 <데미안>을 펼쳐놓고 몇 장 못 읽고 그대로 덮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도저히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었거든요. 그날 이후 제게 고전이란 어려운 것, 이해 못 하는 단어들의 조합쯤으로 생각해 담을 쌓았습니다.


그랬던 제가 고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작년이었습니다. 4년 전 공황장애로 병가를 낸 후 절대적 자유시간은 많아졌지만 책 읽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어요.


브레인 포그도 지금보다 훨씬 심해 기억력과 집중력이 떨어졌고 하루 종일 지속되는 증상에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기에 바빴습니다. 영화도 드라마도 마찬가지였는데 즐거움보다는 감정적 소모가 크더라고요. 좋아하던 책 읽기가 하나의 일처럼 느껴져 부담스러웠고 그런 사실에 자괴감이 들었죠.


그래도 책에서 답을 찾기 위해 틈나는 대로 읽었습니다. 저는 책을 고르는데 까다롭습니다. 아무래도 좋지 않은 집중력에 책 읽기에 집중할 에너지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그렇게 변했어요.


거기다 제 독서 스타일도 한몫하는데요, 저는 책 한 권을 오래 읽습니다. 하나하나 음미하고, 좋은 글을 마주했을 때 몇 날 며칠 그 대목만 읽으며 무슨 뜻인지 파악하려고 애쓰고 제 개인적인 경험과 연결하는 작업을 거칩니다. 그러다 보니 일 년에 읽은 책 수를 열 손가락 안에 꼽습니다. 다독하고 싶은 열망이 있지만 열망은 열망으로 간직하고 제 스타일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다시 <데미안>으로 돌아와, 작년 어느 계기로 <싯다르타>를 읽었습니다. 저는 뼛속부터 불교 집안에서 자랐고 한때 스스로 불교에 심취했던 적이 있어요. <싯다르타>를 알고는 있었지만 서양인이 쓴 <싯다르타>라니 건방지게도 무시했습니다. 솔직히 거들떠도 안 봤습니다.


예전부터 남편의 인생 책 중 하나가 <싯다르타>라며 제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하기도 했고 인스타에선가 스치듯 본 명언 모음 포스팅에 헤르만 헤세에 관심이 생겼는데 문득 그의 싯다르타가 궁금하더군요. 일단 읽어보고 별로면 그만둬야지 하며 시작한 <싯다르타>가 제 인생 책이 되었고 그렇게 저는 헤르만 헤세의 열렬한 팬이 되었습니다.


한 작가가 마음에 들면 한 작가만 팝니다. 책 읽기가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지요.


<데미안>은 꽤나 얇은 책인데 읽는 데 한참 걸렸습니다. 고등학교 때보다 이해력은 좋아졌지만 진짜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려고 한 대목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거기다 제게 새로운 루틴이 생겼는데요, 자기 전 데미안의 대목을 읽고 생각해 보는 거예요. 같은 대목에도 매일 다른 생각이 떠오르는 걸 보는 게 즐겁습니다.


그가 관심을 둬야 할 일은 닥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운명을 찾는 것, 그 운명을 모두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었다.


책을 모두 읽고 나서 매일 읽고 고민한 대목입니다. "운명을 온전히 살아낸다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더군요. 그러다 어제저녁 문득 이런 결론이 찾아왔습니다.


'운명을 살아낸다는 것은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아낸다는 것이 아닐까.'


감사일기를 쓰면서 배운 점은 하루가 생각보다 다채롭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에도 저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불안감과 막연한 공포로 인한 두려움을 느끼는 한 편 일상 속 순간 속에서 즐거움과 무한한 기쁨도 느낍니다.


작년 4월, 회사로부터 갑작스러운 해고 통지를 받았을 때 분명히 불행한 소식이었고 하루 종일 슬퍼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소식은 하루 중 일어날 수 있었던 순간 들 중 하나였을 뿐, 감사한 일들은 넘쳐났고 그것들을 찾는데 어렵지 않았습니다. 신기했습니다.


하루를 사는 것과 인생을 살아내는 것이 크게 차이가 없다고 느낍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살지만 사실 오늘 하루가 마지막 날일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결국 운명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이란 내게 주어진 오늘 하루에 내가 원하는 것들과 추구하는 것들과 나다움을 지켜내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늘은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상황과 이해관계들이 얼기 설기 얽혀 있고 그 속에서 나의 운명을, 나다움을 지켜낸다는 것은 상당한 도전 과제잖아요.


오늘 하루, 여러분들께서 바라고 계획한 일들, 쉽지 않은 상황 속 여러분들만의 독특하고 특별한 운명을 온전히 살아내는 그런 하루가 되길 마음 가득 바라고 기도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라이팅게일 드림


P.S 사진은 지난 주 어느 날의 이른 아침, 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에 뜬 일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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