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나 되기 프로젝트
올해 들어 꾸준히 해오고 있는 개인 프로젝트가 있다. 매달 하나씩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나는 지난 몇 년간 건강이 좋지 않아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가장 괴로웠던 것은 증상도 다른 것도 아닌 변해버린 나 자신을 지켜보고 견뎌내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프기 전의 나와 비교하고 그 비교는 심지어 10년 전, 20년 전으로도 거슬러 올라갔다. 예전의 잃어버린 나로 돌아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지금의 나는 다른 경험과 시간을 보냈기에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의 내가 죽도록 싫었지만 살아가려면 어떻게든 현재의 나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를 더 이상 싫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다. 나는 새로운 나, 되고 싶은 나가 되기로 다짐했다.
새로운 나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단순하게 이제부터 새로운 것을 내 인생에 넣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고 1월부터 꾸준히 여러 도전들을 해오고 있다.
나는 초등학교 때 국악합주부에서 향피리를 3년간 연주했다. 당시 지휘를 맡은 열정 가득한 음악선생님 덕분에 우리 합주부가 상을 탐은 물론이고 전주 대사습놀이에도 초청되어 축하 공연을 한 적도 있다. 향피리는 보기와는 다르게 소리를 내기가 힘들다. 배에 힘을 잔뜩 주고 해야 소리가 나고 악기 자체는 얇고 작은데 소리는 굉장히 커서 오케스트라에서 메인 리드 악기라고 볼 수 있다. 이후 진학한 음악거점 중학교에서는 3년간 단소부에서 단소를 불었다. 단소는 향피리와 다르게 힘을 빼야 고운 소리가 난다. 나는 총 6년을 꼬박 관악기를 한 셈이다.
그렇기에 나는 관악기는 배우고 싶지 않았다. 내 인생에 관악기는 이제 그걸로 됐다고 원 없이 해봤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현악기는 어쩐지 끌리지 않았고 타악기를 배워보려고 알아본 선생님은 새 학생을 받지 않는다고 하고. 과연 어떤 악기가 내 마음속에 들어올까 가만히 기다리고 있던 중 지난달 바르셀로나 여행에서 본 퓨전 오케스트라 공연의 한 트럼펫 연주자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그녀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너무나 멋져서. 귀국 후 일주일 만에 당장 선생님을 찾아 시작했다. 트럼펫은 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래도 향피리랑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배에 힘 빡 주고 첫 입 불었는데 선생님이 놀랐다. 어 너 소리 낼 수 있네? 굿. 보통 처음 배울 때 소리를 잘 못 낸다고 했다.
트럼펫은 입술의 모양과 혀의 위치로 소리를 낸다. 30년 전 내가 왜 향피리를 도중에 그만두지 않았는지 기억이 났다. 당시 선생님은 연습을 아주 혹독하게 시키셨고 그 과정이 매우 지루해서 그만두는 학생들도 꽤 있었다. 선생님이 무서워서 못 그만둔 것도 있지만 역시나 향피리가 좋았다. 숨을 내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도 즐겁고 하고 있으면 다른 생각이 잘 안 들었다. 국악 오케스트라였고 그중에서도 소리가 가장 큰 악기를 했으니 틀리면 티가 엄청 나기에 아주 아주 집중했어야 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집중했던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트럼펫을 배우며 느낀 점 중 하나는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다. 단소를 불 때의 입모양에 배에 힘을 줘서 소리를 내야 하니 향피리와 단소 중간이다. 게다가 오로지 세 개의 버튼으로 다양한 음을 내야 하는데 그렇기에 트럼펫은 철저히 연주자의 능력에 달려있다고. 그 사실이 나에겐 너무나 매력적이다.
선생님은 이상한 음을 낼 때마다 기를 쓰고 입모양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나를 보고 음악은 실수를 해도 그냥 넘어가야 한다고 했다. 공연중간에 실수했다고 청중 앞에서 죄송한데 저 다시 한번 할게요라고 할 수는 없다고. 그러니 실수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 잊고 있었다. 음악은 틀린 걸 고칠 수 없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집중해야 하지만 설사 틀렸다 하더라도 그것에 빠져 있을 틈 없이 바로 다음 것을 준비하고 집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묘한 위로를 얻었다. 음악과 마찬가지로 인생도 이미 틀린 것에 집중하고 걱정하기보다는 앞으로 나아가는 편이 낫다. 마음이 한 결 가벼워진 느낌이다.
* 제 눈을 사로잡았던 Balkan Paradise Orchestra의 트럼펫 연주자 영상도 함께 올립니다. 즐거운 감상 되시길 바랄게요!
* 커버는 제가 좋아하는 트럼펫 연주자인 Dizzy Gillespie의 앨범 커버입니다. 아래 링크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rateyourmusic.com/release/album/dizzy-gillespie/dizzy-gillespie-and-his-orchestra-featuring-chano-po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