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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Sep 02. 2023

루틴 만들기

2주 만에 책 한 권을 완독 했다. 요즘은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책을 읽고 잠들기 전에도 독서로 하루를 마감한다. 예전에는 영화 한 편, 기사 한 줄도 제대로 못 읽었던 상태에 비하면 상당히 고무적인 발전이다. 여전히 집중력은 떨어지고 기억력과 인지능력도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지난달 들어 아주 조금씩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고 느낀다. 감사한 일이다.


오늘은 9월 1일이고 나는 이제 회사에 병가를 낸 지 벌써 2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몇 달만 쉬려고 했던 계획이 증상이 악화되어 복귀가 늦어지는 중이다. 이런 감사한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나는 멍청이같이 억울해하고 괴로워만 했다. 물론 증상도 심했고 치료과정이 힘들었지만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의 마지막 대사처럼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처럼 "병가가 주어졌는데 왜 푹 쉬고 마음 편히 있지를 못하니"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자책하며 보냈다. 또한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해서 수동적으로 증상을 견디며 기다렸다. 그러나 병가를 낸 지 1년이 훌쩍 넘어간 이후부터는 회복을 시간에만 기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나에게 맞는 루틴, 생활, 좋아하는 것 등 나라는 사람에게만 오롯이 집중하고 탐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루틴을 세우는데 시간을 쏟았고 꽤나 고군분투했다. 루틴을 만드는 것이 이렇게나 어려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각해 보면 루틴이란 것은 내가 특별히 만들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생활에 자동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기에 루틴 만드는 것을 솔직히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오히려 시간이 주어졌고 자유롭게 내 마음대로 만들면 되니 얼마나 좋은 건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막연하고 아득한 시간들이 주어지고 나니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고 굳이 내가 뭘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으니 지속적인 루틴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게다가 증상도 심해 제대로 루틴을 유지하고 싶어도 못할 때도 많았고 약의 부작용이 심해 하루종일 침대에서만 수개월을 보낸 적도 있어서 루틴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증상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과 시간이 나의 회복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난 이후에는 어떻게든 억지로 나를 일으켜 세워 나만의 루틴을 만들어야 했다.


제일 먼저 운동 루틴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운동을 이틀에 한 번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운동하는 날과 안 하는 날의 차이가 있음을 깨닫고 운동을 습관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사람이 어떤 습관을 만드는데 66일이 걸린다는 기사를 보고 66일간 운동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했다. 증상으로 몸이 힘들 때도 내 안의 우울과 자기 비난이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못하게 할 때도, 증상으로 밤 열두 시까지 침대에 누워있다가도 그 하루를 운동을 하지 않은 채 넘기기 싫어서 꾸역꾸역 일어나 새벽 1시에 울면서 운동한 적도 많다. 울면서 운동할 때마다 남편이 함께 해줘서 가능했고 무엇보다 여기서 타협하면 내 인생은 끝이라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66일을 버텼다. 막상 해보니 66일은 꽤나 긴 시간이고 매일 운동하는 것이 그렇게나 힘든 줄 몰랐다.


드디어 66일이 되고 난 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곧 폐렴에 걸려 한 달을 병상에 누워있었으나 신기하게도 그 이후 운동은 타협과 고통 없이 하고 있다. 오늘은 산책하니까 운동 스킵? 이런 거 없다. 산책이 운동이 될 수는 없으니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운동하고 샤워 후 명상. 이게 내가 만든 루틴이다. 이 단순한 루틴을 만드는데 장장 7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내 마음에 들고 내가 편안한 루틴을 만들고 나니 책 읽기, 글쓰기등과 같은 다른 루틴도 천천히 추가할 수 있어서 즐겁다. 윤종신의 '9월'이라는 노래 가사에서는 9월을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 간 홀가분한 나의 계절이 마냥 싫지 않다고, 묘한 기대감들이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하는 9월'이라고 묘사한다. 올해가 익숙해져 가고 있고 내가 힘겹게 만들었기에 너무나 소중한 루틴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가고 그것들로 내 삶을 채워가고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감사하다.


기대감과 설레는 마음 가득 안고 9월을 맞이해 본다.



*커버사진은 아래 링크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mooditude.app/post/the-mental-health-benefits-of-habit-building-and-rout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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