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하기 전에 창업해보세요
빵집을 차리기 전 회사를 다닌 적이 있었다. 1년이 조금 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유일한 회사 생활이기도 했다.
그때 내가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출근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는 것’이었다.
9시가 정식 출근 시간이었는데, 막내인 나는 암묵적으로 8시 30분에 출근해야 하는 룰 같은 게 있었다.
직급의 순서에 따라 출근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9시 전에 모든 팀원들이 출근을 마치면 맨 마지막에 부장님이 ‘음 모두 와있군..’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들어오시곤 했다.
(항상 출근하자마자 누군가를 방으로 호출하셨다. 선배들은 매일 아침 본인이 호출당할까 봐 긴장하곤 했었다. 막내인 내가 불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퇴근은 직급 순으로 한다.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가 많아져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라떼는’ 그랬다.
막내에서 사장으로 퀀텀 점프를 하면서, 가끔 일을 평균 ‘이상’으로 잘하거나 평균 ‘이하’로 못하는 친구들을 보며 내 회사 생활을 생각해보곤 했다.
그리고 한 2년쯤 됐을 때는 ‘아 내가 지금 회사에 취업하면 대표님이 아끼는 직원이 될 수 있겠다’라는 강한 확신을 가졌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출근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는 건 ‘예열 시간’이 필요해서이기 때문이었다.
항상 30분 일찍 출근하는 직원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는 시급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그 친구가 30분씩 일찍 오는 게 고맙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부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일찍 오는 시간을 근무 시간에 포함시키지 말아 달라며, 본격 업무에 들어가기 전 ‘예열하는 시간’을 갖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진심을 가져야지만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이었다. 그 친구에게는 아르바이트가 ‘그저’ 아르바이트인 게 아니라, 매일 자기 시간을 기꺼이 할애하면서까지 ‘잘’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리고 약 3년 간 수 십 명의 직원들을 보면서, 유독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출근하는 직원들은 업무 퍼포먼스가 달랐다. 그리고 일을 대하는 태도도 달랐다. 우연히도 내가 가장 아끼고 믿을 수 있었던 직원들은 다 2-30분 일찍 출근을 했다.
두 번째, 업무 공간에 있는 모든 것들,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거저 있는 건 없다.
빵집을 하다 보면 자잘하게 쓰게 되는 비품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게 페이퍼 타월.
샌드위치에 들어갈 재료들의 물기를 빼는 데에도 상당 양이 쓰이고, 튀김기의 기름을 제거하고 청소하는 데에는 어마 무시한 양이 쓰인다. 손 씻고 닦을 때도 필요하고, 그 외에도 자잘하게 물기를 닦을 때는 페이퍼 타월만 한 게 없다.
이렇게 얼마 안 하는 페이퍼 타월도 쓰다 보면 ‘아니 엊그제 주문한 것 같은데 또 주문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주 주문하는 비품 중의 하나가 된다.
돌이켜보면 이 ‘페이퍼 타월’ 같은 존재가 회사에서는 ‘A4 용지’인 것 같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패션 잡지를 만드는 곳이었기에, 시안을 위한 용도로든, 대행사의 협찬 리스트를 위한 용도로든, 마감 때 작성한 기사를 교정하기 위한 용도로든, 종이에 인쇄를 해서 볼 일이 많았다. 특히 대행사 협찬 리스트는 4-5p 화보를 촬영하는 데에 거의 200벌 가까이의 옷을 협찬하기 때문에, 대략 1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의 용지를 인쇄하는 일이 많았고 이는 나만 보는 게 아니라서 여유분으로 3-4개 정도는 더 뽑아놔야 했다. 그리고 이 리스트는 수정되는 일이 빈번했기에 여기에만 엄청나게 많은 용지가 쓰였다. 물론 회사라는 게 그런 것들을 일일이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쓰며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적어도 내가 회사에서 쓰고 있는 모든 비품들이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한다면 두세 개 쓰려던 것도 하나만 쓸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사도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다.
내가 회사에 있을 때 어느 날 나의 직속 상사가 바뀌었다. 원래 상사분은 사실 나의 도움이 크게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하시는 분이었어서, 배울 점이 많았지만 먼저 알려주시는 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바뀐 상사 분은 이 전 분보다 직급이 높으셨는데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저 자리에 올라갔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OO아, 이번에 내가 레트로 화보를 찍을 건데 괜찮은 시안 좀 찾아볼래?’라고 하셨다. 레트로라 하면 시대도 다양하고 스타일도 다양할 텐데, 어느 시대를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글쎄.. 한 7-80년대? 몰라 네가 보고 괜찮은 걸로 한 번 찾아봐줘’라는 식이였다. 본인이 찍으려는 화보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도 없이 ‘아무거나’ 찾으라고 하다니! 이 ‘모호한’ 업무 지시라니! 그래 놓고 내가 밤을 새워서 찾아가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하암… 수고했어’라고 하셨다.
사장이 되어 업무 지시를 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일들이 가끔 생기곤 했다. 내가 봤을 때 맛도 괜찮고 가격도 괜찮은 제품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손님들에게 눈길을 받지 못해서 이걸 어떻게 진열을 해야 할지 고민일 때가 있었다. 그걸 알아챈 직원이 ‘사장님 저거 어떻게 해야 잘 나갈까요?’라고 하길래 ‘글쎄요, OO 씨가 손재주가 좋으니까 어떻게 한 번 해봐요’라고 했다. (‘어떻게 한 번 해봐요’라니.. 몇 년 전 답답한 나의 상사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니!) 그러자 직원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회의를 하더니 그 제품 주변에 눈에 띄는 홍보물을 직접 그려서 진열을 했고 반응은 즉각적으로 왔다. 매번 유통기한에 걸리던 제품이 이제 한 달에 한두 번 걸리는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 상사라고 해서 모든 일을 다 겪어본 것은 아니다. 이럴 때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직원이 있으면 그것보다 든든할 수가 없다. 당신이 상사가 됐을 때를 상상해보라.
내가 말하는 것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라면’의 마인드이다. 물론 정해진 월급을 받으면서 오너쉽을 갖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 없이 일을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일에 대한 피로와 회의만 늘어날 수 있다. 마틴 셀리그만이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몰입’이라고 한다. 몰입은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는 상태를 얘기하는데,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는 데에 시간을 쓰는 우리가 몰입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오너쉽’을 갖고 일하는 것이지 않을까. 이왕 하는 일, 즐겁게 몰입하면서 해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