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니어 회사생활 넋두리
오늘은 회사가 진짜 싫었다.
회사가 싫은 건지, 일이 싫은 건지, 사람이 싫은 건지, 몸이 안 좋았던 건지 모르겠다.(사실 모두 다이지롱)
분명 오후 2시까지 컨디션 괜찮았고, 일도 열심히 했다. 2시쯤 급한 일을 다 마치고 잠깐 화장실을 갔는데 그때부터 갑자기 컨디션이 확 안 좋았다. 몸에 힘이 빠지고, 당 떨어질 때처럼 몸이 떨리고(중요한 것은 당 전혀 떨어지지 않았었음), 삐- 하는 이명이 오른쪽 귀에서 들렸다.
사실 처음 삐-하는 이명을 들은 건 어제였다. 그동안 많이 피곤해도 '이건 이명이다!'하고 느낄 정도인 적은 없었는데, 어제 퇴근 후 운동하고 집에 와서 스트레칭을 하는데 갑자기 내 몸이 영혼에서 분리되는 느낌이 나더니 오른쪽 귀에서 삐-- 소리가 났다.
'뭔가 잘못됐다.'라고 느꼈다. 이명은 낫는 증상이 아니라고 하던데? 약간 무서워진 나는 냅다 침대에 가서 누웠다.
왜 그럴까? 뭐 때문에 몸이 이러지?
난 대학원을 버틴 무려 도비* 출신인데. 괴로웠던 도비 시절에도 이명은 안 들렸는데. (대신 다른 기깔난 증상들을 줄줄이 사탕처럼 달고 다녔지만)
*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집 노비
아무래도 만 30살이 된 후에는 삶의 어나더 레벨이 펼쳐지나 보다. 지금까지와 같다고 생각하고 무리하면 안 되나 보다.
내 최근 일상을 떠올려봤다. 그저께에 브런치 글을 열심히 쓴다고 퇴근 후에도 쉬지 못하고, 어제 아침에도 눈이 번쩍 떠져서 평소보다 1시간 빨리 일어나 브런치 글을 고쳤다. 그리고 퇴근 후에는 피곤한 상태에서 운동을 갔고. 집에 와서는 너무 눕고 싶은데 근육을 푸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애써 스트레칭을 하다 갑자기 삘 받아서 운동을 더 했다... (평소에 안 하는 사람이 몰아서 하죠)
쓰다 보니 알겠다. 내가 절제를 못하고 무리를 했구나. 브런치 글도, 운동도.
다 내가 목표한 것들이고 하면 좋은 것들이지만, 퇴근 후 안 그래도 90%가량의 에너지를 소진한 상태에서 추가 활동은 좀 버거웠나 보다.
여기서 또 교훈을 얻는다. 목표든 꿈이든 목숨이든 오래가려면 적당히 해야 한다...
목숨이 붙어있어야 꿈이든 목표든 이룬다.
(컨디션 좀 안 좋았던 거로 목숨까지 거론하기. 원래 작은 일이 큰일이 되는 거잖아요)
사실 여기까지면 괜찮았을 텐데 안타까운 일은 거기서부터 일어났다.
삐-- 이명을 듣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날 부르는 상사의 목소리. 그녀의 쓴 피드백을 맞이할 시간이 왔다.
꽤 노력을 들여 완성도 있게 업무를 완성했다고 생각했는데, 수많은 피드백 사항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피드백도 피드백인데, 짜증 내는 말투가 특히나 맘을 콕콕 찔렀다.
상사의 얘기를 듣다가, 내 맘속에 울리는 의견들을 좀 꺼내 놓았다. 나도 나름 이제 4년 차라고 이건 이래서 이렇고 저건 저래서 그렇게 했다고 몇 마디 해봤다. 나름 의견 피력. 그리고 결국 '넵 고치겠습니다.' 하고 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수정해보려 해도 수정할 수가 없는 것들이 있었다. 아주 타당한 의견들도 많았고 덕분에 작업이 더 좋아진 점은 감사했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까지 소화해서 결과를 만드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지금 딱 좋은 것을 덜 좋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다녔다.
그에 대한 근거를 확실히 하기 위해 나는 다시 담당자들에게 연락을 해서 이것저것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도움을 요청하는 걸 잘 못해서, 계속 사실 확인하고 관련 정보를 물어보는 게 미안했다.
그래도 어쩌냐 해야지...
어떤 부분은 수정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AI한테 이런 건 어떻게 고치면 좋을까 물어봤더니 지금 상태 그대로 두는 게 낫겠다고 했다.
'상사가 고치라고 했어' 그랬더니 '아, 그럼 고쳐야겠네요!' 그랬다. 미국에서 온 AI도 K-직장인 패치가 잘 되어 있었다..
결국 2시부터 안 좋았던 몸을 끌고 야근 엔딩을 맞았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와서 빨래를 하는데 왠지 점점 내 안의 뭔가가 올라왔다. 인내심이 떨어진다는 감각을 느꼈다.
저 아래 묻어놨던 (대)짜증이라는 놈이 점점 동굴 밖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안돼, 넌 나오면 걷잡을 수가 없잖아.
다시 막 안으로 넣으려 했다.
다행스럽게도(?) 짜증이는 나오지 않고 눈물 몇 방울이 대신 나왔다..
분명 낮에 일할 땐 일에 몰입하는 게 재밌었는데. 완성됐을 때는 성취감 있었고.
그래. 회사일이 어떻게 하고 싶은 일만 할 수가 있겠는가. 피드백을 수용하는 것도 회사원의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것이 내가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더라도. 그리고 그런 부분에 있어서 더 설득력 있게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꼭 필요한 덕목이고.
앞으로 내가 사회생활을 하려면 더 키워가야 할 능력치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고, 듣기 싫은 말을 들어야 하고, 그렇게 참아야 하는 것이 회사생활이지만, 오늘은 꽤나 힘들었다는 넋두리다.
몸이 안 좋으니 더 그랬나 보다.
싫을수록 훌쩍 떠날 준비를 해야 하는데,
집에 와서는 녹초가 된 나다.
참는 것에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고 한다. 참음은 인간사에 꼭 필요하면서 숭고한 것이고, 인내는 훌륭한 인성의 시작이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참으며 보내고 싶지는 않다.
자, 오늘 느낀 것도 회사생활의 n번째 레슨이라고 생각한다.
적절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하기 싫은 일을 덜 할 수 있을 그날을 위해 . . 건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