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을 잊은 '나'

by 글빛현주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하늘이 갑자기 까맣게 변하더니 후두두 두둑,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집 앞 골목은 순식간에 놀이터가 되었지요. 선풍기를 끌어안고 있어도 더웠던 그날, 시원하게 내리는 비를 피해 숨기보다 웅덩이를 찾아 뛰어다니며 놀았어요. 슬리퍼를 신고 첨벙거리는 그 순간들, 여름 소나기는 추억이었습니다. 우산도 없이, 옷이 흠뻑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죠. 그저 비를 맞으며 뛰어다니는 그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대학에 입학해 성인이 되고부터 비는 ‘불편함’의 다른 이름이 되었습니다.

“와, 비 온다. 우산 없는데 어쩌지…”

“어? 내 우산 또 어디 갔어…?”

이상하게도 우산을 잃어버린 날이면 꼭 비가 왔습니다. 잃어버리는 것도 싫었지만, 새로 사는 건 더 싫었습니다. 집에 있는 우산을 챙기는 일조차 무겁고 성가셨지요. 돌아보면, 비가 싫었던 게 아니라 비 오는 날 따라붙는 ‘번거로움’이 더 싫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은 서울에서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분명 하늘이 맑았는데,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빗방울이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와, 비 온다. 나 우산 없는데.”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기차 출발까지는 약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어요. 그때 누군가가 창문을 톡톡 두드렸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환하게 웃으며 우산을 흔들고 있는 친구가 서 있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마주 보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 순간의 고마움은 지금도 선명합니다.

비는 싫었지만, 그날의 따뜻함은 오래도록 마음을 적셨습니다.


돌아보면, 내가 미워했던 건 비가 아니었습니다.

눅눅한 공기, 어둑어둑한 하늘, 우중충한 기운… 비가 데려오는 ‘감정들’이 싫었던 겁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런 감정이 없었으니 비가 오면 그저 놀기 바빴지요. 어른이 되고 나서야 비 오는 날의 무거움이 어려웠던 거예요.


인생도 비와 닮았습니다.

같은 비인데 어떤 날은 반갑고, 어떤 날은 괜히 버겁고, 또 어떤 날은 누군가의 우산 덕분에 따뜻해지지요. 결국 비가 싫은 게 아니라,

내 감정의 변화를 날씨 탓으로 돌렸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중요한 건 비를 피하는 게 아니라, 비 속에서도

내 감정을 잃지 않는 것.


이젠 비가 오는 날이면

'지금 내리는 이 비가 또 어떤 추억을 선물할지.'

궁금합니다. 덕분에 흐린 날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오늘을 돌아보면 이것도 하나의 추억이 되겠지요.

비는 그냥 비였죠.

달라진 건 즐거움을 잊은 ‘나’였습니다.


오늘의 비도, 내일의 비도 미워하거나

귀찮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언젠가 그 빗속에서 웃으며 우산을 건네는 누군가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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