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똥손'

by 글빛현주

엄마의 수제비


어렸을 때 편식이 심했습니다. 엄마에겐 참 미안한 일이지만, 여섯 살 생일날을 잊을 수 없네요.


생일 아침 맛있는 음식을 먹을 생각에 잔뜩 기대하고 밥상에 앉았습니다. 세상에나! 하얀 쌀밥 옆에 떡하니 자리 잡은 고기 미역국. 먹기 싫다고 했다가 아빠에게 혼나고. 한 입 먹고 서럽게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일인데요. 그땐 싫어하는 고깃국을 생일상에 올려준 엄마가 미웠습니다. 당시엔 제가 고기를 싫어했거든요. 그러니 고깃국은 쳐다도 안 봤죠. 어쩌다 삼겹살이라도 구운 날엔 휴지로 양쪽 코를 막고 다녔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는데요. 지금도 썩 고기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대신 해산물은 곧잘 먹었습니다.


"그렇게 편식해서 키가 크다 말았나 보다."

요즘도 가끔 엄마와 아빤 절 보고 말씀하세요. 너 때문에 애들도 고기를 안 먹었다고, 그땐 정말 한대 쥐어박고 싶었다고. 저는 지금 제 키에 만족합니다. 얼마나 아담한 사이즈냐고, 누구에게라도 폭 안길 수 있다고 웃으며 농담처럼 말합니다. 실제로도 그럴 것 같아요. 크다만 키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큰 키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제 모습을 사랑합니다.


아빠는 국수를 정말 좋아하세요. 한 달 내내 국수를 먹어도 괜찮다고 하시니 말이죠. 덕분에 저는 국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질리도록 먹은 탓이죠. 대신 엄마가 해 주시던 수제비를 좋아합니다.


중지 손가락만 한 멸치를 팔팔 끓인 육수에, 큼지막하게 썬 감자를 넣습니다. 까맣고 폭신한 표고버섯을 얇게 썰어 넣으면 버섯 향기가 주방 가득 찹니다. 끓어넘치지 않도록 국자로 국물을 휘휘 젖고 불을 줄이죠. 기다란 초록색 호박을 쫑쫑쫑 채 썰어 잔뜩 넣고요. 냉장고에서 미리 반죽해 놓은 밀가루를 꺼냅니다. 이젠 기술이 좀 필요하죠. 반죽이 너무 질면 손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고요. 너무 되면 두꺼워 맛이 없습니다. 손에 붙지 않고 똑똑 잘 떼어지는 반죽, 수제비 떼어 넣는 엄마 어깨너머로 냄비 안을 쳐다봅니다.


"엄마, 수제비 언제 다 익어? 배고파."

"밀가루가 다 익어야지. 덜 익은 거 먹으면 배탈 나."

엄마는 수제비를 다 떼어 넣고 난 후 커다란 대접에 계란을 탁! 깨어 넣고 휘리릭 저었습니다. 연한 노란색 계란 물, 끓는 냄비에 넣으면 푸르르 거품이 올라오며 금방이라도 넘칠 것 같았던 수제비!

많이 달라며 욕심을 부렸지요. 대접 가득 담긴 수제비 위에 짭조름한 조미 김을 얹으면, 금상첨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지금도 가끔 수제비를 만들어 먹습니다. 바쁠 때는 라면에 수제비 반죽 몇 조각을 넣기도 하고요. 얼큰한 김칫국에 반죽을 떼어 넣고 팔팔 끓여 먹기도 합니다. 때로는 국수와 수제비를 함께 넣어 만들어 먹어요. 그 맛이 참 기가 막힙니다. 시원하고 아삭한 총각김치만 있으면 더 바랄 것이 없지요. 정음이가 절 닮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수제비를 가장 좋아합니다.

가끔씩 수제비가 먹고 싶다는 딸 덕분에, 수제비 반죽을 넉넉하게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 보관하곤 합니다. 최대한 손에 붙지 않도록, 쫀득하고 맛있는 식감을 즐길 수 있도록 반죽을 합니다. 수제비를 만들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납니다. 제게 수제비는 잊을 수 없는 엄마와의 추억입니다.


'요리 똥손'

문득 이런 생각 합니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은 '엄마가 해준 음식' 하면 어떤 것을 떠올릴까. 솔직히 저는 요리하는 것이 귀찮아요. 즐겁지 않습니다. 재주도 없는데 재미도 없으니, 어쩌면 하기 싫은 게 당연한지도 모릅니다. 가족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하루는 아이들에게 진심 반, 농담 반 섞인 말을 건넸어요.

“훈민아, 정음아. 이번 생은 틀렸어. 엄마가 요리를 잘 못해서 미안하다. 맛있는 음식은 나가서 사 먹는 걸로 하자. 엄마가 요리는 못하니까, 대신 돈은 열심히 벌어볼게!”


아이들은 저를 쳐다보며 괜찮다고 합니다. 말이라도 고마웠죠. 그럼에도 제 마음은 불편했고요. 왠지 짠한 생각도 들었죠. 아마 저처럼 요리에 재능이 없는 엄마들도 많이 있을 거란 생각을 해요. 어쩜 그러길 바라는 건지도 몰라요. '동질감'이라 표현하면 조금 우습긴 하겠지만요.

요리를 잘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노력을 해도 잘 안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똑같은 재료, 똑같은 양념으로 매번 전혀 다른 맛을 내는 저처럼요.

그래도 어쩌다 한 번씩 ‘홈런’을 칠 때가 있습니다. 기가 막히게 간을 잘 맞춘 찌개를 끓이는 거죠. 정말 어쩌다 한번! 그런 날은 아이들이 밥 먹으며 맛있다는 말을 계속합니다.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으면서요. 뿌듯하죠. ‘그래, 어떻게 모든 일을 다 잘할 수 있겠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지.’ 매일 홈런을 치면 좋겠지만, 어쩌다 한 번이라도 치면 다행 아닌가. 스스로 위안을 합니다. 그렇게 저는 저만의 방식으로 아이들과 함께합니다. '다 잘 할 순 없지,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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