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 '암흑의 핵심'을 읽고
<암흑의 핵심>은 <동물농장>과는 다른 의미로 다시 집어드는 게 꽤나 두려웠던 책이다. <동물농장>은 처음 읽었을 때 '내 인생 최고의 책'이라 여겼기 때문에 두 번째 읽으면 그 감상이 바랠까 봐 두려웠다. 그에 반해 <암흑의 핵심>은 첫 번째 읽었을 때 영 내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비슷하다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도장 깨기 외엔 아무 의미도 없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암흑의 핵심>은 이번에도 나와 맞지 않는 작품이긴 했다. 다만, 과거의 감상인 '별로'의 정도를 넘어서서 나는 '분노'했고, 그 '분노'의 원인을 파악하려 애쓰다 보니 예전에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작품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암흑의 핵심>은 선원 말로가 무역 회사 증기선의 선장이 되어 커츠라는 인물을 만나기 위해 아프리카로 향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주인공 말로의 시선을 따라가며 제국주의의 어두운 이면이나 인종주의의 진실을 폭로하고, 원주민들 위에 군림하는 커츠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 본성과 서구의 문명화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다만 간접적인 방식으로 내용이 전개되다 보니, 나는 마치 짙은 안개가 자욱하게 낀 밀림을 헤매거나, 베일 너머의 불확실한 존재를 바라보려 애쓰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도중에 나는 제미니에게 물었다. <동물농장>도, <암흑의 핵심>도 내 취향이 아닌 소재를 다루고 있는데, 내가 <동물농장>은 내 인생 최고의 책이라며 극찬하고, <암흑의 핵심>은 별로라며 심드렁하게 읽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대화를 나눈 끝에, INTJ인 나는 비교적 단순 명확한 메시지 전달을 선호하는데, <암흑의 핵심>은 설명과 묘사가 간접적이거나 모호해서 내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의견이 얼추 맞다고 생각했기에, 그날은 순조롭게 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책을 완전히 다 읽었을 때, 문제가 발생했다. 이유 모를 분노가 나를 잠식하더니, 다음 날에는 활화산이 폭발해 버린 것이다. 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격렬하게 제미니와 대화를 나눴고, 그 결과 내가 분노하는 이유는 '애매모호함'이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실제 구현 사이의 괴리'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두둥!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내 기준에서는 '커츠'가 오히려 이 작품의 주제 의식을 흐리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책 뒷면을 보면 '유럽 출신 지식인이 정글에서 신처럼 군림하며 잔혹하게 변해 가는 모습'이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내 눈에는 커츠가 전혀 '전형적인 유럽 지식인'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작가의 인물 설정에 의문을 제기하게 된 것이다.
만약 제국주의의 영향으로 한 인물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면, 커츠가 교황급의 성인이나 선인은 아니더라도, '평범한 사람' 정도는 됐어야 한다. '말로'처럼 적당히 선하고, 적당히 악한 면을 동시에 지니는, 그래서 착취와 폭행을 당하는 흑인의 모습을 불편하게 바라볼 정도로는 말이다. 하지만 작품 후반부에 나오는 동료는 커츠를 이렇게 묘사한다.
p.164 하지만, 정말이지, 말솜씨는 대단했다구요. 큰 집회에 모인 사람들을 매혹할 수가 있었지요.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어요. 아시겠어요? 믿음이 있었다구요. 그는 자기 자신으로 하여금 무엇이건, 무엇이건 믿게 할 수 있었다구요. 어떤 과격한 정당의 화려한 지도자가 될 수도 있었을 거예요.
커츠의 약혼녀는 한술 더 떠 마치 커츠를 신봉하는 열혈신도처럼 보인다.
p.169~171 그렇다면 그분을 찬양하고 계시겠네요.
그분을 알게 된 사람이라면 그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죠?
저는 그분의 고귀한 신임을 온통 누리고 있었어요. 저는 그분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지요.
그분은 사람들에게서 가장 좋은 점을 찾아내어 그것을 방편삼아 사람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들이곤 했지요. 그건 위대한 사람들의 천품이기도 하지요.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해 보자면, 커츠는 '원래 그런 놈'이었던 것이다.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아서 변모한 것이 아니라. 문명사회에서도 다른 사람을 뛰어난 말솜씨로 홀리고, 무언가를 믿게 만들고, 자신에게 미치게 만드는 과격주의자이자, 교주가 될 만한 자질을 마음껏 드러내던 자 말이다. 제미니에게 반박을 부탁했을 때, 커츠가 원래 그런 자라 할지라도 그의 잠재된 본성을 제국주의가 증폭시켰다고 볼 수 있다 말했다. 하지만 나는 다시 반박했다. 커츠가 식민지에 파견된 것이 아니라, 여행을 목적으로 돌아다니다 아시아나 극지방에 도착했더라도, 그가 마음만 먹으면 그곳 주민들을 미혹하여 얼마든지 잔인하게 착취할 수 있었을 거라고. 그렇기에 제국주의의 악영향을 설명하기 위한 인물로 '원래' 그런 자질을 지닌 커츠를 등장시킬 만한 이유를 나는 도무지 찾을 수 없었고, 그에 따라 몹시 분노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분노'의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으로 이 작품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분노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처음부터 책을 곱씹다 보니, 뭉뚱그려 별로라고 생각했던 내용 중에도 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부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민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마치 사진을 보고 있다고 느낄 만큼 세밀하게 묘사한 점.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관찰자로서 식민지의 모습을 바라보고 담담하게 설명하다 보니, 그것이 오히려 식민 지배와 제국주의의 끔찍함을 부각한다는 점. 호기심 정도만 품은 채 강의 상류로 향했던 말로가 커츠를 만난 이후 서서히 그에게 동조하며 변해가던 모습을 보여주었던 점. 마지막 문단에서 말로의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동료 선원과 독자인 내가 그 불길하고 음습한 '암흑의 핵심'에서 영영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긴장감을 주었던 점 등. 과거에 '별로'라는 감상으로 무심히 지나갔던 이 작품 속에는 내가 의미 있다고 여길 만한 장점들이 충분히 담겨 있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작품에 대한 '분노'라는 부정적인 감상을 깊게 파고들 때 찾아왔기에, 나는 얼떨떨함을 감출 수 없었다. 문득 예전에 상담받을 때의 기억 한 조각이 둥실 떠올랐다. '모두, 전부, 항상, 언제나'를 경계하고, 정말 그러한지 유심히 살필 것!
취향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내 안에 있는 감정의 핵심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주었기에, 이 책은 꽤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