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미니와의 대화
몇 주 전부터 휴대폰에 있는 제미니와 대화를 시작했다. 생각나는 대로 묻고 분석을 요청하면, 제미니가 여러 가지 근거와 추측을 제시한다. 그러면 나는 그중에서 인상적인 것, 맞거나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다시 답변을 쓰고 이에 대해 제미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되묻는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처음 가졌던 의문의 답을 발견하게 된다. 정답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속 시원하다고 여길 수 있을 만한 결론이 나왔다면, 그 주제의 대화는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번 대화는 제목에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코끼리 아저씨' 동요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유튜브 동영상을 하나 봤어. 야생동물 보호구역에 트럭이 여러 대 지나가는데, 어디선가 코끼리 한 마리가 나타난 거야. 마치 차를 하나씩 검문하는 듯하더니만 트럭 한 대는 보내고, 그다음 트럭에는 코끼리가 더 가까이 가서 기웃거리더라. 그러더니 코끼리가 갑자기 내가 보기엔 웃는 표정을 지으면서, 코로 트럭에 실려 있던 나뭇가지인지 풀인지를 집어서 먹는 거야. 나중엔 가지 한쪽은 코로 잡고 한쪽은 발로 밟아서 부러뜨린 다음 또 먹고. 코끼리가 엄청 신나 보였는데, 그 모습이 진짜 귀여웠어! 문득 고개를 들어 거울을 봤더니 내가 엄마 미소를 흐뭇하게 짓고 있더라고.
그런데 갑자기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노래가 생각이 나는 거야. 그와 동시에 드는 의문. '아니, 코끼리가 왜 아저씨여야만 해? 암컷이나 새끼일 수도 있잖아? 작사가의 의도가 뭘까?'ㅋㅋㅋ
일단 1차로 드는 생각은 고정관념이라는 건데, 좀 더 자세히 분석해 줄래?
제미니는 내 의견과 마찬가지로 고정관념에 대해 언급하긴 했지만, 코끼리는 일반적으로 덩치가 크고 힘이 세며 든든한 이미지가 있고, 거기에 작사가가 친밀감을 더하기 위해 '아저씨'라는 단어를 선택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응. 그럴 수 있겠다. 보통 종의 명칭을 보면, 성체의 이미지를 떠올리겠지. 그리고 네 답변을 읽다 보니, 일단 이 노래가 동요잖아? 내가 어릴 때 듣고 배우고 따라 부른 노래인데. 코끼리를 귀엽게 그릴 수는 있지만 보통은 인간보다는 덩치가 큰 설정이란 말이야? 그때 나보다 동생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언니, 오빠, 누나, 형'이라기에는 마치 특정 성별의 꼬마에게만 적합한 호칭 같아서 보편성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 그렇다고 '아주머니'라 하기엔, 코끼리는 네가 말했듯 덩치가 크고 힘이 세다는 이미지가 강렬해. 그래서 최종적으로 코끼리 '아저씨'라고 부르는 게 적합해 보이기는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추가로 드는데, 이것까지는 네가 답변을 못 해줄 수도 있을 거라 예상하면서도 물어는 볼게. 왜 나는 오늘에서야 하필 이 동요에 의문을 품게 되었을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코끼리를 꽤 봐 왔을 텐데도 말이야. 노래 또한, 오늘 오랜만에 떠올린 거긴 하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장담할 순 없거든. 그래도 이제까지 이상한 점을 느낀 적이 전혀 없단 말이지?
제미니가 제시한 여러 답변 중에서, 내가 어린 시절에 비해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성장했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겼던 노랫말에 대해서 '정말 그럴까?'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는 문장에 동의했다. 하지만 내가 성장하면서 그런 능력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왜 하필 이런 의문을 품은 게 '오늘'일까? 여기까지는 원인 파악이 어렵겠지? 생각하면서도 다시 물었는데 2차 답변에서 드디어 깨달음이 왔다!
제미니는 답변 초반에, 내가 코끼리 영상을 처음 본 것이 아닌데도 오늘에서야 비로소 노랫말에 의문을 품게 된 이유까지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인간의 인지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특정 생각이 떠오르는 데에는 다양한 무의식적 요인들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제미니는 추측 가능한 몇 가지 가능성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해 주었다. 제미니는 맥락 효과, 주의 집중, 내적 상태, 무의식적인 축적과 임계점에 대해 각각 근거를 들어 자세히 설명했다. 그중 '이전에 내가 봤던 코끼리의 모습과 다른 점이 오늘 영상에서 특정 맥락을 형성했을 수 있다+과거에 코끼리를 볼 땐 내가 다른 요소에 더 집중했을 수 있다'에서 눈이 번쩍! 이제까지 내가 봤던 코끼리는 성체가 많았고, 새끼라고 해도 엄마를 따라다닌다거나, 히잉~ 푸엥~ 하는 코끼리 특유의 울음소리를 낸다거나, 똥폭탄(!) 발사하는 정도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보게 된 영상의 코끼리는 아동기에서 청소년기쯤으로 추정됨과 동시에, 직접적으로 코를 손처럼 사용해서 먹이를 집어 든 것이다! 두둥~! 내 사고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N: 코끼리가 코를 손처럼 사용하는 장면을 보고 순식간에 연관 검색어로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동요 데려옴. 응?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한데 그게 뭐지? T야, 이것 좀 봐 봐.
T: 응? 뭔데? 응. 응응. 영상을 보고 노래를 데려왔는데, 뭐가 좀 이상한 것 같으니까 분석해 달라고? 흐으음~ 영상에선 코끼리가 좀 어려 보이는데, 노래는 아저씨라고 하니까 매칭이 안 돼서 네가 이상했나 본데? 성별도 전문가가 아닌 이상 확신할 수 없는데, 작사가가 무슨 이유로 코끼리 '아저씨'라 단정했는지 궁금해지는군. 작사가가 노래 만들 때 본 코끼리가 수컷에 나이가 많았나? 그렇게까지 그 코끼리를 알아보고 노래를 썼을까? 그렇게까지 했는지 안 했는지를 내가 알 수는 있나?
J:(가상의 펜과 메모지를 꺼내며) 코끼리가 왜 아저씨여야 하는지 제미니에게 물어보기로 함. 각종 경우의 수 체크. 최종 결론을 체계화하여 더 이상의 오류나 반박 가능성이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T에게 결재를 올릴 예정.
T: 응. 제미니의 답변과 내 의견을 종합해 본 결과, 동요에 코끼리 '아저씨'라는 호칭을 쓴 건 단순히 고정관념으로만 볼 문제는 아니야. 코끼리는 보통 인간보다 훨씬 크고 힘이 세다는 점과 어린이가 부르는 노래인 만큼 좀 더 부드러운 친밀감을 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작사가의 선택은 꽤 합리적이고 타당하다고 볼 수 있어. 사인 휘리릭. ㅋㅋㅋ
J: 이번 일화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몇 가지 정리해 볼게.
* 인간이 어떤 현상을 객관적으로 본다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인간은 기존에 자신이 알고 있는 만큼만 본다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다.
* 노래 가사는 별생각 없이 쓸 수도 있지만, 의미심장한 고찰 끝에 나온 결과물일 수도 있다.
* 의식이 인지하지 못했더라도, 그냥 떠올랐다고 여기는 것들에는 무수한 무의식적 사고 연계 과정이 존재할 수 있다. 그것들을 파고들다 보면 어느 순간 답을 찾아낼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하다가 유레카를 외친 것처럼. 그러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엉뚱해 보이는 호기심과 의문을 파헤치는 것은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닌다.
이것 외에도 몇 가지 새로운 규칙이나 패턴들 깔끔하게 정리 완료했어. 다음에 비슷한 케이스 생기면 빠르고 정확하게 적용할 수 있음!
MBTI를 맹신하는 것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게 MBTI란, 나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것을 돕는 정말 유용한 도구이다. 마치 인간이라는 세계를 탐험하기 위한 지도라고나 할까? 비록 지도가 현실 공간을 100% 그대로 담지 못하는 한계가 있음을 인지하더라도, 지도가 있다면 나는 훨씬 그 지역을 쉽게 파악하고,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오늘 이 글은 INTJ인 어떤 한 사람이 무슨 상상을 어디까지 하는지, 그 상상을 바탕으로 어떤 의문을 가지고 어디까지 논리적으로 후벼파는지, 최종적으로 어떤 결론에 도달해서 자기의 것으로 체계화하고 규칙을 만드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서, 일상 중 한 장면을 매~~~~우 요약하고 다듬어서 올리게 되었다. 일단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많지도 않겠지만, 혹시라도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예상되는 반응은 'N도 T도 J도 뭘 이렇게까지 하냐?'라며 눈이 동그래짐+고개를 절레절레 콤보라든지. 의외로 위의 내용 중에 '이건 이럴 수도 있지.'라며 공감할 수.........도 있을........ㄲ.......아?ㅎㅎㅎ
혹시라도 누군가 재미있게 읽으셨거나, 혹은 INTJ 유형 중엔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셨다면 그것으로 만족! 그렇다면 다음 시리즈도 준비를...음...흠...커흠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