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3. 17.(월)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딱히 무언가를 구독하거나 찾아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정식으로 방영하는 프로그램을 보는 것은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이용할 때가 유일하다. 리모컨으로 채널을 마구 돌리다가 멈추는 프로그램이 몇 개 있는데, 최근에 자주 보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전현무계획'이다. 먹방보다는 여행이 좀 더 내 취향 키워드인데, 해외나 휘황찬란한 장소가 아니라 지방 소도시나 여행객이 몰릴 것 같지 않은 허름한 식당을 주로 찾아가서 더 눈길이 간다. 편안한 복장에 단순하고 통일된 백팩을 메고 다니는 것도 좋고. 이번에 내가 본 편에서는 게스트가 김준현 씨였는데, 처음 그에 대한 힌트를 말할 때 전현무 씨가 '상도덕'이라는 단어를 말하며 괜찮은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장면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먹방이라는 카테고리가 겹쳐서 나온 이야기이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각 프로그램마다 지니는 성격이 다르다. 어젯밤에 읽은 여행 잡지에서도 인플루언서가 '콘텐츠 빼앗기'에 대해 언급해서, 메모를 하며 혼자 사색에 빠졌더랬다. 먹방이든, 여행이든, 내가 현재 결과물을 쌓아가고 있는 독서나 글쓰기, 연주든 어느 분야에서나 대단한 사람들은 넘쳐 난다. 물론 같은 업계 내에서는 모두가 나의 경쟁자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마다 출발지와 목적지는 다르다고. 다만 도화지에 여러 가지 선을 그렸을 때 서로 가까워지는 지점이 있을 뿐이라고. 혹은 고속도로에서 잠시 옆 차선에 있을 뿐이라고.
나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 살고 있고, 나와 같은 나이이고, 나와 같은 연도에 학교에 입학하거나 졸업하고, 나와 같은 시기에 직장에 들어오고, 나와 같은 분야에서 일을 하고. 이런 상황에서 옆 사람이 신경 쓰이고, 그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한창 매일 죽음을 생각하고 마음이 저 깊은 수렁에 빠져 있을 때는 직장 동기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이 그렇게나 괴로울 수가 없었다. 다들 힘들다고 말은 해도 잘해 나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꼬리 말고 도망친, 겁에 질려 덜덜 떠는 꼬질꼬질한 개 같았다. 지금은 그런 개면 또 어떤가 싶기도 하고, 어차피 그 사람들과 나는 갈 길이 다르다거나,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을 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단톡방에 올라오는 메시지 하나하나가 가슴에 꽂히는 커다란 창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거기에서 나간다거나 알림을 무시할 생각도 못하는 스스로를 더욱 한심해하고 혐오했고.
10대, 20대, 30대 고립의 시간들 속에서 나는 늘 갈라파고스 제도를 떠올렸다. 육지와 멀리 떨어져서 독특한 종들이 고유의 특색을 지니며 살아가는 그곳. 나는 그곳에 사는 생물이라고. 다시 고요한 갈라파고스로 돌아온 나는 그 어떤 방해도 없이 나로 살아가고 싶다. 나의 색깔과 정체성 그대로를 지키고 가꾸며 나만의 진화를 이뤄가고 싶다. 내가 간절히 바라고 원해서 도착한 섬이니까, 나는 내가 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