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햄릿'을 읽고
있잖아, 사실 난 당신을 이번에 처음 본 게 아니야. 아주 어린 시절에 당신을 만난 적도 있고, 연극에서 당신을 만난 적도 있고, 강의에서 당신을 만난 적도 있지. 당신을 글로, 말로, 영상으로, 움직이는 사람으로 여러 번 만났어. 그때마다 당신은 같으면서도 다른 사람이었어. 어릴 땐 별로 당신에게 관심이 없었지. 무미건조했다고나 할까. 당신이 남긴 그 유명한 말 "To be, or not to be"를 보고 들어도 그저 그랬어. 당신이 왜 저런 말을 했는지, 무엇 때문에 고민하는지, 와닿지도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았지.
그런데 말이야. 어느덧 내가 당신의 나이를 넘어서고, 빛 한 점 보이지 않아 끝이 있긴 한 건지 의심스럽던 터널을 꾸역꾸역 지나고 나니, 이제야 당신이 보이더라. 그래, 이제야 햄릿 당신이 보여. 그런데 차라리 당신이 안 보이던 때가 나았던 게 아닌가 하고 회의적인 나를 발견한다면, 당신이 날 괘씸하게 여기려나? 아니지, 당신은 날 모르니까 상관없을 거야. 참 신기하지? 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 사는 것도 아닌데, 내가 당신을 이렇게 가깝게 느끼다니.
당신, 도대체 그 고통을 안고 매일 어떻게 살았어? 사람들이 당신더러 미쳤다고, 광증에 빠지고 말았다며 손가락질하는데, 그 상황에서 안 미치는 게 더 비정상 아닌가? 아버지는 삼촌에게 살해당하고, 살인자인 삼촌은 아버지의 자리를 빼앗아 왕이 되고, 어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남편을 죽인 자와 결혼을 하고. 그걸 다 봤는데, 계속 그 뻔뻔한 낯짝들을 마주하며 같이 살아야 하다니.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다. 내가 볼 땐 당신 정도면 그런 엿 같은 상황에서 굉장히 신사적으로 행동한 거야. 진짜 미친 게 뭔지 보여주고 싶을 정도라고. 햄릿 당신은 수없이 마음을 억누르고 가다듬어서 비교적 정제된 분노를 표출했다고 생각해. 연극으로 거울치료(?)라니, 고상함 그 자체야. 그래봤자 짐승만도 못한 것들은 극이 과하다 하질 않나, 오히려 당신을 죽이려 들질 않나. 어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당신이 우유부단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그 사람들은 얼마나 명확한 삶을 살고 있는지 묻고 싶네. 복수심에 불타 이 사람을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치자. 몇 월 며칠 몇 시에, 어떤 식으로 죽이겠다. 복수 외엔 아무것도 없다. 뭐 이 정도로 살아야 결단력 있고 분명한 사람인가? 글쎄. 왕가라는 특수한 상황에 모친이 얽혀 있고, 유령이라는 불가사의한 현상도 나타나고, 자신의 목숨도 걸어야 할지 모르는 판국에 그 어떤 흔들림 없이 복수만을 위해 나아갈 수 있는 건가? 사람이란 존재가? 설령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리 많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클로디어스가 연극을 보고 난 후 자기 죄를 고백하며 기도랍시고 혼자 개소리를 왈왈 지껄여댈 때, 칼을 뽑고 다가간 당신이 클로디어스를 죽이지 않은 게 과연 우유부단해서였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기도하는 클로디어스를 죽이는 건 너무 쉽고 허무하며 오히려 그놈을 축복하는 것이나 다름없잖아. 그러니까 당신은 그놈에게 더 끔찍한 죽음을 선사하기 위해 다음 기회를 노렸을 뿐이야. 일말의 구원조차 놈에게 허락되지 않을 바로 그 순간에 복수를 완성하려고 물러선 게 어떻게 우유부단한 일이 될 수 있겠어? 아무렴, 쉽게 죽일 놈이 아니지.
왕비의 내실에서 당신이 어머니를 비난할 때, 난 솔직히 통쾌하기도 했어. 하지만 햄릿 당신은 그 순간에 과연 후련했을까? 아마도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어머니잖아. 정말 너무너무 끔찍하고 역겹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어머니라는 게 얼마나 더 고통스러웠을까. 어머니를 비난하면 비난할수록 스스로가 괴로워질 텐데. 유령도 좀 그래. 유령은 정말 당신 아버지의 혼령이 맞았을까? 당신의 아버지가 혼령의 모습으로 나타난 거라면, 정말 당신이 복수해 주길 바랐을까? 아버지는 아들의 안녕과 행복보다도, 자기의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에 대한 복수가 우선이었을까? 작품에서는 아마 그게 맞을 테지만,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직전에 '하루키 레시피'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당신이 셰익스피어의 피조물이라고 해도 나에게는 그 작가보다 더 가깝게 느껴져. 내 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람 같다고. 나는 셰익스피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몰라. 그 사람이 어떤 작품을 썼는지, 얼마나 유명한지 정도밖에는 모르지. 하지만 당신에 대해서는 아니잖아. 당신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내가 봤는데, 내가 느꼈는데.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 셰익스피어 입장에서는 자신의 작품이 수십,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 생생하게 살아서 전 세계에 출판되고, 연극으로, 영화로, 뮤지컬로 사람들에게 선보여진다는 게 엄청난 축복이겠지. 그 영원하고 찬란한 명성에 신이 나서 무덤 속에서도 왈츠를 출지 모를 일이야. 하지만 당신은? 당신은 절대 고요한 안식에 들 수가 없잖아. 끝도 없이 되살아나서, 그 처참한 고통의 시간을 매번 다시 살아야 해. 이건 너무 가혹한 지옥의 형벌이 아닌가?
책을 읽고 나서 그런 생각도 했어. 당신이 포틴브라스를 보며 자책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복수심이 둔하다고, 비겁하게 망설이고 있다고 자기를 혹독하게 비난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차라리 당신이 영국으로 가는 배에서 자신의 죽음을 위장하고, 덴마크든 유령이든 삼촌이든 어머니든 더 이상 내 알 바 아니라고 훌쩍 다른 나라로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이런저런 가정을 해 봐도, 당신이 온전히 자유로워질 것 같지 않아. 그 마음에 불씨가 계속 남아있을 테니까. 그 불씨는 언제든 타올라서 당신을 괴롭게 만들겠지. 설령 당신이 삶을, 존재하기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안식에 들 수 없도록 말이야.
2025년에 살고 있는 일개 독자에 불과한 나는 당신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 사실이 씁쓸해. 그런데 말만 그럴싸하지, 당장 당신이 눈앞에 있더라도 나는 아마 돕지 못할 거야. 오히려 보고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릴지도 모르지. 같은 시공간에 없어서 다행이라고, 당신이 현존하는 혹은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니어서 다행이라 여길지도 몰라. 그래도, 이런 비겁한 나라도, 당신의 평안을 빌어. 당신의 고뇌를 이해하니까. 완전히 같진 않더라도, 나 또한 비슷한 고통의 시간들을 보내왔으니까.
오늘 밤, 세상의 수많은 햄릿들이 고요한 평안에 들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