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밸브가 알려준 것들.

by 글곰

아빠는 오늘 바쁜 하루를 보냈어.

관리하고 있는 기계가 잘 되지 않았거든.


며칠 전 고객 요청으로 장비 점검을 위해 방문을 했어.

하지만 수리가 되지 않았어.

국내에 많이 판매된 제품이 아니라서 어려웠어.

서비스 설명서를 보며 해결해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어.

결국 핀란드 본사 엔지니어에게 도움을 요청했어.


오늘은 그 엔지니어와 원격으로 함께 기계를 점검했어.

PC는 원격제어,

휴대폰은 줌 연결을 통해 소통을 했어.


시차가 있기 때문에 핀란드 분은

현시 시간으로 오전 7시에 접속을 했어.


아빠는 다른 제작사와도 원격 점검 및 화상회의를 하고 있어.

정말 신기한 세상이라며 매번 놀라고 있어.

코로나 이후 익숙해질 만도 한데 화상회의는 어렵더라.


특히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려고 하니 힘들었어.

조금만 천천히 말해달라고 하며 진땀을 뺐어.


핀란드 엔지니어와 기계 화면을 비춰가며 어디가 문제였는지 확인했어.

그분은 도면을 펼쳐두고 선 하나하나를 꼼꼼히 체크했어.

아빠가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나씩 화면으로 보여줬어.


'이거 내가 점검했던 건데 시간 아깝게 왜 이렇게 하지?'라는 생각을 했어.

한참 동안 호스와 밸브, 신호선을 확인했어.

결국 밸브 하나가 고장 나서 닫히지 않고 있는 것을 찾아냈어.


'경험의 차이인가? 분명 나도 확인했는데...'

경험의 차이도 중요하지만

일을 대하는 모습이 아빠랑 조금 달랐어.


아빠도 원인을 찾으려고 했지만 급한 마음에 너무 서둘렀어.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는 거 알지?

실험을 하거나 이렇게 기기 점검을 할 때 명심해야 하는 말이야.

오랜만에 서비스를 하니 아빠가 놓쳤던 거야.

수리를 마치니 기계는 정상으로 돌아왔어.


땀을 잔뜩 흘리며 두 가지를 느꼈어.


첫 번째는 '언어의 한계'야.


기술이 발전해서 자동으로 통역이 되는 세상이야.

사진을 찍으면 우리말로 번역이 되지.

근데 사람과 직접 대화를 하려고 하니 잘 안되더라.


AI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대화는 필요한 것 같아.

결국 내가 가진 언어의 양만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어.


우리가 아는 만큼 말하고,

말할 수 있는 만큼 이해한다는 것을 느꼈어.

결국 우리 언어의 양을 늘리기 위해 독서를 더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어.


두 번째는 '고장의 신호는 분명히 있다'는 거야.


기계가 고장 나면 이유가 있기 마련이야.

아무런 이유 없이 멈추거나 고장이 나지 않거든.


중요한 건 고장이 나기 전에 미리 신호를 보낸다는 거야.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면 결국 기계를 못쓰게 되지.


고객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알 수 있었어.

가끔 측정 결과가 이상하게 나왔는데

별일 아니라고 생각해서 넘겼다고 하더라.


계속 발생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지.

미리 조치했으면 어땠을까?

기계가 멈춰서 제품을 못 만드는 상황이 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어.

1:29:300이라는 건데,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29번의 작은 문제, 300번의 잠재적 신호 나타난다고 하더라.


건강도, 기계도 마찬가지야.

처음에 이상 신호를 감지해야 큰 사고를 막을 수 있어.

기계도 아프기 전에 신호를 보내는데, 너희는 어떨까 생각했어.

마음이 무겁거나 이상한 느낌이 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엄마, 아빠에게 꼭 신호를 줘.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있어서 감사한 하루였어.

오늘 너희 학교 생활은 어땠니?


함께 응원하며 일상을 나누며 배워가는 우리 가족이 되자.

아들아, 딸들아.

엄마, 아빠는 너희를 언제나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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