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순간이라.'
직장과 가정을 돌보며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때론 친구들을 만나고, 아이들 친구 학부형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런 만남은 잠시 즐겁지만, 마음 깊이 남는 울림은 없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자신의 신세한탄으로 끝나기 일쑤지요.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외롭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고, 배우자가 있지만 제가 가야 할 길이 어딘지 고민합니다. 밤늦은 시간 골목길을 걸을 때면 고독한 기운이 강하게 올라옵니다.
세 아이들을 양육할 때는 느끼지 못했습니다.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느라 바쁜 삶을 살았기 때문이죠. 울고 웃는 아이들, 배고프다고 졸라대는 아이들을 챙기다 보면 고독의 순간을 느낄 새가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늦은 밤, 식탁 앞에 홀로 앉아 소주 한 잔을 기울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것이 고독의 순간이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고독에 대해 말했습니다.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은 고독으로 두 가지 이점을 얻는다. 첫째는 자기 자신과 함께 할 시간을 얻고, 둘째로는 타인과 함께하지 않을 자유를 얻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자신의 고독 속에서 즐긴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고독함이 주는 무료함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매번 저급한 즐거움으로 잠깐의 쾌감에 취하려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늘고 있습니다. 항상 함게 있을 것 같던 아이들은 자기만의 인생을 살기 시작한 것이죠. 친구와 만나기도 하고, 홀로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면서 '참 많이 자랐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만큼 시간이 흘렀고, 저와 배우자 역시 많이 자랐습니다.
아이들 양육을 떠나 인생을 살면서 고독의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20,30대의 에너지가 줄어들기 때문이죠. 점점 혼자만의 시간은 늘어날 것입니다. 이 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60, 70대의 모습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소크라테스가 말한 저급한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혼술과 각종 미디어로 시간을 소비하는 모습 아닐까요? 저 역시 그런 모습입니다. 독서를 하고 글쓰기를 하고 있지만, 고독의 순간을 마주하면 아직도 두렵습니다. '나 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라며 애써 그 상황을 피하려 하지요.
그 시간에 사람들을 만나 왁자지껄 시간을 보내는 것도 어느덧 무료해졌습니다. 성장의 시간을 놓치고 있다는 조급한 마음이 들더군요.
고독한 시간의 이점을 얻으려면 더 읽고, 더 써야 합니다. 아직 마주하지 않은 우리 모습을 확인할 때 고독의 순간이 기쁨이 순간으로 변하지 않을까요?
우리 시간, 우리 에너지를 아껴가며 우리만의 시간을 즐겨보는 겁니다. 독서, 산책, 글쓰기 그 무엇이든 좋습니다. 고독의 시간을 두려워하면서 나쁜 위로를 하면 안 되는 것이지요. 이 고독의 시간이 결국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양육자의 길이 참 어렵구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이들 어렸을 적엔 '언제 자라는 거야'라며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훌쩍 자라난 모습이 아쉽더군요. 그들의 인생을 살아갈 준비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흐뭇하지요. 하지만 점점 저와 멀어지는 모습이 아쉽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고독의 순간은 찾아옵니다.
그 시간을 피하지 않고 성장의 기회로 바꿔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잘할 수 있습니다. 이미 잘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