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아래에서 믿음에 취향이 있을 수 없다.
나는 원래 생각하는 체계에 있어 이성이 최고의 권위를 가졌다고 여겼다. 이성을 갈고닦아 논리적인 사람이 되면 모든 것을 판별하는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런데 결국에는 사람의 이성은 믿음에 영향을 받는 연약한 요소임을 깨달았고, 믿음 아래 이성이 있다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우리가 이성으로 다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에 우리는 무언가를 논리적 근거가 없더라도 믿는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종교가 내가 말하는 믿음의 예다. 이러한 믿음은 우리가 우리 이성으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설명하고 이야기해 준다. 더 자세한 내용은 내 블로그의 ‘믿음 아래 이성’이라는 글을 읽어보면 되겠다.
오늘 할 이야기는 진리, 즉 옳고 그름에 관한 것이 믿음과 이성보다 우위에 있다는 내용이다. 믿음이 우리 생각 체계의 최고 권위의 위치에 있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믿는 것은 모두 정당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너의 믿음도, 나의 믿음도 모두 맞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은 이성의 주관이었는데, 이성이 믿음 아래에 위치하게 되었으니 믿음을 판별할 수가 없어졌다. 어떤 믿음이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니 그저 타인의 믿음을 긍정하는 게 가장 좋은 선택지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는 모든 믿음이 맞고, 타당하고, 정당하다고 믿지 않는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어떠한 믿음이 옳은지 그른지 알 수 있는 기준이 없다고 해서 ‘그러니 모든 것이 옳다’라고 말하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이다.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별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옳고 그름은 ‘없다’고 주장할 수 없다. 본인의 무지로 모든 것을 옳다고 긍정하는 것은 겸손을 가장한, 진리에 대한 게으름이다.
둘째로, 믿음을 분별할 수 있는 진리가 외부에서 우리에게 온다고 나는 믿는다. 진리는 우리 안에서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외부에서 우리에게 오는 진리는 우리의 믿음이 다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믿음에 관해 진리는 그 자신 아래에서 믿음에는 취향이 없다고 선포한다. 진리는 모든 믿음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별한다.
진리에 대해서 우리가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 우리가 진리를 어떻게 알아볼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께서도 모른다고 하셨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그에 대한 답은 포기한 상태다(나도 진리에 대해 게으름을 피우고 있나?). 그렇기에 누군가가 진리를 안다고 해서, 진리를 모르는 사람에게 진리를 강요할 수가 없다.
나는 진리 아래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이성이 설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운 좋게 알게 된 진리에 근거해 올바른 믿음과 올바른 이성으로 글을 써나가고 싶다. 나의 글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기초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물론 내가 가지고 있는 기독교적 이해에 실수가 있고 틀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내가 정말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성장하기 위해 글을 쓴다. 모나고 공격적이고 투박한 글을 쓰게 될 예정인데,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나로 인해 피해를 보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