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2016년, 29살 여름이었다. 이때 난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다. 사업을 시작해 볼 것인가. 다시 취직을 할 것인가. 다니던 직장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뒤였다. 그곳에서 매장 오픈을 사장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카페 인테리어, 기기 설비, 카페 동선 설계 등 영업 시작을 위한 많은 일을 겪었다. 다른 무엇보다 커피 로스팅을 배우는 것이 컸다. 이곳을 다니기 전까지 로스팅을 해보지도 보지도 못했다. 로스팅이야말로 나에게 생활의 달인이 알려주는 비법 같은 것이었다. 사장님에게 로스팅을 배웠고 카페, 커피 생산에 대해 한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어디서 생두를 사야 하는지, 커피를 어떻게 보관을 해야 하는지, 택배사와 어떻게 거래를 하는지. 많은 것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다니던 직장이 위태로워졌다. 월급이 조금씩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길했다. 월급이 들어오기로 한 날짜가 하루 이틀이 지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 한 번은 그럴 수 있지 뭐'라고 생각했다. 한번 두 번이 될지 몰랐으니까. "이번 달 조금 힘들어서 그러니까 좀만 기다려줘" 이 말도 두 번 세 번 반복될지 몰랐다. 월급이 밀리는 상황은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월급 달라고 하면 재촉하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고 달라고 안 하면 영원히 안 줄 것 같아서 불안하고. 지금 상황이라면 노동청에 신고 들어갈 이야기다. 하지만 그땐 그랬다. 돈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던 이유가 또 있다. 사장님과 원래 형 동생하면서 알고 지냈던 사이라는 것. 몰랐던 사이였다면 아마 노동청에 사장을 신고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는 사람 아닌가. 형 동생하던 사이가 아닌가. 그러니 돈 얘기를 꺼내기 어려웠다.
형과 동생의 입장은 다르다. 동생으로서 월급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형은 달랐다. 아랫사람이 더 열심히 해주길 바랐다. 내가 동원 예비군을 갔을 때였다. 동원 예비군은 2박 3일 동안 지정된 군부대에서 훈련을 받는다. 입소 첫 째날에 핸드폰을 제출해야 하고 당연하게도 사용은 안된다. 3일째 훈련이 끝나고 퇴소 준비를 하면서 핸드폰을 돌려받는다. 핸드폰을 받고 바로 켰다. 눈을 스마트폰에 고정한 채 부대 입구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왔다. 사장님께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끝났냐?" "네, 왜요?" "빨리 출근해라" "무슨 소리예요. 나 지금 막 나왔는데" "팝업 잡혔어 그러니까 빨리 와" "..." 지금이었다면... 아니다.
결국 출근했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전투복 벗고 편안 옷으로 갈아입었다. 시간은 아마 6~7시 됐을 것이다. 현관문 손잡이를 열고 나오면서도 헛웃음이 났다. '이게 뭐 하는 거지'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현대백화점으로 갔다.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고 사장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거의 다 도착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분주해 보였다. 팝업 행사를 준비 중이었다. 닭강정 브랜드도 눈에 들어왔고 호떡집, 어묵집도 바쁘게 팝업 준비 중이었다. 다음 코너에 사장 형이 서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빨리 와 이 씨"
팝업 준비를 끝내니 밤 11시 정도가 되었다. 녹초가 돼서 백화점 뒷문으로 나왔다. 5시까지 예비군을 받다가 출근해서 11시까지 일이라니.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수고했다" 사장 형이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라" 이렇게 말하곤 등 돌려 홀연히 자기 차가 주차돼 있는 주차장으로 사라졌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이미 버스, 지하철 모두 끊겼다. 그렇다면 택시를 타고 가야 하는데 돈을 줘야 하는 사람은 나 몰라라 하고 도망갔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 '예비군 하고 출근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씨X 택시비도 안 주고 가네!' 화가 쉽사리 식지 않았다. 이 일로 깨달았다. 형 동생 사이에서도, 사장과 직원 사이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존중이 없었다는 것을. 밀린 급여보다 더 큰 상처를 만든 사건이었다.
결국 두 달치 월급이 통장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원히 그 돈이 내 호주머니로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유일한 직원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아메리카노가 몇 잔이 팔리는지, 손님이 몇 명 오는지 내 머릿속에 있었다. 이제 선택해한다. 직장을 그만둘지 계속 다닐지. 일한 몫이 더 이상 들어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도 있었지만 동생으로서 직원으로서 그 어떤 존중을 받지 못한 것이 더 컸다. 배려는 욕심이었다.
결국 마음속에 투표를 시작했다. 결과가 나왔다. 100:0. 퇴사로 만장일치.
'자 이제 자영업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