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PC를 바라보는 시선
* 얼리어답터에 2018년 11월 22일 발행된 글입니다.
애플이 지난 20일 자사 유튜브 채널을 통해 아이패드 프로(iPad Pro)가 당신의 다음 컴퓨터가 될 수 있는 5가지 이유라는 광고를 공개했다. 일단 아름답게 만든 애플의 광고부터 감상하자.
아이패드 프로가 내 다음 컴퓨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아래의 5가지다.
맞다. 강력하다. 신형 아이패드에 탑재한 A12X 칩의 성능은 애플의 설명을 빌리자면 '환상적이다.' 무려 최근 공개한 아이폰 Xs보다 1.6배나 빠르다고 한다. 운영체제가 다른 기기의 벤치마크를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단순 벤치마크 점수만 놓고 보자면 실제로 비슷한 수치다.
오히려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지만, 효율적인 전원 관리, 그리고 온도 관리가 된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싶다. 팬이 없고, 얇고 가벼운 기기가 사무 작업 후에도 12시간 이상 돌아가는 건 아이패드 프로의 프로다운 점이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운영체제에서 성능을 수치로만 비교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묻고 싶다.
글쎄? 물론 새로운 아이패드 프로에는 이들 모두를 지원한다. 스캔은 오피스 렌즈 앱으로, 다양한 카메라 앱으로, 아이무비, 루마 퓨전, 개러지 밴드, 아이북스, 오피스 워드까지... 이는 자체 기능이라기보단 별도의 앱의 힘을 빌린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컴퓨터에서도 대부분 지원한다. 아이패드 프로 같은 카메라를 담지 않아 몇 가지 영역에선 약세지만, 프리미어, 로직, 오피스... 아이패드 프로보다 훨씬 강력한 성능을 갖춘 전문 영역의 프로그램이 컴퓨터를 지원한다.
맞다. 기존 노트북에서 가장 불만인 부분은 데이터 네트워크 모듈을 다는 데 인색하다는 점이다. 배터리 소모량과 설계 구조의 변경, 단가의 상승 등 여러가지 고려할 점이 많다는 건 이해하나, 언제나 인터넷에 연결된 채로 일상을 보내는 지금. 강력한 작업 도구인 PC가 아직도 온라인에 미온적인 건 아이패드 프로의 장점이 빛나는 부분이다.
다만 제한적이지만 HP, 마이크로소프트 등 일부 기기에서는 특정 모델에 한해 LTE 모듈을 지원한다. 또한, 5G 네트워크가 상용화된 후에는 PC에서도 인터넷 연결을 점차 활발하게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아니. 터치 인터페이스가 기존 인터페이스를 완전히 대체할 순 없다. 아이패드 프로가 뛰어난 태블릿이지만, 기존 PC의 생산성을 넘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터치 인터페이스 때문이다. 가장 좋은 스타일러스는 우리 손가락이라는 말은 아직 유효하다. 터치 인터페이스는 직관적이다. 원하는 개체를 직접 손으로 만져 옮길 수 있다. 하지만 생산성의 영역에서 터치 인터페이스가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보긴 어렵다.
우선 정확성이 떨어진다. 오밀조밀하게 모인 개체 중 하나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아직도 아이패드에서 원하는 글자, 단락만 선택하기는 번거롭다. 확대하면 되지 않느냐고? 그러면 선택하려고 단계를 하나 더 거쳐야 하는 꼴이다. 그리고 키보드와의 궁합이 좋지 않다. 터치 인터페이스에선 키보드와 함께 쓰면서 한 손을 계속 화면으로 가져가야 한다. 움직이는 거리가 상당하다. 이 거리를 좁히는 시도가 아이패드에선 찾아볼 수가 없다. 외부 입력장치를 포기하고 화면 키보드에만 집중하는 게 좋은 선택지가 될까? 그것도 아니다. 애플은 키보드가 딸린 폴리오 커버를 권한다. 결국,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고 빠를진 몰라도 기존의 PC를 대체할 만큼 생산성 측면에서 직관적이고 빠르진 않다.
맞다. 애플 펜슬은 초기 아이패드와 아이패드 프로를 나누는 기준이었고, 아이패드를 더 강력한 도구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서드 파티 앱과의 호응도도 뛰어나 일부 작업은 PC보다 훨씬 쾌적한 경험을 선사한다. 드로잉, 전자 필기 분야는 기존 PC보다 훨씬 낫다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다. 2세대 애플펜슬은 보관 문제도 덜어내 좀 더 아이패드와 밀착된 구성을 보인다.
하지만 역시 애플 펜슬이 모든 작업을 보완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성능을 갖춘 건 아니다. 정확도가 상승했으나 앞서 지적한 생산성 차원에서 단점을 모두 보완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마우스와의 단가 차이도 분명히 짚고 넘어가자. 독점적인 애플 펜슬을 쓰는 데 쓰는 기회비용은 타사 최고급 마우스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비용과 비슷하다.
아이패드 프로는 iOS 샌드박스 정책 덕분에 통합적인 파일 관리가 어렵다. 더불어 외장 저장장치를 지원하지 않으며, 이번 아이패드에 USB 타입 C 단자를 채택하기 전까지는 전용 라이트닝 단자로만 외부 장치와 연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외부장치 또한 SD카드 등 일부 제한된 기기만 지원한다. 파일(Files) 앱의 등장과 함께 일부 개선됐으나 컴퓨터에서 다양한 파일을 관리하는 것만큼의 직관성은 다소 떨어진다.
그리고 멀티태스킹 기능이 제한적이다. 아이패드 프로는 현재 스플릿 뷰(Split View) 기능을 지원해 두 개의 앱을 띄워놓고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슬라이드 오버(Slide Over)를 통해 잠깐씩 앱을 띄워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칼레이도스코프(Kaleidoscope) 앱을 이용해 문서 등을 동시에 띄워놓고 쓸 수 있으나 이 모든 방법이 제한적이다. 기존의 컴퓨터 OS에서 지원하는 멀티태스킹보다 활용도가 떨어진다. 일부 서드파티 앱은 스플릿 뷰를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점 또한 마찬가지.
결론적으로, 아직 아이패드 만으로 내 컴퓨터를 대체할 순 없다. 이 광고가 말하듯 내 컴퓨터의 다음 컴퓨터(Next computer)가 되기엔 아이패드 프로는 부족하다.
그러나 이 주장의 논리적인 근거는 기존 PC체계에 기반한 것이다. 기존 PC체계를 기준으로 아이패드를 본다면 모바일 기기인 아이패드의 한계는 앞서 보듯 명확히 드러난다. 하지만 PC를 떠나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기기를 고려해보면 어떨까?
스티브 잡스는 아이패드2를 공개하면서 아이패드는 이후의 컴퓨터(Post PC)라고 칭했다. 여기에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 펜슬을 활용한 숙제(Homework) 광고를 한번 보자.
아이패드 광고니 모든 학생이 아이패드를 쓰고 있지만, 실제로도 애플은 교육시장에 공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대의 학생들에게는 굳이 PC가 필요하지 않은 시대가 오고 있다. 일본에서 스마트폰만으로 레포트를 작성해 제출하는 사람이 있다는 일화를 굳이 운운할 필요도 없다. 당장 주변을 둘러보면 PC 없이 잘 사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
아이패드의 등장과 함께 포스트 PC라는 개념이 불거진 지도 벌써 5년이 지났다. 아이패드는 그동안 태블릿 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갖췄다. 초기 예상에서 빗나간 점은 PC가 태블릿의 장점인 휴대성과 연결성을 상당히 되찾아왔다는 점. 그리고 스마트폰의 크기가 커지며 태블릿의 활용도를 가져왔다는 점 정도겠다.
아이패드 프로 광고가 공개된 이후 수많은 곳에서 이를 반박하는 글을 내놨다. 하지만 결국 이 논란 속에서 빙글빙글 도는 건 생산성이라는 굴레에 갇힌 포스트 PC 논쟁의 반복이다. 점유율과 판매량이 줄었다고, 생산성있는 작업이 어렵다고, 아이패드가 헤게모니 경쟁에서 패배했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이쯤에서 정리하자. 그래, 맞다. 이 기사를 아이패드 프로와 애플 펜슬로 작성했지만, 이제 아이패드를 닫고 다시 노트북으로 작업을 시작하는 것처럼, 넥스트 컴퓨터(Next Computer)로서의 아이패드 프로는 매력적이지 않다. 이번 광고는 PC를 끌어들여 생산성을 운운하는 바람에 깊이가 얕고, 우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스트 컴퓨터(Post Computer)로서의 아이패드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그 시대에 어느 한 지점에 있다. 이 지점에서 아이패드 프로는 컴퓨터 다음을 이야기할 게 아니라 컴퓨터 시대의 다음을 이야기했어야 했다.
컴퓨터답게. 컴퓨터와는 다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