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처폰 몰락기 : 아이스크림폰부터 아이폰3GS가 나오기까지
* 얼리어답터에 2016년 7월 22일에 발행된 글입니다.
2000년대 후반 들어 피처폰 시장에는 점차 어두운 그림자가 몰려들고 있었다. 물론 이 시절에 스마트폰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당시 PDA라고 부르던 개인용 디지털 단말기와 전화 기능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꾸준히 있었고, 이런 PDA폰이 꾸준히 출시됐다. 2000년대 중반에는 윈도 모바일을 탑재한 스마트폰이 출시되기 시작했고, 이어 해외에서 블랙잭 같은 스마트폰이 인기를 끌기도 했다. 바야흐로 스마트폰이 점차 대두하는 시기였다.
2007년에는 아이폰이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였고, 2008년에는 전지전능이라는 문구와 함께 삼성 옴니아1이 출시하며 대중에게도 스마트폰의 존재를 알렸다. 하지만 아직 스마트폰은 복잡하고, 비싸다는 인식이 강했다. 그렇지만 WIPI 의무탑재가 사라지면서 다양한 스마트폰이 선을 보였다. RIM(현 블랙베리)의 블랙베리 출시, 노키아 심비안 폰 출시 등이 모두 이시기에 이뤄진 일이다.
이 시기에는 점차 풀터치 방식을 지원하는 피처폰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예인 이름이 붙은 폰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도 특징이다. 피처폰 유저 커뮤니티 등지에서는 국내 출시 제품의 고질적인 성능 저하 현상을 문제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에 아이폰 3Gs가 국내에 출시했다.
LG전자의 피처폰으로 아이스크림을 연상하게 하는 바닐라, 스트로베리, 피스타치오의 세 가지 색상을 채택했다. 제품이 파스텔 톤이었고, 김태희가 나온 광고 역시 비슷한 톤으로 이뤄졌다.
이동식 디스크를 지원했고, 앞면에 LED가 들어 있어 시간을 표시하고 아이콘이나 이모티콘을 표시할 수 있었다. 아랫부분으로 빛이 빛나는 게 예뻐 여자들이 즐겨 쓰던 피처폰이다. 비슷한 시기에 LG전자는 아이스크림 컨셉을 이용한 제품을 출시했다. 대표적인 제품이 아이스크림 넷북 제품이었다.
비키니폰은 ‘비키니’라는 이름처럼 앞면 디스플레이가 위아래로 나뉜 게 특징이다. 당시 인기 있던 모델인 제시카 고메즈가 비키니를 입고 등장한 광고가 인기를 끌었다.
슬라이드 방식의 피처폰으로 디스플레이에 맞게 터치 키패드가 표시되는 방식으로 키패드를 다양하게 활용하고, 직관적으로 쓸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당시 출시한 다른 기기와 성능상 큰 차이는 없었다. 그래도 역시 기억에 남는 건 상단과 하단을 이용해 다양하게 보여준 비키니 입은 제시카 고메즈의 모습뿐이다.
햅틱(Haptic)은 터치스크린에 터치할 때 가벼운 진동을 줘, 조작감을 주는 기술을 뜻한다. 애니콜 햅틱 시리즈는 풀터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해, 터치로 피처폰을 조작할 수 있게 했다. 애니콜 햅틱(SCH-W420) 출시 후 비슷한 디자인을 갖춘 제품을 연이어 출시하며 햅틱은 애니콜 하위 브랜드가 되었다. 이 중에서 특히 유명한 제품은 햅틱 아몰레드(AMOLED)와 햅틱 미니(연아의 햅틱) 제품이 있다.
2009년에 나온 햅틱 AMOLED는 디스플레이에 아몰레드(AMOLED)를 탑재한 제품이다. 현재 스마트폰에도 쓰이는 유기발광다이오드(AM-OLED)기술이 들어간 피처폰으로 당시 손담비와 애프터 스쿨이 함께 뮤직비디오 겸 CF를 찍은 것으로 유명하다. DIVX 코덱을 지원해 높은 화질로 동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찬가지로 2009년에 나온 햅틱 미니 제품은 광고에 김연아가 나오고 연아의 햅틱이라는 문구가 쓰이면서 햅틱 미니라는 이름보다는 연아의 햅틱 혹은 연아 햅틱이라는 이름이 주로 쓰였다. 햅틱 미니는 여성 이용자를 타겟으로 했던 제품으로 핑크색 제품이 특이 인기가 좋았다. 내부 UI도 아기자기한 특징이 있었고, 다이어리 기능이 강력한 특징이 있었다. 또한, 바탕화면에 위젯을 지원해 원하는 기능을 밖으로 빼서 쓸 수 있었다.
삼성에서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함께 협업해 만든 폰으로 국내 출시한 제품과 해외 제품이 서로 다른 제품이었다. 해외 제품은 윈도우 모바일 6.5를 탑재한 스마트폰으로 쿼티 키보드를 넣었고, 가로 슬라이드 방식을 채택한 스마트폰이었다. 국내 제품은 일반 슬라이드식 피처폰이라는 차이가 있었다.
그 외의 제품 디자인은 비슷하다. 이 당시 국내 제품이 해외 제품보다 성능이 낮아져 출시되는 일이 잦았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그 당시 윈도우 모바일을 탑재한 스마트폰이라 딱히 성능이 낮아졌다는 느낌은…. 명품 브랜드와 합작으로 관심을 모았으나 국내에서는 크게 인기를 끌진 못했다.
2NE1과 빅뱅이 함께 나와 선전한 LG전자의 롤리팝폰이다. 2NE1이 정식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 광고에 먼저 등장해 광고에 나오는 여자가 누구냐는 질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피처폰 모델 전에 CM송이 훨씬 큰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가요 프로그램에서 순위권에 오르기도 했을 정도.
중독성 있는 CM송과 더불어 깔끔한 디자인, 준수한 성능으로 인기가 있었다. 앞면에 LED가 있고, 이를 직접 디자인한 LED 패턴으로 설정할 수도 있었다. 전화나 문자가 왔을 때 내용을 표시하게 할 수도 있었다. 롤리팝의 인기를 바탕으로 이후 롤리팝2와 롤리팝T가 출시됐으나 롤리팝1 만큼의 인기를 얻진 못했다.
이민호가 광고 모델로 나왔으나 이민호폰으로 불리진 않았다.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라고 물어보는 광고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컬러라이팅 LED가 특징인 피처폰이었다. 깔끔한 디자인과 독특한 제품 색상, 눈을 사로잡는 컬러라이팅 LED는 매력적이었으나, 실제 쓰기엔 많이 아쉬운 성능을 갖췄다.
깔끔한 디자인과 아기자기한 내부 UI는 인기를 끌었으며, 스마트폰이 도래한 이후에도 스마트폰에 시간을 뺏기기 싫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피처폰 중 하나가 됐다. 오토 버튼이 측면에 있어 버튼을 살짝 눌러주는 것으로 폴더가 자동으로 열리는 기능도 중독성 있는 특징 중 하나였다. 여는 것은 자동이지만 닫는 것은 수동이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말이다.
모토로라 V10은 검은색과 붉은색을 그라데이션으로 넣은 독특한 색상을 채택한 피처폰이다. 국내에선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나와 ‘난 둘돠~’라고 말하는 광고가 큰 인기를 끌어 베컴폰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얇은 디자인과 특유의 그라데이션 무늬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모토로라 레이저를 연상케 하는 얇은 디자인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모토로라는 이미 휴대폰 사업에 적신호가 켜지는 등 악화 일로를 걷고 있었다. 결국, 생각만큼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프랑스 명품 라이터 회사인 듀퐁과 함께 협업한 제품으로 상단 홀드 커버를 열면 듀퐁 라이터를 열 때 나는 소리가 나는 특징이다.
제품 상단에 있는 S. T. Dupont로고 부분이 18K 금으로 되어, 보증서가 있기도 했다. 듀퐁 특유의 소리와 케이스를 여닫는 느낌이 좋아 습관적으로 만지작거리다 헐거워지는 일도 잦았다. 스마트폰이 나오던 시기라 크게 주목받진 못했으나 듀퐁이라는 브랜드 이름과 특유의 디자인으로 스마트폰을 기꺼이 포기하고 피처폰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2009년 11월에 아이폰3G와 아이폰3GS가 kt를 통해 정식 출시됐다. 기존의 터치폰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터치 방식, 대화형 문자 메시지, Wi-Fi를 이용한 인터넷 등, 피처폰에선 찾아볼 수 없던 기능을 갖춘 스마트폰이었다. 출시 초기 일부 마니아에게만 인기 있는 스마트폰이 되리라 예상했으나, 폭발적인 반응으로 수개월이 지난 후에도 힘들게 살 수 있던 스마트폰이었다.
아이폰 3Gs의 출시는 국내 스마트폰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고, 삼성전자는 갤럭시 시리즈를 개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피처폰이 전혀 사라지진 않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피처폰의 위세는 급격히 떨어졌고, 이제는 피처폰을 디지털 디톡스를 하거나 효도폰 같은 일부 목적을 위해서 쓰는 일에서나 볼 수 있다. 머지않아 피처폰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서랍 밑에서 키패드만 눌러 빠르게 문자를 보내던 추억, 안테나로 친구에게 장난치기 같은 피처폰의 추억은 계속 남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10년 이전의 이미지를 쓸 만한 고해상도로 찾아야 하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에 남는다. 이전에 피처폰을 많이 만져볼 수밖에 없는 일을 했기에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정리했다. 마치, 엔드게임을 보면서 지난 10년을 추억하는 느낌이었달까. 아, 한 가지를 밝혀두자면 글 쓸 때 몇몇 화제가 될 폰을 일부러 빼뒀다. 자기가 썼던 스마트폰, 그리고 당연히 들어가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빠진 스마트폰을 메꾸는 과정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리라 예상했다. 예상은 어느 정도 적중했고,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리고 이 글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피처폰은 이제 정말 보기 드문 휴대폰이 됐다. 피처폰이 맡았던 효도폰이나 공부폰의 역할은 스마트폰에서 일부 기능을 제한한 기기가 등장하면서 다시 떠밀려갔다. 군대 생활관에도 잠시 보급됐으나, 군 장병의 스마트폰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면서 다시 옛 이야기가 되었다. 시대는 빠르고, 기술은 그보다 더 빠르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여기던 것들이 얼마후에는 어떤 추억으로 남게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