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 열심히 물어봤습니다.
얼마 전 패션 트렌드를 선도한다는 느낌으로 선택한 뮬. 개인적으로 신기한 경험이었고, 이게 뭐라고 많은 호응도 있었다. 패알못 직장인의 뮬 스니커즈 구매기가 아름다운 그림이었나보다.
어쨌든 뮬이 집에 온 지 한 달이 조금 지났고, 매일같이라곤 못하겠지만, 틈날 때 자주 신었다. 반응을 이끌어내보리라 다짐했으니 그 후기를 알린다.
스니커즈의 무난한 디자인은 누구에게나 사랑받는다. 새 신발 샀다고 해서 으레 하는 이야기겠지만, 흰색의 멀끔한 스니커즈 디자인은 ‘괜찮다’ 범주에 쉽게 들어가는 듯하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는 무던함은 누구에겐 아쉬움, 누구에겐 매력으로 느껴질 테다.
흰색을 관리하는 건 쉽지 않음을 느꼈다. 생각해 보니 가진 신발이 죄 검은색이다. 처음 수테르가 코투 2402를 집어 들었을 때 멈칫한 이유도 흰색 신발을 잘 관리하기 힘들겠다는 생각 때문인데, 아니나 다를까 한 달이 지나선 반쯤 포기하게 됐다.
흰색 신발엔 사전에 코팅을 하고 쓴단다. 착색 방지제 따위의 이름이 있었는데, 새겨듣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 심적 피로감 때문이었다. 처음 며칠은 조심했지만, 이런 일이 늘 그렇듯 한 번 실수한 후엔 마음을 내려놨다. 지금은 커피 방울마저 묻히고 다닌다. 흰색 신발 새하얗게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뮬과 관련돼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왜 멀쩡한 신발 꺾어 신고 다니냐?’는 소리. 뮬 혹은 블로퍼가 아직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혹은 내 주변에는 패션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얼마 없나 보다. 심지어 뒤축을 보여줘도 이게 무슨 소린가...하는 반응도 있었다.
뮬 스니커즈는 일반 운동화보다 힐탑(혹은 힐 카운터)이 낮다. 힐탑은 발뒤꿈치를 감싸는 부분이다. 뮬 스니커즈의 힐탑은 아예 제거돼 슬리퍼처럼 자연스럽게 밑창과 이어진 게 있는가 하면, 어느 정도 솟아 형태를 간직한 게 있다. 내 수페르가 2402 코투는 흔적이 남은 형태.
신어본 바로는 아예 힐탑이 없는 게 편할 듯하다. 신발을 느슨하게 신게 되는데, 가끔 관성에 따라 발보다 살짝 앞서 나갈 때가 있다. 그대로 발을 내딯으면 발밑을 매콤하게 강타한다. 걷다가 걷기에 잠시 집중하게 하는 지옥... 아니 지압이다. 지금은 그나마 있는 힐탑도 꺾여 눌린 상태. 없는 게 속 편하다.
신발을 이리저리 둘러본 후엔 가볍게 ‘편해 보인다’는 코멘트를 받아들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문제다. 케이스 바이 캐이스, 사람 바이 사람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겠지만.
우선 편하다. 신발을 꿰찬다는 표현이 뮬 스니커즈에 잘 어울린다. 어디 나갈 때 큰 고민 없이 발을 밀어 넣는다. 어떤 옷과도 제법 잘 어울리고, 쉽게 신고 벗을 수 있는 덕분이다.
불편한 부분도 있다. 처음에 발과 잘 맞춰야 한다. 슬리퍼가 잘 안 맞을 때 발 옆에 상처가 나듯, 뮬도 비슷하다. 구조가 비슷하기에 벌어지는 일. 그다음은 엄지발가락과 발등을 잇는 부분이 불편했다. 이는 신발이 흘러내려 엄지발가락에 힘이 들어가 생기는 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신발을 너무 꽉 조여 맨 탓이었다.
짧은 시착 때와 달리 신고 다니면서 생기는 묘한 불편함은 때때로 불안한 느낌을 줬다. 우선 스니커즈가 꽤 무겁다. 통 고무 솔이라 그러겠지만, 여태까지 주로 신던 신발이 가벼운 신발 위주라서 체감이 컸다.
슬리퍼와 비슷하면서도 슬리퍼와는 또 신는 느낌이 달랐는데, 처음엔 앞이 막혀서 그런가 싶었지만, 그보다 양말을 신은 발바닥과 밑창이 쉬이 미끄러지는 게 차이를 불러오는 요인인 것 같다. 또 너무 조여서 신발을 거꾸로 풀어줬더니 발등을 잡는 힘이 부실해진 것도 하나의 원인인 듯하다.
설명을 왜 이리 장황하게 하냐면... 결국 계단에서 넘어졌다. 출근 시간 강남역에서. 양쪽 신발이 제멋대로 날아가는 일이 생겼고 손가락과 발가락에 부상을 입었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까지 찍어봤는데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 해 퍼렇게 물든 왼쪽 엄지발가락에 이틀째 냉찜질을 해준 참이다.
이제와 곰곰이 되짚어 보면 신발이 자꾸 발을 튀어 나가려는 게 문제. 계단을 오르려 발을 들었을 때 신발이 살짝 튀어나와 계단에 걸리는 바람에 대차게 넘어진 것이다. 민망한 거 이전에 너무 아파서 민망함 따위는 생각도 안 났다. 남성분이 신데렐라 유리구두 줍듯이 내게 날아간 뮬 한 짝을 건넨 게 사무실 도착해서야 기억이 날 정도로 아팠다.
뮬 스니커즈야, 우리는 정녕 같이 갈 수 없는 거니? 하며 우선은 몸이 나을 때까진 모셔둘 요량이다. 신발은 손을 좀 봐야겠고, 나는 몸이 좀 나아야겠다. 이렇게 호되게 당했는데도 어디 나갈 때 뮬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 걸 보면 마성의 신발은 맞는 듯. 이 글을 빌어 볼 때마다 신발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주변 지인들에게 미안함을 전하며, 뮬 스니커즈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