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이 터지다.

이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나다니

by 실버반지

꽤 오래 글을 올리지 못했는데 그럴 만한 일이 있었다.


3주 전 부모님 댁 이사 후 짜장면이나 먹자며 홀로 식당에 앉아 얌냠 쩝쩝 한 그릇 뚝딱 해치운 날 밤,

문득 잠에서 깨었을 때 명치의 꽉 막힘을 느끼며 배를 부여잡고 복통과 오한 속에 재차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고구마 세 개쯤 억지로 삼킨듯한 답답함이 밀려오는 극심한 체증을 느낀 순간 오늘 하루 푹 쉬고 싶다는 강렬한 바람이 밀려왔지만,

어쩔 수 없이 문밖을 나섰다. 실습을 빠지면 빠진 날만큼 기간 내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마음 한 구석에 스트레스로 자리 잡고 있어 미루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어리석은 생각으로 병원행을 차일피일 미뤘던 대가가 얼마나 컸는지 3주나 지나서야 회복기에 접어들어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내 몸에 큰 타격을 주고 지나갔다.


극한 체증을 느끼며 밤새 뒤척인 다음 날 아침 주황색 소변을 봤을 때였다.


‘어? 소변 색이 왜 이러지?’


복통 속에서도 탈수가 일어날까 봐 물은 충분히 마셨는데. 아침 첫 소변이 아무리 농축돼서 나온다 한들 주황색은 처음 봤다.


‘물을 덜 마셔서 그럴 거야.‘


또다시 바보스러운 생각을 하며 길을 나섰다.

하늘은 핑핑 돌고 명치부터 시작된 복통은 점점 옆구리로 이관되어 갔다.


오전 일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조금 일하다 앉았다를 반복하다 로비 소파에 앉아 잠깐 고개를 숙였다 정신을 차렸는데 이건 도저히 잠을 자고 일어난 느낌이 아니었다.


명치는 조여 오고 목에서는 구토가 올라오고, 옆구리는 미친 듯이 아프고, 아랫배는 설사로 꾸물 거리고, 윗배는 쥐어짜며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을 감당하고 있었다.


소파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건 잠이 아니었다.


기절했다 깬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조퇴 신청을 하고 왔던 길을 돌아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테헤란로 한 복판이 얼마나 멀게 느껴졌는지, 통증은 얼마나 심했는지 오던 길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아팠다.


30도를 웃도는 날씨에 영문도 모르고 떨리는 몸을 이불로 감쌌다. 이 때라도 예사로운 증상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어야 했다.

하지만 집에 와서도 병원 갈 힘이 없다며 누워만 있다가 어떻게든 체증이나 가라앉히자는 생각에 동네 편의점에서 까스활명수를 사서 마셨다.


이때 누웠던 행동은 병세 악화에 일등공신으로 작용했고, 그게 얼마나 미친 짓이었는지 그로부터 며칠 후 알게 되었다.


급체인 줄 알았던 증상은 급성 충수염 초기 증상이었고, 기절했다 깬 것 같다고 느꼈을 때는 충수에 천공이 생겨 복막염으로 번진 순간이었다.


자각하기로 충수염이 발병하고 열두 시간 만에 터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랬다. 나는 체한 게 아니라 맹장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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