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안녕

by 실버반지

언젠가 이게 끝나는 날이면 청량감 폭발 시원한 감정이 북받쳐 멋지게 훌훌 떠날 것이라 생각했건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데이 이브닝 간호사들이 매일 나오는 스케줄이 아니기 때문에 실습 종료 3일 전부터 한 분씩 인사를 나눴다.


이브닝 간호사 중 한 명이 실습 마치는 날 안 나오면 전 날이나 전전 날 근무가 있을 때 미리 인사를 해두는 것이다.


실제로 종료 전날 모든 이브닝 간호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됐는데 그들은 밤 10시까지 근무하고 나는 오후 5시 무렵 언저리에서 갈 준비를 해야 했다.


여러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은 제자리에 있을 것이고 내가 떠나는 것이다. 그러니 가볍게 인사하고 날아가 듯한 발걸음으로 뛰어 나가자고 생각했다.


그 순간 혹시 다들 고생했다고 다독여주는 분위기에 취해 아쉬우려나?라고 스치 듯한 감정이 지나간 순간 느꼈다. 그런 생각은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이브닝 선생님들이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와 고생했다 고마웠다 말하는 순간 눈물이 핑그르르…


날아가듯 뛰어나가자는 야심 찬 계획은 무산되고 한 명씩 손을 잡고 촉촉해진 눈가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물기가 묻었다. 검지손가락에 묻은 한 두 방울은 눈물이었다.




이 지긋지긋한 시간 얼렁 가버려라 노래를 부르던 동안 어느새 정이 들어있었다.


나도 사람이고 그네들도 사람이었다.


제 아무리 사회적 약자인 실습생일지라도, 트레이닝보다 근로에 가까운 그 시간 그 나날 동안 무급으로 그만큼 애써준데 고마움을 느꼈나 보다.


다음 날은 데이번 선생님들과 작별하는 날인데, 전날만큼 감정이 요란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데이 타임에는 이브닝보다 바쁘고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기다 보니 정신없는 와중에 인사를 나눴다.


그래서 웃으며 정답게 예상했던 계획대로 착착 작별할 수 있었다.




실습생으로 그간 지내며 뭘 배웠는지 묻는 수간호사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환자분들이 정말 많이 아프구나. 그걸 느꼈어요.“


수선생님 물음에 처음 튀어나온 말이 바이탈 재는 스킬도, 침상정리하는 요령도, 식판 치우는 팔힘도 아니었다.


오롯이 가슴으로 느낀 감정. 환자분들이 겪는 고통과 절망, 극한 통증 그리고 그 와중에 피어나는 희망이었다.


내가 실습 생활을 하며 가장 크게 느낀 건 그거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나온 그 대답에 5개월이 헛되진 않았구나 싶었다.


가족들에게 건강을 챙기라고 말해줄 수 있게 되었고, 누가 아프다고 하면 예전처럼 “쳇, 그거 뭐…“라며 등한시하지 않게 되었다.



8월에 들려오는 세찬 빗소리, 매미들의 떼울음소리는 한 해가 저물어간다는 느낌을 준다.


오후 8시가 넘어서까지 훤하던 이글이글한 태양이 8시 전후로 서서히 지는 느낌이 들 때면 쓸쓸함도 같이 밀려온다.


올해도 이렇게 가는구나 싶을 때 실습을 마쳤다.


교실에서 배우던 스킬보다 더 큰걸 배우고 나오며 마음도 한층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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