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방법은 복강경이고 타공은 3개 할 겁니다."
자정 무렵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나에게 의사가 와서 말했다.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수술을 앞두고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지 알려주러 오는구나.
한밤중에 응급 수술을 기다리며 뒤숭숭한 마음으로 심란해하고 있는 사람에게 의사가 직접 설명하러 와준다는 게 꽤나 감동적이었다.
수술을 집도한 주치의는 아니었지만 응급실 방문부터 퇴원까지 통틀어 밤에 찾아와 준 전문가에게 가장 고마움을 느꼈다. 왜냐면 그날 밤부터 병원 문 밖으로 나가는 날까지 통증으로 제대로 잠을 잔 날이 없어 밤 시간이 어지간히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렇게라도 나와 대화를 나누고 안심시켜 준다면 그보다 환자를 배려한 일이 또 있을까.
복막염까지 진행된 상태라 워낙 긴박했기 때문에 수술까지 도달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정신없이 지나갔다.
무슨 검사를 했는지 결과나 수치는 어땠는지 물어볼 틈도 여유도 없었다. 그저 입원 수속을 밟으라면 하라는 대로, 환의로 갈아입으면 영락없이 환자로 변신하는 대로 그렇게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
그 순간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 외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오른쪽 옆구리가 발가락만 움직여도 아플 정도라 빨리 이 통증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복막염으로 응급 수술 1순위 명단에 올라간 '입원 환자'가 된 나는 밤새 뒤척이다 새벽 다섯 시가 되어서야 잠시 눈을 붙였다. 그것도 얼마 못 가 수술방 내려가야 한다며 간호사가 깨우러 오기까지 설익은 잠을 자야 했지만 그나마 안 자는 것보다는 머릿속이 덜 복잡했다.
수술실에 도착해서도 충수염 수술을 하러 왔다고 복창해야 했고, 충수가 터졌다는 말을 들었는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 내가 아닐까 봐, 다른 사람과 바뀌면 안 되니까 거치는 절차였다.
이때부터 진짜 수술하고 예후를 관찰할 주치의를 만나게 되었고 그렇게 수술복을 입은 상태로 나를 맞이한 다행스럽고 고마움이 교차한 의사 얼굴을 보게 되었다.
"전신마취 할 거고 수술은 30분 정도, 회복하는데 30분 정도, 총 1시간 걸릴 겁니다."
의사가 나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다.
마취 약이 들어간다는 말과 함께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나는 내 왼쪽 팔 밑에 깔린 정맥주사 줄을 빼달라며 팔뚝을 들썩거린 이후 아무 기억도 남지 않는다.
강한 마취제로 주사 줄을 팔 위로 올림과 동시에 전신의 기능이 다운된 상태로 전환된 모양이다.
누군가 나를 흔들었다.
"수술 다 끝났어요."
극심한 통증과 나쁜 시력으로 얼굴은 못 봤지만 아마도 수술한 의사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으악"
너무 아파 배를 부여잡고 괴성을 질렀다.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을 것이다. 수술 통증으로 데굴데굴 구르는 사람이 질러봐야 얼마나 큰 소리를 질렀겠는가. 폐가 답답하고 숨을 못 쉬겠어서 산소마스크를 씌울 때마다 벗어 재끼고 다시 씌우면 또 치워버리기를 반복하자 간호사가 마스크를 쓰라고 외쳤다.
무통주사 누르라고 괴로운 신음을 내며 힘없는 엄지 손가락으로 눌러보았다. 아마 약이 안 들어갔을 것이다. 약이 주입될 만큼 세게 못 눌렀으니까.
밖에 보호자가 와있다고 하자 바로 보호자를 불러주었다. 오른손을 힘겹게 뻗어 잠시 엄마 손길을 느낀 후 또다시 정신을 잃었다.
입원 병동에 도착할 때까지 스트레쳐카가 밀리는 느낌을 전혀 못 느꼈다. 누군가 밀었으니까 병동까지 올라왔겠지만, 엄마 말로는 나는 환자 이송 전용 엘리베이터를 탔고, 엄마는 일반인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같은 층에서 내렸을 때, 내가 엘리베이터 앞에 놓여져 있었다고 한다.
엄마는 긴 시간은 아니었겠지만 환자를 이렇게 방치해도 되나 싶었다고 말했다.
여기 이렇게 놔둬도 되냐는 엄마 말에 간호사가 일어나 스트레쳐카를 밀었고 그렇게 나는 병실 침상으로 와서 다시 '입원환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