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페

by 실버반지

시작부터 고기를 먹으면 많이 먹지도 못하고 부대끼기만 할까봐 접시를 들자마자는 야채부터 시작한다.


음식바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자리를 잡았다. 가방, 스마트폰 등 음식 담을 때 거추장스러운 것들로 자리 맡은 표시를 해두고 한 바퀴 둘러본다.


애피타이저류 샐러드로 가득한 싱싱한 야채들과 달콤한 드레싱부터 분식류의 떡볶이와 바삭한 김말이 튀김을 지나 한식 코너의 톳, 상추, 제육볶음, 푸릇한 시금치나물, 고사리에 양념장까지 맛깔난 비빔밥 재료를 구경한다.


샐러드 약간과 집에서는 거의 먹을 일 없는 양송이 수프를 담는다. 소화액 분비를 촉진시키고 입맛을 돋우기 위해 가벼운 것부터 맛본다. 빨갛고 탐스럽고 통통한 제 아무리 맛깔나 보이는 떡볶이가 있어도 먹지 않는다. 나물 비빔밥도 만들어 먹지 않는다. 이런 건 배만 부르고 집에서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어 스킵한다.


중식 팔보채와 유산슬, 꽃빵과 고추잡채도 먹고 싶지만 기름진 음식은 조금 뒤로 미룬다. 내가 좋아하는 버섯이 풍부하게 들어간 메뉴들도 있지만 지금은 지나친다.


중식 코스 맞은편에는 이탈리안 음식이 즐비하다. 얇디얇은 피자류부터 라쟈냐, 각종 스파게티, 상큼한 피클들까지. 집에서 만들어 먹기 번거로운 메뉴들이 가득하다. 갓 나온 라쟈냐 두 점을 집게 한가득 집는다. 치즈가 쩍쩍 늘어나는 풍미가 군침이 돈다.


둥글고 하얀 접시에 라자냐로 반을 채우고 나머지 반쪽은 아까 지나쳤던 한식 코너로 가서 갈비를 담는다.


야채와 샐러드와 슾 접시는 안드로메다로 치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라자냐와 갈비는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아까 익혀뒀던 나라별 음식 순서는 참고일 뿐 국경을 초월하기로 한다. 피자 옆에 만두를 담고 느끼함을 달래기 위해 배추김치를 올린다. 바삭하게 튀겨낸 고구마칩으로 접시 사분의 일을 채우고 기름진 것만 먹으면 금방 물릴 수 있으니 국수 코너로 가서 우동을 주문하기 위해 벨을 누른다.


셰프 모자를 쓴 요리사는 1분 만에 오뎅으로 고명을 올린 우동 한 그릇을 올린다. 화상 입지 않게 조심히 집어 자리로 온다. 뜨거운 국물류를 집기 전에 손에 들고 있던 접시는 자리에 미리 갖다 놓아야 한다.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치지 말아야 한다.


버터에 굴려 구운 옥수수들이 주홍빛 불빛 아래 제발 집어가 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이럴 땐 먹어줘야 한다. 탐스럽게 적당히 구워진 옥수수를 집어 담는다. 또 한 바퀴 투어가 시작된다. 이번엔 시푸드다.


나만을 위한 시그니처 메뉴가 아닐까 싶은 성게알비빔밥을 만들기 위해 아까는 지나친 한식 코너로 간다. 평소 먹어보지 못한 기름에 굴리고 오븐에 구워낸 느끼한 음식들도 좋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내 입맛엔 고추장 한 숟가락 퍼넣은 한식이 최고다. 일반 비빔밥은 안 먹지만 성게알 비밤밥은 얘기가 다르다.


어찌나 인기가 좋은지 보울에 얼마 남지 않은 성게알을 영혼까지 긁어모아 밥그릇에 담는다. 매콤 새콤한 초장과 어우러진 차디찬 아이스크림 같은 성게알을 한 입 물면 이곳은 바닷가인가 뷔페인가 황홀한 기분이다.


보쌈과 족발, 어니언링과 닭날개 바비큐, 딤섬과 마파두부, 알배추찜과 데친 브로콜리... 비슷비슷한 것끼리 짝을 지워 먹어보기도 한다.


배는 점점 나와 의자에 앉아 살이 접히니 테이블 끄트머리에 닿을 지경이다. 그래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녹진한 요거트와 생지가 남아있지 않은가.


철판 사이에 눌러 정해진 시간 맞춰 열을 가하면 크로와상이 되고 와플이 된다. 배부른 상태로 탄수화물을 위장에 가하면 탈이 날 수 있으므로 빵은 되도록 자제해 2개 정도면 충분하다. 디저트도 과일주스보다 요거트를 선호한다. 일단 집에 있는 건 제외해야 한다.


빵과 요거트로 디저트를 끝내기 아쉬우니 과일 코너로 가서 람부탄 몇 개를 집는다. 마찬가지로 오렌지와 키위는 스킵이다. 이런 건 집에도 있다.




드디어 다 먹었다. 뷔페홀을 네 바퀴를 돌았고 치운 접시와 그릇 개수가 몇 개인지 모른다. 요즘은 빈 그릇을 사람이 걷어가지 않고 그릇 치우는 로봇 트레이에 담으면 돼서 부담 없을뿐더러 배 터지게 먹을 때 스쳐 가는 남모를 부끄러움도 느낄 필요가 없다.


열심히 먹고 집에 왔다. 허리를 조이지 않는 원피스로 갈아입고 침대에 눕는다. 음식을 먹고 온 게 아니라 일을 하고 온 기분이다. 가성비 최고였다. 행복하고 잔잔한 미소가 입가에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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