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순번 13] 임신극초기 코로나
상반된 두 생명체를 완전히 다른 목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또 하나의 자가 키트 검사를 더 해보았다.
배아는 소중한 우리 자식이며, 바이러스는 한 시라도 몸 밖으로 나가야 하는 나쁜 놈이다.
지금 너희 둘을 대조해서 생각하는 것조차 우리 아가가 알면 분노할 일이다. 코로나 같은 미물 때문에 고생이라니. 치가 떨리게 싫다.
하지만 어제 해보지 않은 생명체 하나는 반드시 확인해보아야 한다.
임신테스트기를 꺼내 아침 첫 소변으로 검사했다. 어렴풋이 지나가는 데자뷔만큼이나 옅고 희미하게 한 줄이 더 보인다.
양성 반응은 임신임을 인지시켜준다.
기쁘다.
기침은 미친 듯이 나와대며 삶의 질을 떨어 뜨리고 열은 오르락내리락 종잡을 수 없다.
코가 제 기능을 못해 입이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느라 입술이 말라비틀어질 지경이다.
그런데도 너무 행복하다. 임신테스트 선이 두 줄인 것 처음 본다. 현대 과학 기술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시 월요일이다.
전날 밤 했던 코로나 키트는 음성이 나왔기에 출근해서 정상적으로 업무를 다했다.
자정을 사이에 두고 저녁에는 코로나 자가키트 검사를 아침에는 임신테스트를 한 셈이다.
일 하면서도 기침은 멈추지 않았고 집중은 건너 마을에 팔아먹은 듯했다.
어제 한 코로나 키트는 음성이지만 이성으로 판단했을 때 자꾸 코로나라고 어디선가 신호를 내게 보내오는 듯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역시나 퇴근 후 해 본 코로나 키트는 하루 만에 판도를 완전히 뒤집어 선명한 두 줄로 더 이상 의심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었다.
어젯밤에 시치미 뚝 떼고 보여준 ‘한 줄 입니다~’라는 결과는 자가키트 따위에 농락당한 썩 좋지 않은 결과일 뿐이었다.
괜찮긴 뭘 괜찮아. 이 정도 증상이면 바이러스가 인간을 지배한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오던 일이 현실이 된 요즘 세상에 뻔한 답이었다 싶다.
이대로라면 병원 가서 확진 판정받는 순간 완전히 자가 격리에 들어간다. 격리되면 다음 날 예약된 임신호르몬 수치 검사에 갈 수 없다.
세상을 다 잃은 듯한 마음에 눈꺼풀엔 애써 흘려내지 못한 눈물이 뜨겁게 담겨 있다. 아직 할 일이 남아 울지도 못했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임신극초기라고 말한 후 이비인후과에서 신속항원검사를 했다.
몇 초 지나지도 않아 뻘겋게 속내를 드러낸 보기 싫은 두 줄이 나를 째려보는 것 같다.
의료진에 의해 확진진단서를 받았고 임신극초기라 해줄 것이 없다며 눈물 머금은 내 얼굴도 보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냈다.
약은 산부인과에 상담해서 먹거나 먹지 않거나 알아서 판단하라고 한다.
코로나 검사한 병원 간호사는 그래도 의사 만나보고 가라고 잠시 대기하고 있으라고 해서 장장 25분을 구석쟁이에 박힌 의자에 홀로이 앉아 있었단 말이다.
양성 반응 나온 사람은 대기실에 함께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 좁은 병원 안에 이런 공간도 있었나 싶은 곳에서 내 이름 호출만 기다리고 있었다.
코로나 격리가 삼엄하던 때도 아니고 많이 완화된 가운데 여러 병원을 갈 수 있는 선택지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병원을 선택한 걸 영광인 줄 알아야지! 쳇쳇!
환자 얼굴도 보지 않고 확진서 종이만 쑥 내밀어 간호사 통해 전달받은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해줄 거 없으니까 알아서 하라는 말도 만나서 대면해서라도 해주지.
임신극초기에 코로나 걸린 환자는 얼굴도 볼 필요가 없는 사람인가 보구나.
냉정한 그 말에 심장이 쥐어짜는 듯 서러움이 느껴졌다.
<임신극초기 코로나 확진 판정 다음 날>
이식 날 잡은 피검사 날짜에 병원을 가기 위해 이미 반차를 낸 상태다.
반차는 반차대로 썼으며 자가 격리로 외출은 못하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난임 주치의와 간호사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 한다.
전화로 코로나 확진 소식과 1차 피검사를 갈 수 없다는 말을 하며 훌쩍거렸다. 이제껏 나오지 않던 눈물이 그제야 터지고야 말다니 그동안 참아온 게 참 독하다.
난임병원에서는 코로나 검사한 이비인후과에서 약처방받아서 먹으라는 말에 소라껍데기처럼 꼬불꼬불한 혼란스러움이 몰려왔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산부인과에 상담하라고 했는데 어쩌란 말이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휴화산처럼 울렁거리는 열이 언제 터질지 모르겠다고 말씀드렸다.
더불어 목도 찢어지게 아프도 입으로 숨 쉬다 보니 입술도 바짝바짝 마르고 전전날 밤에는 열이 38도가 넘어가는 무시무시한 현상도 있었다고
가만히 두면 나와 아기에게 큰일이 생길 것이라는 양 외쳐보았다. 외친다 해도 목소리가 안 나오기 때문에 간신히 알아들을 정도였지만.
나의 이 말에 난임 의사는 타이레놀은 먹어도 된다고 간호사를 통해 알려주었다.
집에는 별로 열 일 없던 상비약 상자가 하나 있었고 그것을 주섬주섬 열어 여차하면 먹을까 싶어 타이레놀 몇 알을 빼놓았다.
이때부터였나.
잠을 자도 자도 끝없이 졸리고 몸은 물오징어 마냥 축축 늘어졌다. 저녁 먹고 나면 8시부터 잠을 자기 시작해서 다음 날 아침 7시가 넘어서 일어나곤 했다.
지나고 보니 임신 극초기 증상 중 피로감이 있다는 걸 알았는데 당시에 코로나 때문인가 생각했었다.
난생처음 임신이라 비교군과 대조군이 없기 때문에 임신과 코로나가 합쳐진 증상인지, 임신 때문인지, 코로나 단독으로 벌이는 일인지 알 수 없다.
매일매일 임신테스트기는 점점 더 진해져만 갔고 제조업체가 서로 다른 두 종류 임테기를 사용해도 마찬가지였다.
임신이 맞다. 어서 격리 해제되면 피검사하러 가야지.
이 와중에 재택근무를 해야 해서 낮에는 방에서 일하고 저녁에는 이른 식사 후 초저녁부터 잠자기를 반복했다.
코로나에 임신초기 상태로 재택근무라. 일을 안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시험관이라는 이안류와 퇴사라는 파도가 부딪치며 또 한 번 마음의 요동을 친다.
인터넷에 많은 사람들이 올려놓은 매일 진단한 임테기를 평행으로 늘어놓고 짙어져 가는 선 색깔 자랑하는 걸 해보았다.
대조선은 그대로인데 시험선 색깔은 진짜 점점 진해지는 게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이 무렵 소량 출혈이 있어 임신 유지를 위한 약을 모두 주사제로 전환하였다.
질내 투약하는 질정과 피하로 주입하는 주사제 총 두 가지를 쓰고 있었는데 출혈이 있으면 질정 흡수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요한 시기에 병원에 갈 수 없어서 남편이 대신 받아다 주었다. 아, 이런 경우에 대리처방을 하는구나.
임신과 동시에 코로나 걸린 기쁘고도 절망적인 조화롭지 못한 상황을 남편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시험관 1차 끝나고 쉬는 동안 코로나 백신을 맞게 하지 않은 게 천추의 한이 된다고 제일 우려했던 상황이 현실이 되었다며 몹시 애석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 대리 처방에 토를 달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가 원한다면 조금 싫고 하기 꺼려져도 하는 사람이다.
채취하는 날 시술실에 가본 게 전부인 남편이 접수하고 진료실 찾아가는 게 힘들까 싶어 병원 도착한 순간부터 전화로 일일이 알려주었다.
“접수대에서 격리돼서 약 처방받으러 왔다고 하면 알 거야. 거기서 오른쪽 방향으로 쭉 가면 간호사가 앉아 있을 거고, 그 간호사한테 말하면 처방전 준데. 그걸 받아서…”
디렉션을 충실히 수행한 남편은 15만 원이라는 적지 않은 비용과 약을 맞바꾼 후 다시 지하철을 타고 신속히 나에게 가져다주었다.
남편은 문 앞에 두고 간 주사와 함께 귤, 참치, 빵 등 격리 환자를 위해 일용할 식량도 사다 놓아주었다.
접촉은 최소화하기 위해 물품들은 문 앞에 두고 빨리 벗어나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고드름이라는 이름의 얼음으로 된 아이스크림도 요청했는데 찾으러 다녀봤지만 못 구했다고 한다.
열이 오를 때 먹으려고 사다 달라했는데 얼음 아이스크림은 여름 상품이라 엄동설한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찾고자 했던 노력이 고마웠다.
반 계단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빼꼼히 문을 열어 아주 짧게 인사만 나누었다.
문어가 다리를 뻗어 먹이를 낚아채듯 주사와 식량을 집어 집 안으로 들여오고 남편은 회사로 향했다.
목소리는 완전히 맛이 갔다.
말은 전혀 나오지 않고 목이 따끔거리다 못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2~3일간 계속됐다.
”좋은 일인데 실버반지는 힘들어하네.“
”응. 목이 너무 아파. 숨도 못 쉬겠고.“
”약도 안 먹고 있지?“
“애한테 해가 될까 봐 버티고 있어.”
“진짜 엄청 아플텐데.”
“그래도 약은 안돼.”
남편과 통화는 항상 짧다. 두 달 전에 코로나에 걸렸던 남편은 얼마나 아픈지 잘 안다고 했다.
그 짤막한 통화에서 단 한 알의 약도 먹지 않은 것을 놀라워하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수시로 측정한 체온은 37도 후반 정도였고 이 또한 올랐다 내렸다 반복했다.
코로나인지 임신 증상인지 알 수 없는 몸 상태가 일주인 간 계속됐다.
다행히 후반으로 갈수록 기침을 제외한 다른 증상은 잦아들고 있었다.
날이 갈수록 임테기는 점점 진해져 간다.
임신이라는 행복감과 엄마가 된다는 기대에 정말로 약을 안 먹고 코로나를 버텼다.
창 밖으로 보이는 햇살은 새로 돋아날 이파리를 품고 있는 나뭇가지를 사방에서 감싸주고 있었다.
어서 돋아나라고 따뜻한 봄날이 곧 온다고. 나뭇가지의 생명력을 휘돌은 햇살이 방 안으로 들어와 나에게 닿는다.
온 세상 따뜻한 기운을 내가 다 받는 것만 같다. 이런 행복함은 열 번이라도 느끼라면 느끼고 싶다.
임신테스트가 가져다준 마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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