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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반지 Apr 28. 2023

역병 속에서도 행복

[시간 순번 12] 임신극초기 코로나

나흘 내지 닷새 정도 지난날이다.

그러니까 1월 2일에 이식했으니 그 주 주말쯤 되어갈 무렵이다.

그 사이 새해 첫 출근을 했고 연말부터 나가지 못한 상품들을 내보내느라 토네이도와 같이 일을 했다.

아주 몰두하다 보니 일하던 중 어떤 시간에는 배아이식한 사실조차 잊었다. 순간순간 정신이 깰 때마다 ‘아! 월요일에 이식했지! 무리하지 말자.’생각할 정도다.


그리고 또 한 편에서는 이렇게 해도 되나 싶다.

시험관 1차를 이식 취소로 끝낸 이후 두 마음이 끊임없이 자기 자리를 우선으로 내어 달라고 목소리를 낸다.


시험관과 일을 병행하는 게 맞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를 놓아야 하는가.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아이를 갖는 일이다. 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러니 하나를 내어주어야 한다면 일을 내려놓는 것이 맞다.

쉬운 결정일 수는 없다. 육아와 직장을 병행하다 고심 끝에 전업 주부 길을 선택한다면, 아이가 있는 상태로 일을 포기하는 것이지만,

시험관을 위해 퇴사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확신을 갖고 미래에 투자하는 길이지만 하나가 없는 상태로 또 하나를 포기한다는 건 대학이나 입사를 위해 준비하는 입시 준비생이나 취준생과 진배없다.

그들의 투철한 노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현재의 초라한 마음 상태와 암담한 미래 그리고 불확실성에 대한 조급함을 뜻한다.


주말인 토요일 저녁에는 남편과 밖에서 달콤한 데이트를 즐긴다.

서로 뭘 먹을지 이야기 나누고 한 주 동안 보고 겪고 들으며 입속에 아껴 두었던 말을 공기 중으로 내보내며 웃고 느끼는 시간을 갖는다.

6시에 만나기로 한 시간을 앞두고 살짝 졸림이 밀려온다.

하지만 긴 낮잠은 밤이 되었을 때 오감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주 요인이다. 눈과 뇌가 말똥말똥하다는 정신적 축복을 괴로움으로 바꿔버릴 수 있기에 그렇다.


“그래, 딱 두 시간만 자자.”

준비하고 나가는 시간까지 감안해 알람을 오후 4시로 맞춰 놓고 잠에 들었다.


한 시간 반쯤 자고 일어났을까. 목이 따끔거리고 코가 막힌 건 아니지만 숨 쉬는 행위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산소를 통과시키기 위해 계속 킁킁거렸다. 아무튼 코 스스로 호흡하기엔 의식적인 보조를 해줘야 했다. 감기가 오나 싶었다.


3주간 해온 호르몬 주사와 배아이식으로 그렇지 않아도 몸이 이전과 같지 않다.

여기에 감기 비슷한 증상으로 컨디션도 난조다 보니 쌩쌩해야 할 주말 시간이 아깝기만 하다.

어쩔 수 없지. 아기를 갖기 위해서 몸이 조금 힘들어지는 거라 생각하자.


주말 저녁 먹은 한우국밥은 맛있었고 대화는 즐거웠으면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한겨울 추운 날씨에도 같이 걷는 길은 좋았다.

배아 이식도 했으며 모든 것이 완벽했다. 코와 숨쉬기가 여전히 불편한 것만 빼고 말이다.


땅속 미물들도 다 한다는 산소를 통과시키고 이산화탄소를 내뱉는 일이 만물의 영장인 내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증상은 귀가해서도 계속 됐다.

2022년은 당시 생존해 있는 전 세계인이 알고 있는 해다. 올해 2023년 초반도 여전히 여파가 남아 매스컴에서는 연일 확진자 수를 발표하고 있다.

혹시 … 혹시나 … 머릿속에 맴돌지만 꺼내고 싶지 않은 단 한 단어.


아니야 아닐 거야. 절대 아니야.

확진자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매스컴에서도 마스크 착용 단계적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다.

뱃속에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는 피해 갈 것이다. 3년 동안 단 한 번도 안 걸리고 버티지 않았던가.


잠자는 방 안 가습기를 1단계 더 높였다. 가습량도 높이고 방 안 온도도 올려 코가 막히지 않고 목도 풀어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잠자러 눕는 순간에도 호흡이 여전히 불편하다. 어서 빨리 시원한 체증 내려가듯 코가 뻥 뚫리길 바란다.


아침에 일어났을 땐 전날 밤 바람과 아닐 것이라는 애썬 외면과 가습기라는 물리적 도움에도 호흡을 괴롭히는  알 수 없는 실체는 더욱 세를 과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약한 열도 스멀스멀 본색을 드러내며 올라오고 있다. 제발 그것만은 아니어달라고 했던 기도는 역병을 물리칠 수 없었나 보다.

나는 재빨리 마스크를 쓰고 남편과 2미터 이상 떨어진 위치에서 증상을 설명한 뒤 짐을 싸서 다른 집으로 이동했다.

남편도 귓가에 들려온 말이 머릿속에 떠 오르는 그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조심히 가기를 바래 주었다.


그렇게 이식 7일 차인 일요일에는 방안에 스스로 격리하여 몸 안 침입자와 사투를 벌였다.

배아는 내가 온 마음과 몸으로 받아들였지만, 이 침입자는 아니다.

파괴하고 뚫고 들어 왔다.


오전 11시부터 누워있었고 오후 2시쯤 되자 열이 38.5도까지 올라갔다. 이제 미열이 아니다. 고열이 올라가고 있다.

자궁 안에 자리를 잡고 살 곳을 마련 중인 배아가 가장 걱정이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수 백 번 반복하며 아랫배를 꼭 감싸 쥐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특정할 수 없지만 열이 올라가고 있는 건 배아에게 해서는 안 되는 모체의 미친 짓 같았다.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흐르고 있고 그 사이 열은 38.7도로 한두 시간 전보다 더 올라갔다.

약을 먹자니 배아가 걱정이다. 배아가 잘 자라고 있다면 이식 7일 차인 오늘은 정확하게 착상 시기이다.


아이스팩을 냉동실에서 두 개 꺼내 베개 위에 올려놓고 누웠다. 차가운 얼음이 열은 떨어뜨리고 배아는 살려주기를 기대한다.

저녁이 되고 밤이 깊어가도 열은 계속되었고 손에 닿는 곳에 두고 수시로 재어본 체온계는 37~38도를 오르내렸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누워서 쉬기만 한 상태로 20시간이 흘렀다.

배도 고프지 않고 음식 생각은 과거 언젠가 겪은 흑역사를 떠올릴 때 마냥 1초도 머릿속에 남겨지지 않으려고 했다.

먹순이 저리가라로 먹어대는 식성에 이례적인 일이지만 열이 올라가고 목이 따끔거리니 그럴 수 있겠거니 생각한다.


아이스팩을 올려놓은 베개는 커버가 축축해져 머리카락을 적시고 있고, 땀으로 젖어버린 츄리닝은 식었다 말랐다를 반복하며 겨우 몸만 가려주었다.

제 기능이 무엇이었는지 점점 망각해 가는 목구멍만 말라가고 있고 다른 부위는 축축함 그 자체였다.

같이 축축해지면 좋겠건만 생명을 관장하는 첫 통로라는 기도는 마를 대로 말라 따가워 죽을 지경이다.

따뜻한 물이라도 조금 넘겨주려고 컵을 집어 들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앞이마부터 정수리 부위가 욱신욱신 쑤셨다.

물 넘길 때만 마스크를 벗어주면서 가끔씩 쳐다본 거울에 반사된 모습은 몰골이 아주 말이 아니었다.


이런 악한 상태에서도 몇 시간 후에는 어김없이 출근을 해야 한다.

전날 밤 했던 코로나 자가키트는 선명한 한 줄이었다. 또 한 번 아니길 기도해 보지만, 이제 제어할 수 없는 기침이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

호흡은 더 불편하고 연신 나오는 기침으로 배근육까지 조이고 뭉쳐 기침을 하면 배가 아프고 기침을 참으면 배에 힘이 들어가 더 아프다.

다행인지 열은 새벽이 되어가자 36~37도로 조금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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