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순번 11] 배아 이식
약속한 날짜인 1월 2일이다.
이식하는 날 남편은 동행하지 않아도 된다. 격려차원에서 함께 갈 수는 있지만 이미 난자와 정자는 만나있는 상태니 몸은 이식할 주체인 나만 가면 된다.
어쩐 일인지 이 날만큼은 주차장까지 내려와 주었다. 운전석에 앉기 전 손을 꼭 잡고 잘 붙게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남편도 그러겠노라 (바로 회사로 출근해서 열심히 일할테지만) 답했다.
이 날은 오후 시간에 배아 이식이 잡혀 있고 오전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했다.
여유 시간엔 맛있는 음식을 먹고 공원을 걸으며 새해를 여는 첫 시작은 배아이식으로 하려고 했다.
회사도 이 날은 전체 휴무여서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됐고 시험관 하며 쫓기고 전전긍긍하던 시간은 다행히 이 날만큼은 부담을 주는 대상에서 고려하지 않아도 됐다.
잡힌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병원에 도착해서 혈액 채취 후 시술을 기다렸다. 워낙 빨리 와서인지 달리 할 일이 없었지만 어김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다.
시술실 안내판에 이름이 켜지고 안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마취도 필요 없고, 안경도 써도 되며, 시술 후 다소 안정만 취하고 바로 걸어 나가도 되는 정신이 또렷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시술이라고 짧은 설명을 들었다.
시술실에도 모니터가 있다. 한 개는 환자가 눕는 정면보다 약간 위쪽에 배치되어 있다.
나도 기다리고 배아도 이식을 기다린다. 그 화면에는 이식을 대기하고 있는 배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배아들과 짧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래, 엄마 왔다.‘ 오늘 나에게 이식될 배아는 총 3개다. 4일간 배양했고 중상급 2개, 중급 1개라고 한다.
시술은 10분 정도 걸렸다. 눈높이보다 좀 더 높은 곳에 걸린 그 화면에 배아가 쏙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니 “네 됐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끝이 났다.
통증이 꽤 있었다. 이식은 아프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내 경우는 달랐다. 배아 이식 하는 것도 좀 힘들다 느낄 정도로 아주 안 아프진 않았다.
시술을 해준 의사는 곧바로 PC로 가서 뭔가를 입력했다.
나는 시술대에서 내려오고 있고 의사는 컴퓨터를 보고 있다 보니 시술 후 눈도 마주칠 수 없었다.
특이하게도 환자마냥 휠체어에 앉으라고 했다.
초등시절 큰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을 때 외출을 금하다 보니 답답해하는 나를 병원 로비에라도 데려가 휘휘 돌아주려고 태웠던 휠체어와 모양은 똑같다.
환자인 듯 환자 아닌 환자 같은 나를 휠체어에 태운 간호사는 빠르게 시술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시술 끝났다고 그저 나가버리기 못내 아쉬워
등 뒤에 대고 짧게 “감사합니다.”라고 말했고, 의사는 90도 정도 몸을 돌려 내가 힐끗 보일 정도 각도로 ”네.“라고 외마디 답을 했다.
짧은 이식 시간이지만 몸속에 배아를 넣어주었지 않은가. 담당 의사에게 정말로 감사하여 한 인사였다.
시술 여파가 아직도 남았는지 몸 깊숙이 여성을 상징하는 그곳이 여전히 아팠지만 휠체어로 시술실에서 나가는 모습과 인사하는 목청은 꽤나 경쾌했다.
회복실에 누워 잠시 기다리는 동안 사진을 가져다준다. 두 번째 방문한 회복실에서 사진으로 받아본 배아 모습은 귀엽기 짝이 없다.
보글보글 튀어나온 게 왜 그리 인터넷에서 배아 사진을 공유하며 자랑하고 서로 칭찬하는지 알 것 같았다.
사진은 볼 줄 모른다. 말로만 듣던 ‘레벨’이라는 것이 어느 게 중상급이고 어느 게 중급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고도로 훈련된 연구자만이 올록볼록한 수정란 외관을 보고 너는 상급이며 너는 중급이고 또 너는… 이렇게 레벨을 매길 수 있다.
사진을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십 여일 간 주사를 자기 배에 찔렀고 한 번의 수면마취와 또 한 번의 시술을 거친 난임 시술자들이 얼마나 배아를 소중하게 여기는지 병원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더 감동받는다. 사진을 꼭 쥐고 또 그 사진과 함께 내 얼굴이 나오도록 셀카 한 장 찍어 남편에게 보내주었다.
무척 일찍 도착한 시간과 다르게 이식과 회복실에서 시간은 빨랐다.
아픈데도 없는 사람이 1인용 병원 침상에 누워 딱히 볼만한 풍경이나 TV 화면도 없는 채로 30분 정도를 버틴다는 건 꽤나 고역이다.
누운 채로 어영부영 있다가 며칠 째 나가지 않은 회사에 그놈의 일 생각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더 누워있기도 힘든 상태였다.
이 때문에 배아 사진과 함께 받은 샌드위치를 들고 금방 일어나 나올 수 있었다.
샌드위치는 뭐.. 느끼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왠지 ‘시험관 하느라 고생 많았어요.’ 정도 의미랄까.
병원 1층에 입주한 샌드위치 가게 점원이 이따금 양손에 봉다리를 들고 시술실에 출입하는 걸 본 적은 있지만 그 샌드위치가 이런 용도라는 건 처음 알았다.
입맛에 맞을지 안 맞을지 모르지만 시험관 한 사이클을 마친 난임 환자에게 주는 병원의 따스한 배려라 생각하기로 했다.
시술실에서 수납처까지 걸어 나오는 10M 남짓한 길에 약간의 뻐근함을 느꼈지만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집으로 오는 길 또한 운전도 할 수 있고 별 다른 느낌도 없었다. 그저 몸 안에서 잘 자라주기만 하면 되겠다는 생각뿐이다.
이식하는 날은 수정란을 만들고 배아를 키운 비용, 이식 비용에 프로게스테론 주사와 약제까지 돈이 꽤 많이 나왔다. 합쳐서 70만 원을 결제했다.
아기 갖는데 들어가는 돈은 아낌없이 주던 남편도 이 날 결제 비용을 듣고는 꽤나 놀라는 눈치였다.
아참, 우리는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는 난임 환자다. 배양 및 이식 비용도 비용이지만 이식 후에 투약하는 약제가 비급여여서 더 많이 나오기도 했다.
특별히 아픈 데는 없지만 조금의 피로감이 몰려왔다. 시술을 해서일 수도 있고, 아침부터 준비하고 이동하는 과정이 있어서일 수도 있고.
이식한 날 당일은 누워만 지내는 사람도 있다는데 난 그렇게 하진 않았다.
저녁밥도 내 손으로 차려먹고 설거지도 하고 누웠다 앉았다 일어났다 여러 번 했다.
살짝 아쉽긴 하다. 아니 좀 서럽다고 해야 되나.
이식 후에 쉬기만 하지 않아도 되고 일상생활 다 해도 된다고 의사샘 말은 들었는데,
나도 여자 사람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이식하고 온 날인데 공주가 되어 누워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저녁까지 아무런 느낌이 없다. 8시쯤 돼서야 하루 일과가 끝났고 되도록 빨리 잠을 청했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 K-직장인이다. 시험관도 이식도 회사에서는 그 누구도 모른다.
내가 어떤 상태이건 일은 평상시와 다름없이 해야 하니 쉴 수 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쉬어야 된다.
#4일배양 #배아이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