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순번 15] 달달 Sweety Sweety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자가격리 마지막 3일은 무념무상 쉬기로 했다.
격리 끝물이 마침 금, 토, 일요일이어서 금요일은 재택근무마저 아예 휴가를 내고 확실하게 쉬어보기로 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이렇지만 실상 몸도 성하지 않은데 재택근무라도 근무는 근무라며 메신저로 이것저것 물어보고 요구하는 통에
회사와 세상 돌아가는 일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한 마디로 만사 다 귀찮았다.
기침이 여전히 끊임없이 나오고 있어 배아가 매우 걱정되었다.
수정란이 착상하는 과정은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화학반응이라는 말을 임신 관련 유튜브 영상을 통해 익히 들어왔다.
그러나 막상 미친 듯이 기침을 콜록거리고 있자니 무서운 생각도 들었다.
공도 튕겨낼 정도로 강한 힘으로 배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게 만드는 불수의적인 복부 운동을 온종일 하고 있으면 그 튕기는 압력에 의해 혹시라도 배아가…
뒷 말은 굳이 하고 싶지 않다.
불안 불안한 마음에 난임 강의로 유명한 의사분께 온라인으로 소심한 질문도 남겼다.
“착상 시기에 코로나 걸려 기침이 멈추질 않습니다. 임테기는 두 줄 나오고 있어요. 기침해도 괜찮을까요?”
명석한 두뇌 회전을 가진 명의는 단 번에 질문 내막을 파악했다.
“기침 좀 해도 괜찮습니다. 배아에 전혀 영향이 없습니다.”
기침하는 힘으로 인해 배아가 어떻게 될까 염려하는 질문의 속내를 금세 안 것이다.
격리 해제되자마자 오전 근무를 마치고 오후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이 와중에도 병원보다 출근 먼저 해야 한다는 사실에 내심 서러웠다. K직장인이라 어쩔 수 없다.
이식 8일 차에 예정된 1차 피검사는 한참 뒤인 15일째 했고 수치는 이미 높이 뛰어 있었다.
짧은 간격으로 1차, 2차 피검사를 해서 수치 점핑을 본다지만 그렇게 하지 못해 불안하다는 말을 조심히 의사에게 건넸다.
”이렇게 (수치) 잘 나왔으면 된 거지. “라는 소견으로 나를 안심시켜 주었다.
담당 의사가 잘 나왔다고 말한 ‘수치’는 HCG호르몬을 말하며, 임신하면 그 수치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내 수치는 1118.84. 단위가 천이 넘어가면 쌍둥이 수치라고 한다.
초음파로 본 자궁 내막은 작지만 선명하게 보이는 아기집 하나, 희미하게 아기집으로 추정되는 것 하나가 보인다고 한다.
이때가 4주 4일 차여서 초음파 보는 날짜는 아니지만 코로나 감염으로 혈액 검사를 워낙 늦게 간 탓에 보게 되었다.
진료실에서 상담 도중 보자고 해서 얼떨결에 하게 된 건데 수납하다 보니 이렇게 초음파 볼 시기가 아닌데 임신 확인을 위해 초음파를 보면 비급여라고 한다.
’ㄴ..느…에…? 제가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만…‘
수납보다 진료를 먼저 봤고 이미 진료실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어쩔 방도가 없다.
흑,,, 가뜩이나 시험관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쓰고 있는데 비급여 항목이 추가되다니. 다음 달에 받아볼 카드이용내역 명세서가 두려워진다.
이 날은 난생처음으로 임신 확인을 위한 피검사를 간 셈인데 신기하게도 그날 새벽 특별한 꿈을 꾸었다.
규모가 강원도 경포호만큼이나 크나큰 호수가 배경이다.
호숫가엔 무궁화가 한가득 달린 나무가 수도 없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나무마다 무궁화꽃이 다닥다닥 피어 있었다.
빼곡한 나무를 빼면 황토색 흙밭이고 그다지 멋있을 게 없는 호숫가인데 물 색깔이 짙은 남색으로 깊어 보였다.
어마어마한 크기 물가였으나 강이나 바다가 아니라 분명 호수였다.
호숫가에는 나와 인지기억에 없는 누군가가 있었고 현실에는 특정할 사람이 없으나 꿈속에서는 아는 사이였다.
꿈속에서 자꾸 나더러 호수로 다이빙을 하라고 재미있을 거라며 부추겼는데 나는 무서워서 절대 하지 않다가 꿈에서 깼다.
무궁화는 생생히 기억에 남는데 어딘가 석연찮은 성별도 모르겠는 옆 사람. 그 존재에 대한 두루뭉술함은 지금까지도 의아한 상태로 남는 꿈이었다.
깨어나서 인터넷 검색창에 찾아보니 무궁화가 나오는 꿈은 여자 아이 태몽이라고 한다.
어쨌든 매일 밤 기침 콜록 거리며 태몽 꾸게 해달라고 빌고 빌었는데 좋은 시기에 태몽을 꾼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신인지 인간인지 모를 그 자(?)는 그즈음에 태몽 꾸게 해 달라며 기도하다 잠들면 싱숭생숭한 꿈을 꾸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그냥 비슷한 현상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태몽을 꾼 그날 임테기 색깔이 대조선 짙기와 완벽하게 같아졌고 임신 호르몬 수치도 임신임을 확신시켜 줬다. 이식 15일 째다.
자도 자도 끝없이 졸리고 하루 11시간 넘게 자도 피로가 가시지 않는 나날이 여전히 계속되었다.
코로나 후유증 중에 극심한 피로감이 있다고 하는데 이 때문인지 임신 초기 증상인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집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칼퇴하고 눕는 일이었다.
달라진 건 남편이 매일 아침 출근을 시켜주었는데 폭설이 내리는 날도 얼음 같이 차갑고 미끄러운 땅 위를 걷지 않게 해 주어 고마웠다.
상남자 스타일에 무뚝뚝한 남편이지만 임신이라는 사실 앞에서는 기꺼이 안 하던 일도 해주었다.
가까운 거리지만 차 안에 함께 있으며 앞으로 병원 일정은 어떻게 되는지 아이는 언제쯤 출산 예정인지 대화도 했다.
병원에서 깔아준 어플로 지금 태아 상태는 형태가 잡히지 않은 덩어리 혹은 강낭콩 같은 모양이라며 그림 이미지를 보여주고 까르르 웃으며 즐거워했다.
살면서 겪은 행복한 나날을 꼽아보라면 이때를 꼭 넣어야겠다.
5주 0일 차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실히 보았고 임신확인서를 발급받아 국가와 병원이 인정해 주는 공식 임산부가 되었다.
아기집은 하나만 보이고 있어 일태아 확정이다.
아기집과 아기집으로 추정되는 것 각각 하나씩 보일 때 다둥이라 미리 짐작하며 상상했던 쌍둥이 유모차, 쌍둥이 지원금액은 조용히 마음속에만 남기기로 했다. 코로나 증상도 3주째가 되자 잔기침도 없어지고 후유증이 사라지고 있었다. 임신 초기라 안 그래도 힘든데 한 가지는 해결이 되어가고 있으니 다행이다.
모든 게 완벽했다.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영적인 힘과 기운을 물려받아 하는 일마다 정의를 이루고 악당도 물리치고
지구 평화를 구현하는 그러면서 잘 생긴 남자와 연애도 잘하는 히어로 영화 속 주인공처럼,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최고로 잘 되어 가고 있는 듯했다.
#비급여초음파 #임신극초기코로나 #임신호르몬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