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순번 16] 계류유산
- 태명.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도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불러줄 이름이다.
세상에 태어날 때까지 엄마와 아빠 목소리를 전해줄 그 이름을 짓는다.
우리는 무궁화꽃 꿈을 꾸고 난 후 태명은 ‘무궁’이로 지었다. 뭔가 장한 일을 해낼 것 같은 이름이다.
이 무렵 매일 임신한 사실에 감사했다. 연초에 아이를 가졌으니 얼마나 좋은가.
올해는 임신한 상태로 9개월 지내다가 출산하는 일만 남았다는 기쁨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때마침 적절한 시기에 시험관 2차를 한 것도 나 자신을 칭찬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1월에 임신을 했으니 2월이 두 달째, 3월이 세 달째… 막달인 9개월째가 9월이어서 날짜 계산하기도 편리하다.
일본의 서예가이자 강연가이며 다양한 예술 행사를 주최하고 성공리에 이끄는 다케다 소운이라는 아티스트가 있다.
이 분이 쓴 책 ‘긍정의 교과서’에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모두 칭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자신을 칭찬해 주기 바랍니다. 그것은 자기 긍정감을 높입니다. 그리고 좋은 기분을 높이는 결과도 됩니다.’ *
칭찬은 긍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칭찬은 행복한 감정을 느꼈을 때 스스로를 대견해하는 감정이다.
긍정은 당장이라도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마술 같은 힘이다. 칭찬과 행복 그리고 긍정은 묘하게 닮아있다.
연일 무궁이를 부르며 행복에 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몸은 정신만큼 좋지만은 않았다.
매 끼니때마다 챙겨 먹고는 있는데 배고픔이나 공복감을 느껴 먹는 게 아니었다.
소고기를 구워 한 접시 먹거나 면종류를 좋아하니 베트남 쌀국수나 마라탕을 사 먹는다거나 그 정도였다.
원래 식성은 소고기가 있으면 상추에 쌈장, 김치, 시금치나물, 멸치볶음, 미역국에 밥 한 공기를 뚝딱 해치우고 식사 후 식단으로 두유와 치즈, 양배추, 계란을 넣은 토스트까지 엄청난 양을 먹어대는데 그 정도로 많이 먹어지지 않았다.
마른 체격인데도 먹는 양이 다른 가족보다 구성원보다 많아 잘 먹는데도 살이 안 찐다는 말을 들어왔다.
헌데 이 시기에는 단지 먹을 시간이 됐으니까 안 먹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먹는 것 같은 의무감에 먹고 있었다.
게다가 속이 더부룩해서 까딱 잘못하다가는 탈이라도 날까 봐 생야채는 되도록 먹지 않거나 소량만 먹었다.
임신 중 기운이 아래쪽으로 향하게 하는 배탈은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자주 아주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 공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항상 배가 불러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던 이때 이 느낌이 가장 특이한 증상이었다.
지금도 그 이유는 모르지만 말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마른 체형인 나는 바지 입는 사이즈가 26~27 정도다.
먹은 게 없어 속이 허하거나 소화가 잘 돼서 배가 쏙 들어갔을 때는 이 정도 치수로도 허리 안으로 주먹이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입었을 때 편한 옷을 선호하다 보니 나름의 기준으로 선택한 사이즈다.
임신 초기인데도 바지가 잠기지 않았다. 희한하다. 바지가 안 잠길 정도로 살이 찐 적은 없었는데. 몸무게에는 변화가 없는데도 버클이 서로 닿지 않는다.
임신 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몸에 특이 현상을 겪으며 어느덧 6주 차에 접어들었다.
6주 초반에는 태아가 심장 뛰는 게 보이는 시기다. 이번에 병원 가면 무궁이 심장 박동을 볼 수 있다.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병원을 향했다.
6주 2일 차에 본 초음파는 예상보다 좋지 않았다.
담당 의사는 여기저기 찾으며 아기집이 보이는 곳에서는 한참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심장 뛰는 게 안 보이는데.”
시기에 맞게 자라지 않았다는 뜻이다.
앞으로 3일 후 병원에 다시 오라고 했고 그때까지 기다려보는 것이며, 그날은 무조건 심장 박동이 보여야 한다는 말도 남겼다.
분명 난 심장 뛰는 걸 보러 왔는데.
왜 안 뛰지.
무한 의문점을 남긴 채 집에 왔고 이 사실을 남편과 상의, 아니 온갖 부정적인 상상에 휘말린 채로 뫼비우스 띠 같은 걱정을 풀어냈다.
3일 후에도 심장이 안 뛰면 그땐 어떡하냐, 6주 차에 심장 안 뛰어서 예후가 좋은 걸 못 봤다, 아이가 없어진다면 나도 살지 못하겠다,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것 아니냐, 이건 유산을 암시하는 것이다……….
불과 몇 시간 전과 판이하게 다르게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남편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
그냥 그렇게 3일을 더 기다려보자는 결론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경증 우울증 환자와 같은 3일이 지나가고 병원에 다시 갔다.
초음파를 보는 의사의 얼굴은 마스크로 반쯤 가려져 있어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인사 대신 외쳤던 “오늘은 꼭 보여야 되는데.”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가 잘 안 보여.”라는 외마디 말로 초음파 검진을 마쳤다.
조금 더 확인해 달라고 좀 더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겠냐고 혹시 못 봤을 수도 있지 않냐고 붙들고 싶었다.
하지만 장비를 내려놓고 자리를 뜬 의사를 다시 앉게 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 봐도 달라질 게 없는 상황이 이미 확정이라며 홀연히 남겨두고 가는 뒷모습에 산부인과 진료대에 쓸쓸히 앉아있는 무력한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이어서 한 말 “유산이죠. 유산. 이 쪽으로 오세요.”
초음파실과 미닫이문 하나 사이에 두고 진료실이 있다.
초음파 검사를 위해 입은 검진용 치마를 원래 입고 온 개인 옷으로 갈아입고 진료실 안에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라는 뜻이다.
유산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산부인과 진료대에 앉아 있던 난 머리를 감싸 쥐고 절규했다.
새끼 짐승과 비슷했던 이 소리에 의사도 마음이 아픈 듯 보였다.
터덜터덜 간신히 걸어가서 진료실 의자에 앉았다.
정신을 못 차리고 눈시울이 빨개져 있는 나에게 소파술을 권했다.
몇 분 전에 절규했던 나와는 상반되게 나지막하고 무덤덤한 의사 목소리에 설움이 북받쳤다.
선택지를 주지 않은 권유다.
소파술로 하는 이유는 죽은 태아가 스스로 배출되기 전에 검체를 꺼내 염색체 검사를 맡기자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아이가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과 세상 혼자된 듯한 극심한 외로움을 느끼는 와중에 수술 날짜를 잡아야 하는 건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이런 경우는 태아에 염색체 이상이 있을 것으로 의심된다. 염색체 이상 태아는 살아서 세상에 태어나지 못한다.
나이가 많기 때문에 이런 일이 다시는 생겨서는 안 된다.
이것이 태아 염색체 검사를 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문득 아기가 없는데 아기집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궁금했다.
이 말 그대로 질문했고 의사는 ‘아기를 만드는 세포가 있고, 아기집을 만드는 세포가 있어, 세포가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한 사람이 열심히 살 집을 지었다.
텃밭도 만들고 우물도 파서 마실 물도 길어 올릴 수 있게 하고 건물도 튼튼하게 지었다.
입주해서 살기만 하면 되는데 정작 집 지은 본인은 시름시름 앓기만 하다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지어놓은 집에는 못들어가본 채로 생을 마감했다.
ㅠ.ㅠ
지금 내 상황을 어른의 세계로 그려보자면 이런 그림일 것이다. 상상력을 동원하여 묘사해보았다.
진료실에서 나와서 간호사와 마주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수술 동의서와 볼펜 한 자루를 내밀었다.
이것도 지켜내지 못한 나 자신과 유산이라는 믿을 수 없는 결과에 심장 끝에서부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볼펜이 부러질 듯한 힘으로 책상 바닥을 내리처가며 서명을 가까스로 했다. 간호사는 조용히 동의서를 걷어갔다.
만날 때마다 밝게 웃으며 존재가 오고 감을 알렸던 간호사였지만 그 시간 동안엔 어느 쪽도 인사 한마디 말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말문을 연다는 것은 울음이 터지거나 분노가 폭발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조금 전에 진료실에서 나올 때도 인사는 하지 않았다. 아니 인사조차 잊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간 인터넷으로 폭풍같이 검색해 본 결과로는 긍정의 답을 듣기 어려울 것이라는 걸 예상하고 있었다.
병원 방문 시간을 원래 오후로 잡았었지만, 그다지 좋은 결과를 듣지 못하는 데에 피 같은 반차를 쓰고 싶지 않았다.
전전날 서둘러 진료 시간을 가장 이른 시간으로 변경했고, 결과를 듣자마자 병원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고 갈 테니 픽업해서 회사에 데려다 달라는 약속을 남편과 해두었다.
“혹시 안 좋은 결과 듣게 될지 모르니까 오후 예약 취소하고 모닝 진료로 바꾸자. 좋은 소식도 아니고 안 좋은 일에 반차 쓰면 아깝잖아.”
“그래 네가 그러면 그렇게 해.”
“그럼 새벽 진료로 예약 변경하고 병원에서 강남역까지 지하철 타고 내리면 픽업해죠.”
“1번 출구로 나와. 태워서 회사 데려다줄게.”
“응, 알았어.”
남편과 미리 약속해 둔 대로 유산 소식과 비등한 대가로 얻은 저 세상으로 날아가버린 혼미한 정신줄을 붙잡고 가까스로 강남역까지 왔다.
수요일 오전 8시~9시 사이 강남으로 향하는 지하철은 이러다 객실이 팽창해서 터져버릴 수 있겠다 싶은 망상에 빠지게 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탈 수 있는 게 용할 정도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손에 들고 있는 가방과 쇼핑백은 조금만 신경 쓰지 않으면 다른 이의 다리에 휘감겨 저 멀리 쓸려 나갈 듯했다.
빽빽하게 끼어 밀리고 밀려 더 이상 못 타겠다 싶은 상태에서도 어마어마한 인파들이 계속 안으로 들어왔다.
서있을 힘조자 없는데 빼곡한 인파들에 둘러싸여 인간 지지대로 서있는 모양새다.
반미치광이 상태로 지하철에 탑승한 것도 가능한 일인지 분간이 안 갔다.
혼자 서있었으면 쓰러져버렸을까? 그렇다면 미어터지는 지하철에 탄 것이 다행인가 불행인가?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속은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남편도 말이 없었다.
병원에서부터 진료실 의사도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일절 하지 않았고,
간호사는 동의서를 내미는 손만 보여줄 뿐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으며,
남편은 아예 아무 말하지 않았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다물고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그 표정 안에서 각각 의사의 안타까움, 간호사의 환자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눈치, 남편의 속상함과 아쉬움을 읽을 수 있었다.
남편은 나를 태우고 9시가 되기 1~2분 전에 회사 앞에 내려주었다.
오늘 제대로 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기고 내렸고, 이 말을 들은 남편도 말없이 자신의 회사로 향했다.
오늘 쓴 이 글은 어쩌면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을 복기한 글이라고 본다.
하지만 인간이란 동물은 실로 위대한(?) 존재다.
유산을 판정받은 이 와중에도 밥만 잘 먹었다. 죽을 만큼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만 생각일 뿐. 내 몸 자체는 생존에 필수적인 행동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나 자신은 그러니까 모체는 빨리 심신을 회복하고 싶다. 그게 유산 선고(?) 받은 당시 진심 어린 내 속마음이다.
#계류유산 #생각지도못한일
*긍정의 교과서(부제: 한순간에 행복해지는 방법). (다게타 소운 지음. 강현숙 옮김. 소미미디어. 2022)
원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P.310~311
: 소제목 - 자신에게 꽃을 달아라.
저는 좀 더 자신을 칭찬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서예 뿐만이 아닙니다. 평소에 여러 곳에서 청소를 깨끗하게 했을 때, 맛있는 것을 먹었을 때, 시간을 잘 지켰을 때 말이죠. 물론 모두 칭찬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자신을 칭찬해 주기 바랍니다. 그것이 자기 긍정감을 높입니다. 그리고 좋은 기분을 높이는 결과도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