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실버반지 May 16. 2023

심박수를 보다

[시간 순번 17] Fetal heart beat

무기력하고 잠에 빠지고 싶다. 현실이 아니라 믿고 싶은 순간에 수술을 할 것인지 날짜는 언제로 잡을지 병원에 연락해야 하는 건 눈앞에 펼쳐진 실체였다.

아침 조기 진료 때 ‘근무를 하는 사람이라 갑자기 잡아야 하는 일정이 매우 부담스럽다’는 어필을 했기에 이에 대한 배려로 하루라는 시간을 얻었다.


낑기고 낑겨 가까스로 온 사무실 창밖에는 4층짜리 빌라들만 보인다. 행여나 마주 본 건물에서 안이 들여다보일까 굳게 닫힌 창문들 뿐이다.

온통 회색이고 컬러감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새삼 느꼈지만 무슨 건물이 이렇게 많으며 멍하니 있고 싶은데 창문 밖에는 주거 용도로 지어진 4~5층 건물 밖에 없담.

멋들어진 정원에 꽃과 새와 애완동물들 재롱이 펼쳐지는 아늑한 풍광을 본다 해도 마음이 허할 판국에 말이다.


수술이라는 건 아무리 간단하다 해도 몸이 견뎌줘야 하는 일이다. 무슨 수술이든 최소 3일은 쉬어야겠다는 다짐을 용종 녀석 떼어낼 때부터 해왔다.

말만 들어도 무서운 ‘수술’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며 무감각한 언어로 표현해 온 건 난임병원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출근해서 일정 보고 가능한 날짜를 연락 주겠다는 배려를 받아냈으나 실상 속내는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아이를 떼어내는 수술 아닌가. 아이를 떼어내는… 아이를 지우는… 아이가 없어지는…


어려서부터 이 수술은 해서는 안되고 아이를 지우는 일은 음지에서 행하는 대단히 잘못된 것이며 그러므로 피임을 잘해야 한다고 성교육 시간에 배우고 또 배웠다.

그런데 그건 온전하게 살아있는 아이를 일부러 지우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지,

자력으로 살아갈 장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고 있는,

게다가 의학적으로 ‘유산’이라는 진단을 내린 온전치 못한 태아마저 그대로 두라는 의미가 아니었단 건 알려주지 않았다.

하나만 알고 하나는 알려주지 않은 이 반 쪽짜리 성교육 때문에 내 머릿속엔 ’낙태는 안 되는 것‘으로 박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용종 수술 후에 예상치 못하게 허해진 몸 상태로 인해 수술은 쉽사리 할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떻게든 자궁 내막을 건드리는 건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다른 선택지를 주지 않은 의사의 제안은 이유가 있었고

내가 고령 임신이라는 것, 이런 일이 또 있으면 안 된다는 것, 태아 염색체 검사를 반드시 해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속으로 생각하기 좋아하는 지극히 내향적 성향의 인간이다.

언제나처럼 곰곰이 생각해 본다.


그럼 자궁 내막을 수술로 건드리지 않고 태아 염색체 검사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시험관 유산’, ‘태아 염색체 검사’, ‘약물 배출’ 등 용어로 폭풍 검색을 했다.

2시간가량 말없이 손가락만 움직인 결과로 입원해서 약물을 투약하는 방법으로 태아를 배출시키고 검체를 수거하여 검사할 수 있는

일련의 모든 과정을 병원에서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는 결과를 알아냈다.


그 병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집에서도 15분 정도 걸리고 회사에서도 가깝고 거리 상으로 매우 다행스러운 위치에 그런 병원이 있음에 매우 감사했다.


또 한 번 진심을 얘기하자면 실상 감사한 것과 별개로 수술을 할 것인지 약물 투약을 할 것인지 병원은 원래 다니던 곳으로 갈 것인지 다른 병원으로 갈 것인지 찾아야 한다는 건 매우 끔찍한 일이었다.

몸과 마음은 피폐해져 있어 오로지 손가락만 움직여 찾을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

아날로그 시대처럼 일일이 전화를 하고 여기저기 수소문하여 정보를 찾아야 했다면 그전에 중증 우울증에 먼저 걸렸을 것이다.


생애 첫 방문하게 되는 그 병원은 상급종합병원으로 예약이 까다로웠다.

1차 진료 기관에서 써주는 진료의뢰서가 있어야 하고 당일 방문은 불가능하다.

그런데다 이미 사망 선고를 받은 태아가 모체에 오래 남아 있으면 안 되지 않는가.

넘쳐나는 환자들로 원하는 의사에게 진료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건 나처럼 응급 시술을 요하는 환자에게 사치와도 같다.

무조건 빨리 가능한 의사로 예약해야 한다.


시간을 최우선 요인으로 정하고 병원에서 지정해 주는 의사로 예약을 잡았다. 첫 방문은 외래 진료부터 시작한다.

그날(첫 방문)이 2월 4일이었으니 벌써 무궁이가 유산 확진 받은지 5일이 지났다.


처음 심장 뛰는 게 안 보인다는 말을 들은 이후부터 3일 후에 유산 판정을 받았고, 그로부터 또 5일이 지났다.

기다림이 연속된 나날은 안 그래도 저 세상 간 정신줄이 너덜너덜해져 끊어지기 일보 직전으로 만들고 있었다.


상급종합병원은 초음파를 꼼꼼하게 보았다. 근데 이게 웬일인가. 태아 심장 뛰는 게 보인다고 한다.

까만 바탕의 초음파 화면은 하얀색 반짝거리는 점 하나가 깜빡이고 있었다.

꼼꼼한 초음파 의사는 흰색 점이 반짝 거리는 리듬에 맞춰 같이 의태어를 내뱉어 주었다. “깜빡… 깜빡… 깜빡…”

아니 보여야 할 날에는 안 보이고 왜 지금 보인단 말인가!

나는 너를 없애려고 이곳에 왔는데 너는 왜 이곳에서 살아 있는 모습을 보이냔 말이다. 살리려고 기쁘려고 간 곳에서 모습조차 안 보였던 네가 왜 여기서…


심장이 뛴다며 뽑아준 초음파 사진을 얼떨결에 주머니에 넣었다. 뭐 그 사진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차차 생각해 보자. 지금은 의사 소견을 들어봐야 할 때다.


설명을 들으려면 초음파실에서 나와서 진료실로 가야 한다.

진료실 문을 열면 또 처음 보는 의사가 앉아 있을 것이다. 이 의사는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진다.


초음파실에서 보내준 영상 자료를 조회하고 있는 담당 의사는 얼굴이 하얗고 눈이 반달형이며 말투가 다정하고 나긋나긋함과 씩씩함을 동시에 겸비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어 전체 얼굴은 안보였으나 아마도 미인형일 것이다.

대형병원일수록 설명이 길지 않다. 그저 의료진 소개에 나온 프로필 사진과 실물을 대조해 보며 외모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 해도 순간 느낌으로 이 정도 판별을 해냈다면 꽤 괜찮은 의사를 만난 편이다. 병원에서 잡아 준 의사였지만 첫 만남은 꽤 마음에 들었다.


‘심장 뛰는 게 보여야 될 날에 태아도 제대로 보이지 않더니 오늘 심장이 뛴다고 한다’, “이 어찌 된 일입니까?”라는 질문에,

의사 소견으로는 장비 차이일 수도 있고 그동안 태아가 자랐을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 더 덧붙여 주었다.

“이렇게 되면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4일 후인 다음 주 수요일에 다시 오세요.”


희망인가 절망인가. 난 심박이 보여야 하는 날부터 좀 더 기다리기로 한 3일 동안 무한 반복되는 결론 없는 고민을 했으며,

그로부터 5일간 이러다 내 심장도 온전치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심히 걱정될 만큼 우울한 나날을 보냈다.

이제 정말 아이를 보내자는 생각으로 병원에 왔다. 그런데 이제부터 또 4일을 기다려야 한다.


“이 결과가 더 좋은 것 아닌가요.”

의사는 남의 속도 모르고 반달형 눈을 호가 더 둥근 반달형으로 치켜 떠가며 방긋 웃으며 말했다.

웃는 얼굴에 대한 화답은 웃는 낯으로 해야 한다고 누가 그랬단 말인가.

심장이 뛰고 있는 태아가 더 좋지 않느냐며 다정다감한 말투로 건네는 소견에 딱 1초간 기분전환 겸 위안을 느끼기로 했다.

단 1초 만이다. 1초 후에는 ‘레드썬’. 최면이 풀린 것 마냥 다시 돌아온다.


잠시 동안 위로를 받고 유산 선고 이후부터 디폴트 모드였던 좌절 상태로 다시 돌아왔다.

“그럼 기다려 볼게요.”라는 말을 남기고 진료실을 나왔다.

과배란 때부터 몸을 호르몬 주사와 병원에 맡기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별다른 반항도 하기 어렵다.

그냥 따라가는 수밖에.


나보다 앞서 진료실에 들어갔다 나온 여자 한 명이 아직 안 가고 밖에 앉아 있었다.

옆에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내일 입원해서 약물 배출하래.”라고 말하는 게 들린다. 저 환자도 유산한 환자구나.

혼란이 머릿속을 뒤흔든다. 하루 뒤에 말끔히 떼어버릴 저 여자가 나은 것인가 내가 나은 것인가.

과연 4일을 더 기다리는 내 정신은 정상적으로 직립보행하고 평소의 식사량처럼 먹고 소화시킬 수 있게 온전히 몸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인가.


까다롭고 예민하긴 콘테스트 나가라고 하면 둘 째가기 서러울 만큼 정신이 흔들거렸다.

이런 걸 속된 말로 ‘멘탈 나간다’라고 하는구나.


주말 병원에서 오는 길 법원 검찰청 인근 시위는 왜 이리 거슬리는 것이며 확성기를 뺏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애먼 이들에게 내 정신 상태를 탓해본다.

아무리 겨울이라도 나무는 왜 가지만 남았으며 봄처럼 이파리가 돋아나고 있지 않고 헐벗고 쓸쓸하게 있는 것이냐며 제 할 일 하고 있는 자연도 원망해 본다.

세상 모든 것들에게 화내지 말고 온화해져 보라고 이기적이지 말고 이타적이 어보라고 죄다 벗어던지지 말고 풍성해져 보라고

적어도 보이는 것들 만이라도 보듬어주고 따듯하고 품어주는 상태로 있어주면 안 되겠냐고 핏발이 서 빨개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모든 게 다 너네 때문인 것 같다고 소리 없는 외침이 빙빙 돌고 있는 내 목과 눈시울에선

먹먹한 덩어리가 세상과 통하는 공기를 꽉 막고 뜨거운 물을 흘려내지 말라고 저지시키고 있었다.




오전에 병원에 도착했을 때 지하 3층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대형병원 주차장으로 만들어진 지하 공간은 이른 아침에도 차들로 빼곡하고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말 그대로 황량한 모습의 주차장이다.

산부인과 외래로 가기 위해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길에 걷다가 멈춰 섰다.


‘여긴 또 왜 왔지? 이 병원에서 나 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공허한 고립감이 든다.

철저하게 내 발로 찾아온 곳이다. 이곳에 내가 오기 전에 여기 그 누구도 나라는 존재가 있는지 몰랐을 텐데.


앞으로 기다려야 할 4일은 ‘정상 생활을 하는 척’ 보여야 한다. 될지 안될지는 모르지만 별다른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긍정이든 부정이든 결과를 통제할 수 있는 내 영향력은 아무것도 없다.


#느린심박수 #7주차심박수

매거진의 이전글 살 집만 짓고 시름시름 아픈 아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