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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반지 Oct 01. 2023

난임 환자의 추석

원래 백수이기 때문에 6일간 연휴가 있건 없건 똑같다. 다만 직장을 퇴사한 줄 모르는 부모님을 위해 평일 아침 8시 반 어김없이 집에서 나와주던 생활은 안 할 수 있다. 달력에 써진 글씨가 빨간 색인 날은 집에서 뒹굴어도 쟤는 왜 출근을 하지 않는가 라는 의문을 갖게 하지 않는다.


연휴가 시작되기 6일 전 시행된 난자 채취는 오른쪽 난소 크기가 왼쪽보다 2센티 이상 크게 부풀려놨다. 난포를 터뜨리기 위해 바늘로 물주머니를 찔러 쭉 빨아들일 때 출혈이 있었고 그 피가 고이면서 한쪽 난소가 늘어나버린 것이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난소 비대칭은 오른쪽 골반 안쪽 약 5센티 지점 언저리가 쿡쿡 찌르는 통증을 가져왔다.


2박 3일간 피가 내려왔고 오른쪽 아랫배가 찔러대는 기이한 통증은 난소 위치가 어딘지 정확하게 알려 주었다. 자궁 난소를 가진 여자 대다수가 난소가 어딘지 짚어보라고 하면 배꼽 아래에서 치골 윗 부위를 손바닥으로 쓰다듬는 거까진 할 수 있어도 정확히 어느 부분인지 짚긴 어렵다. 자궁 위치는 알아도 난소는 잘 모른다. 그걸 안다면 의학 전공자이거나 난소에 무슨 문제를 겪었거나. 둘 다 아니라면 상당히 똑똑한 여성이거나. 난자채취 부작용으로 44년 인생 처음으로 그곳이 어디인지 알았다.


잠자다 뒤척일 때마다, 웃을 때마다, 복식호흡으로 소리 낼 때마다, 옆으로 돌아누울 때마다 심지어는 걸을 때마다 쿡쿡 찔러대는 통에 도대체 내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걱정되었다.

채취 4번 만에 처음으로 채취 후 이상으로 병원에 방문했다. 그때 본 정말 초음파와 복부 초음파로 오른쪽 난소는 5.79 왼쪽 난소는 3.5로 짝짝이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 이번에 그렇게 되었다.

이런 기묘한 내장 상태는 연휴 내내 어디 가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처방을 받게 해 주었다. 덕분에 달력에 빨갛게 시작한 6일간의 황금연휴는 장판과 엉덩이를 한 세트로 집에 묶어 주었다.


생일이 연휴 시작일인 한 지인은 나처럼 난임 치료를 받고 있다. 그녀는 난소 한쪽이 부풀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동이 자유로운 처지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며느리들마다 집안 분위기가 달라 해석이 분분하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녀는 시가에 내려가 매우 융숭한 생일상을 대접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그녀가 SNS에 올린 사진 상에는 제사 때나 쓸 법한 가로로 길이 2미터쯤 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 밥상 위에 꽃게찜, 불고기, 홍어무침, 갈비, 게장, 송편과 함께 각종 밑반찬과 미역국이 곁들여진 진수성찬이 게시되었다. 명절 때 시댁에서 받은 생일상이라는 태그와 함께 웃는 이모티콘도 붙어 있다. 진정 인생에 우선순위를 무엇에 두어야 하는지 아는 시어머니다.


우리 같은 난임 동지들이 명절 때 친지를 만나면 애 안 생기냐, 이게 다 네 나이 때문이다, 내 아들은 잘못 없단 소리를 들을 거라 생각하는데 오산이다.


생일과 연휴가 한 날이라 상다리가 휘어지는 밥상을 받은 그녀도 애 생길 조짐 보이냐 이와 비슷한 말조차 듣지 않은 모양이다. 혹은 연휴를 맞이하여 가족끼리 캠핑을 가기도 한다. 맛깔스러운 음식을 앞에 두고 베이비 이야기가 나오는 일을 피하고자 나처럼 장판과 엉덩이를 붙이는 묘안을 택하기도 한다. 긴 연휴 중 며칠은 회사에 있기를 선택하는 일정을 일부러 잡는 나와는 기질이 사뭇 다른 종족도 있다. 이 모든 모습이 난임 치료 중 명절을 대하는 각자의 방식이다.


보이는가? 그 누구도 애 안 생기냐는 말을 듣지 않았다는 걸.

안 그래도 힘에 부쳐가는 난임과의 사투를 배가시키는 언행을 안 듣거나 피하는 것이다. 이 시대 며느리들이 그렇게 못나지 않았다. 애 못 낳았다고 퍼붓던 모진 타박을 인내와 무언으로 참고 또 참는 시대가 아니다.


우리 집은 가부장제가 남아있는 편이다. 매년 할아버지 제사 때, 할머니 기일에, 명절에 봉분을 쌓아 만든 산소에 올라가 제를 올린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명절에 시골에 안 가는 게 멋져 보여서 안 가겠다고 반항했지만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로 꼬박꼬박 잘 따라다녔다. 우리 아빠가 알면 섭섭할 일이지만 아버지들 세대에 있을법한 조상을 섬기는 지극한 정성은 적어도 내 안에는 없다.


산소에 따라 올라가면 생태계에서 자생한 상수리나무가 즐비하고 추석 철에는 거기서 떨어지는 도토리 개수가 상당하다. 싸이월드 시절에 산에서 진짜 도토리를 주워다 고객센터로 보내 사이버머니 도토리로 바꿔달라고 한다는 게시물을 본 적 있다. 당시 싸이월드 운영회사였던 SK커뮤니케이션즈 담당자는 실물 도토리를 사이버머니로 바꿔주었다는 글을 남기며 자연보호를 위해 무분별한 도토리 채집을 자제해 달라는 예쁜 마음도 드러내었다.  그때 내가 우리 산소에서 도토리를 채집해 그런 짓을 했다면 300개 400개 수준이 아니라 마대 자루로 한 말씩 가져다 돈으로 바꿔달라고 했을 수 있는 정도다.


여하튼 실물은 본 적 없고 사진으로만 접한 할아버지와 지독한 남존여비 사상에 빠져 손자와 손녀를 드러내놓고 차별하던 할머니가 묻혀 계신 산소에서 해마다 주운 도토리는 그 녹진함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묵을 먹게 해 주었다.


아빠와 엄마가 배낭 가득 짊어지고 내려오시면 도토리는 방앗간에서 가루로 변신한 후 순정 도토리에 가까운 비율로 물을 거의 섞지 않은 도토리 묵을 만들어 주셨다.

엄마는 이 작업을 위해 추석 때 산소에 가시기 3개월 전부터 도토리를 줍겠노라 매일 같이 선언하셨고, 예를 다해 성묘를 올리기가 무섭게 묘소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도토리는 새끼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올해도.. 바로 어저께다. 장판에 붙은 내 엉덩이를 쓰다듬는 동안 엄마와 아빠 손가락에 잡히고야 만 도토리들을 가루로 만들기 위해 방앗간을 예약해 놓으셨다고 한다.

내가 산소에 가지 않는 바람에 수도권 전철 노선을 이용해 도토리가 한가득 든 배낭을 메고 엄마와 아빠는 집까지 오셨고, 또 그것을 들고 방앗간에 가셔야 한다. 성묘에 가지 않은 죄책감은 없을지언정, 만들어놓으면 얌냠 짭짭 잘도 먹는 도토리묵 원재료를 70세가 넘으신 부모님이 메고 지고 다니게 만들었다는 지점에서 불효녀라는 생각에 닿게 한다.


커진 오른쪽 난소를 회복시키기 위해 이동을 최소화하고 있는 상태가 불효를 자초한 것인가?

우연히도 난소 크기가 늘어난 시점이 추석 연휴에 가까웠던 것은 절대적으로 내 의지가 아니었다고 위안을 해야 하는 것인가?


가루가 되어 버린 이후 어떻게 묵으로 변모하는지 자세히 본 적이 없다.

엄마한테 들은 바로는 하루 종일 눌어붙지 않게 불 앞에 서서 저어주어야 한다고 ‘말로만’ 들었다.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도토리 가루에서 묵이 되는 과정을 관심 있게 보지도 않았다. 완성된 묵에 지상에 그 어떤 만능 간장도 대적할 수 없는 환상의 맛을 지닌 엄마가 만든 양념장을 뿌려 먹는 게 딸 된 도리의 전부였다.


도토리가 가루가 되는 과정은 쌩 노가다라 1그램의 힘도 써줄 수 없는 처지지만, 올해는 가루에서 묵으로 변해가는 동안은 엄마 옆에 있어볼까.

순도 100퍼센트에 가까운 도토리묵을 먹고 나면 시중에 파는 그 어떤 묵도 먹을 수 없게 만든다. 밍숭하고 물에 탄 듯하여 다른 도토리묵은 못 먹겠다.


눌어붙지 않게 온종일 휘휘 젓는 동안 묵냄비 앞에 있을지 안 있을지는 이 자리에서 호언장담 할 수 없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다 만들어지면 3분의 1 정도는 내가 먹을 생각이다.


다른 해보다 조금 더 미안함을 느끼며…


#2023년9월30일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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