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가 되어서 임신하려고 시험관으로 고생하는 여자들 중에 딸을 낳으면 제 딸은 20대 때 난자 냉동을 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가 들면 임신이 어려운 원인이 여러 가지지만 그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가 난자의 노화다. 태생부터 가지고 나온 난자가 해를 거듭할수록 노화가 되다 보니 세포에 문제가 생겨 임신이 어렵다. 40대가 되어서 여러 번 난포를 채취하는 과정을 거쳐도 건강한 난자 하나를 얻을까 말까 하다. 이런 일을 몸소 겪다 보니 20대 때 정상 난자를 미리 채취해 동결해 놓으면 결혼이 늦어지더라도 나중에 쓸 수 있다는 생각이다.
사람이 몸과 정신을 가지고 태어나면 신체와 마음을 최대치로 쓸 수 있을 때 잘 사용하고 가는 것이 현명한 삶이다.
중학교 2학년 사회교과서 한 페이지를 외운다고 쳐보자. 작은 교과서 한 장 외우는 거 나이가 몇 살이건 가능하다. 하지만 중2 때 외우는 속도와 40살에 외우는 속도가 같은가?
중2 때 중간고사 앞두고 한 장 외우라고 하면 순식간에 외우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40살은 다르다. 머리도 팽팽 돌아가는 시기에 공부하는데 쓰라고 부모님이 강조하는 것처럼 몸도 건강할 때 잘 사용해야 한다.
몸을 사용한다고 하면 이상하게 성행위, 성관계 같은 것을 떠올리는데 그건 수준이 낮은 생각이다. 새끼를 낳는 포유동물로 태어났으면 생식기능을 잘 쓸 줄도 알아야 한다.
생식기능이 최대치를 찍는 20대 때 출산을 하는 게 맞다. 아직 사회는 결혼을 해서 출산하는 게 통념상 무난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결혼을 제 때 하려면 나와 맞는 배우자를 찾는 눈을 키워야 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야 내 기질과 어울리는지,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이 살아가는데 부딪힘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 어떤 사람은 만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인지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나와 맞는 사람을 찾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너무 공부만 강조하면 사춘기부터 20대 초중반에 이런 눈을 뜨지 못해 사람 만나는 것부터 난관을 겪는다.
두뇌 기능이 좋은 시기에 공부하라고 하는 것처럼, 공부하는 머리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기술을 발휘하는 머리, 타인을 받아들이고 소통하는 따뜻한 마음, 최대치 능력을 발휘하는 생식기능까지 이 시기에 잘 쓸 줄 알아야 가지고 태어난 몸과 정신을 잘 살리는 길이다.
부모 세대인 전쟁 이후 세대 (현재 60~70대)는 육아에 대한 기준이 없다 보니 아이를 잘 키웠다는 기준을 공부에다 두었다. 공부 잘하는 아이를 잘 키운 아이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회가 그랬고 그 외 다른 기준은 없었다.
지금처럼 다양성을 존중하는 시대는 아이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해 주는 게 좋은 양육이라고 한다. 잘하는 건 살리고 못하는 건 안 보이게 해주는 것도 능력이다.
어머니 아버지 세대들이 공부하고 싶어도 집안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던 한을 자녀를 통해서 이루려고 하니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아니라 '공부, 공부, 공부' 그저 시키기만 하는 쪽으로 표출되었다. 난자냉동이 이런 식으로 사회와 앞선 세대에 의해서 의례처럼 행해지게 될까 봐 우려된다.
생식기능에 아무런 문제 없이 태어난 딸을 20대에 난자 냉동을 시킨다는 건 아무리 봐도 엄마가 못했던 걸 아이를 통해 이루려는 것 같다. 40대에 시험관으로 임신출산을 한 엄마다 보니 내 딸은 그렇지 않게 키우려는 의도는 알겠다. 20대라면 나와 맞는 배우자를 찾고 만나서 결혼하여 자연스럽게 임신해야 할 나이인데 엄마 욕심에 거두절미하고 난자냉동부터 하라고 시키면 아이가 알아들을까?
시험관으로 고생해 본 엄마야 잘 알겠지만 아무리 엄마가 고생한 이야기를 해준들 겁먹고 무서운 생각만 앞설 뿐 난자냉동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이 들 것 같지 않다.
10대 때는 공부하라고 다그치다가 20대가 되니 난자 냉동하라고 병원 데리고 가는 것보다 지금 네 몸이 가장 건강한 기능과 우수한 난자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하게 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옳다. 가지고 태어난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난자 냉동도 필요하다면 해야겠고, 그보다 더 좋은 건 젊고 건강할 때 임신해서 출산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것도 스스로 깨닫는다.
엄마가 고생해 봤으니까 엄마 말 들으라고 병원 데려가서 과배란 주사 맞고 채취시키는 것은 마치 육아에 대한 기준이 없어서 공부 잘하는 아이가 잘 키운 아이라는 생각으로 공부만 다그쳤던 세대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여자가 결혼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고 심도 있게 고민해 보는 시기가 서른 살 전후다. 29살, 30살이 되어도 미혼 상태이고 결혼할 상대를 만나고 있지도 않다면 이때쯤에는 고민의 양상이 20대 초중반과 달라진다. 구체적으로 앞으로 결혼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오는 시기다.
결혼은 혼자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합이 맞아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고군분투한다 해도 안 되는 걸 서서히 알아가기에 답답해진다. 혼자서만 할 수는 없고 시간은 점점 가고 한 살씩 더 먹을수록 힘들어진다는 걸 알아갈 때 당장 혼자라도 해놓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대비가 뭐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 난자냉동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려면 이전에 내 몸을 어떻게 쓰면 잘 쓰는 것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친구 따라 어른들 이야기 따라 할 수도 있지만 스스로 병원에 가서 해야겠다는 선택을 하는 시기는 서른 살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아직 난자 노화가 덜 되었고 한 두 번 채취 정도는 이변만 없으면 몸이 잘 회복할 수 있을 때다.
나이 들어서 난자질이 떨어져 영양제 먹고, 수액 맞고, 좋다는 음식 다 해 먹어도 하나의 좋은 배아 얻기가 힘들다. 몸에 좋은 줄 알고 검증도 안된 것 구해다 먹고 무리해서 운동하다가 난소 기능이 되려 떨어지는 것도 봤다. 라면 같은 인스턴트 및 반조리식품 안 먹고, 조미료가 첨가된 외식 음식 자제, 단백질 들어간 계란이나 소고기를 적당량씩 매일 먹고 당분 있는 음식 절대 금물, 채소와 야채는 섭취하고 과일은 먹지 않는다. 이런 생활을 몇 년씩 해도 고생하는 게 40대 난임이다. 먹고 싶은 음식 마음껏 먹고 난소 기능 신경 쓰지 않고 등산과 운동 즐기며 조금 무리해서 몸을 쓰더라도 회복만 잘 되면 또 운동할 수 있어야 하는 나이다. 조금 더 즐기고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더 가져야 할 시기에 '아기 아기, 임신 임신' 하며 식단 조절, 활동량 조절을 해야 하는 게 시험관 하는 사람들 현실이다. 물론 내 몸을 위해서 좋은 음식 먹고 좀 부족하다 싶게 운동하는 게 뭐 어떠냐 싶지만 난임 환자가 받아들이는 실제 생각은 다르다. 건강에 도움 된다는 생각보다 내가 이 나이에 이게 뭔 짓인가 하는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다. 결국 난자냉동이 답이다. 그렇지만 결혼을 미뤄놓고 하자는 건 반대다.
채취해서 얼려놓은 난자를 나중에 쓰더라도 나이가 많으면 임신해서 합병증에 놓일 위험이 많다. 또 임신 자체가 어렵기도 하다.
좋은 난자를 확보해 놓았지만 잘 임신이 되지 않는다면 그 또한 문제다. 난자 채취 후에 감염, 복수, 통증, 출혈 등 부작용을 겪으며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것보다 생식기능이 좋을 때 임신 출산 하는 게 가장 좋다. 난자 채취는 난자질이 좋을 때 미혼인 상태에서 30살이 되어가는 시기 즈음에 정신을 가다듬고 하는 게 좋다. 몸의 생애주기를 잘 이해하고 시기 별로 생식기능이 어떻게 저하가 되는지 알고 있는 상태로 했으면 한다. 사회적인 분위기와 남을 따라 너도나도 하기보다 자발적으로 병원에 갔으면 좋겠다. 난자 냉동이 일종의 과정이지 모든 걸 담보해 주는 해결책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하고 싶은걸 다 해보고 출산으로 인생의 방점을 찍으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난임으로 고생해 보니까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알겠다. 좀 더 편하게 좀 더 유리하게 살아보려고 결혼을 미루고 출산을 늦춘 건 조물주의 영역을 건드린 것이다. 신이 주신 능력을 거스르니 고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 부모들처럼 건강할 때 출산 먼저 하는 게 맞다. 난자냉동을 하더라도 이 내용을 알고 했으면 좋겠다.
엄마 세대는 일찍 결혼하고 출산까지 끝낸 세대라 딸들에게 설명해 줄 수 없었던 이야기를 시험관을 하면서 알아간다. 나도 이렇게 조금 더 성장해 본다.
#2023년10월11일 #의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