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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반지 Oct 23. 2023

난임 환자의 오사카 여행(1)

여행을 준비하는 마음

20대 중반부터 30대 중반 내 삶은 ‘여행’으로 키워드가 정리된다. 서른여섯 살까지는 그랬는데 이후 통 여행이라는 걸 다니지 않았다. 일종의 목적 없는 돌아다님에 대한 거부랄까. 무엇을 볼지 무엇을 깨닫고 올지 정하지 않고 유명 관광지만 돌다 오는 것에 대한 방점을 찍자는 결심에 뉴욕 훑어보기를 끝으로 해외에 나가지 않았다. 이후 코로나가 덮쳤고 국외 여행은 더 멀어졌다.


2023년 3월 회사에 종지부를 찍었으니 10월이면 벌써 8개월 째다. 유산 후 내리 4개월을 시험관을 쉬었으며 7월과 9월에 한 과배란은 40대 중반 여자의 볼품없는 난자를 배출해 주었다. 어쩜 수정시킨 배아 상태가 그리 깨끗하지 못할까. 깔끔하고 매끄러워야 할 세포가 울퉁불퉁한 것이 내 새끼가 될 녀석들이 대체 왜 이런 것이냐며 씁쓸함만 잔뜩 안겨주었다.


사회생활도 하지 않은 채 해온 연이은 시험관 결과로 좌절만 커져가고 있을 때쯤 슬슬 양가 부모님께 알려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남편에게 꺼내보았다. 남편은 어쩔 줄 모르며 내 상황과 정신 상태를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여행 다녀오라는 제안을 했다.


단군할아버지가 국가를 창조하셨다는 10월 3일 개천절, 재래시장에서 김밥 두 줄을 사서 각자 한 줄씩 따로 포장하여 집에 들고 들어온 날. 이 날은 그야말로 최상의 타이밍, 우연히 TV를 켰던 순발력, 밀어붙이는 남편의 추진력, 이 모든 것이 결합한 절묘한 조합의 승부수였다.


그날 오후 5시 30분 무렵 모 홈쇼핑 방송에서 오사카 3박 4일 여행 상품을 단 30분 간 판매하고 있었다. 가격은 59만 9천 원, 혼여(혼자 여행) 하는 사람은 추가

10만 원만 내면 3박 4일을 여행사 졸졸 따라 다녀올 수 있는 합리적 가격의 상품이었다. 여행을 권했던 순간부터 수많은 여행지 중에서 남편은 일본 오사카를 추천하고 있었고 이유는 엔화 환율이 낮아졌다는 것과 오사카는 비교적 여행 난이도가 낮다는 것이다. 여행하기 어렵지 않은 점을 이유로 든 건 내가 오랜 기간 해외에 나가지 않아 국외여행에 대한 감이 떨어졌을 것 같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순간 그 방송을 보지 않았다면 오사카 여행을 가지 않았을 것 같다. 혼자 가는 자유여행으로 준비할 때 숙소를 잡아 놓고도 비행기를 예매하지 못해 덜덜 떨었기 때문이다. 항공권 예약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비행 일정을 잡아놓고 나면 빼도 박도 못하고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은 부담감 때문이었다. 갈팡질팡 망설이는 동안 항공료는 점점 올라갔고 급기야 생각했던 예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어쩌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을 무렵 남편이 켠 TV 방송에서 오사카 여행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가기 전부터 그렇게 떨 거면 자유여행 말고 패키지로 갔다 오라며 화면 하단에 나와있는 전화번호로 당장 연락 하라고 했다. 남편의 추진력에 나는 전화를 걸었고, 그날은 개천절 공휴일이라 다음 날 연락 주겠다는 ARS 안내를 듣고 통화를 마쳤다.


차려 놓은 밥상 떠먹여 주는 패키지여행 따라갔다 오는 게 뭐 그리 큰 일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시점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직장을 다니지 않으며 스멀스멀 올라온 불순한 사회성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별 일 아닌 상황에 심적으로 화가 치솟거나 예민해지고 있었다. 또한 좋지 않은 시험관 결과는 에버랜드 판다 보다도 못한 내 생식 능력을 자책하며 자신감을 끌어내리기에 차고 넘쳤다. 우울함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감싸고 있을 때쯤 남편은 내게 여행비 전액을 지원하며 오사카에 다녀오라고 했다. 난생처음으로 누군가 나에게 여행 갔다 오라며 돈까지 투척해 준 것이다. 그리도 많은 해외여행을 다녀봤지만 대개 내가 추진하고 갈 준비까지 마치면 그제야 ‘경비 좀 보태줄까?’라고 말하지 처음부터 돈을 대주며 여행을 권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살고 있는 둥지를 빠져나와 바깥세상으로 나가보기 위해 한 발짝을 디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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