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과배란
난포를 최대로 성숙시켜 배란을 돕는다는 오비드렐이라는 약을 맞았더니 어질어질하다.
어젯밤에 맞고 바로 잠들었는데 새벽 5시까지 통잠을 잤다. 밤 아홉 시 반부터 잤으니 일곱 시간 반을 깨지 않고 잔 것이다. 일어났을 때 잠을 잘 잔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약 부작용으로 피로감을 느껴 몸이 이완된 것 같다. 약에 취해 뻗어버린 것을 숙면을 취했다고 오인한 것뿐이다
채취 바로 전날은 주사가 없다. 난포를 자극해서 키우지도 않으며, 배란을 억제하지도 않는다. 오비드렐 같은 난포 터뜨리는 주사 효과가 최대치로 나타낼 때까지 몸을 그대로 둔다. 자고 일어나서 맞은 약이 없는데 오전 내내 힘이 없고 눕고 싶기만 한 걸 보니 전날 맞은 약의 부작용을 겪고 있음이 틀림없다.
오전은 이렇게 흘러갔다. 내일 채취하면 이번이 네 번째다. 매번 채취마다 수면마취를 했고 마취 주사는 채취 당일과 다음날 길면 그다음 날까지 깨어 있어도 잠자고 있는 것 같은 몽롱함을 안겨준다. 그런 몸상태가 내일부터 시작될 것이다.
지난번 채취 때는 상실배까지 발달한 배아 하나가 배반포로 넘어가지 못해 착상 전 유전자 검사에 보내지 못했다. 배아가 분열을 멈춰 폐기되었다는 말에 내가 판단해서 결정한 PGT 검사지만 실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기할 때 폐기하더라도 검사나 보내보잔 말이다. 남편도 그 검사비 한 번 써보자며 못내 아쉬움을 비췄다.
배아가 5일만 살아주면 검사 보내보자. 4일까지는 살았으니 배양 기술이 더 좋은 곳에서 하면 5일로 넘겨주지 않을까. 수많은 생각 끝에 우리나라에서 배양기술이 가장 좋다는 병원으로 옮겼다.
여기서 5일까지 살아남는 걸 목표로 하자. 5일만 가주면 검사에 보낼 것이고 검사에 통과하면 이식이다. 행여나 통과 못한다 해도 심각한 트라우마를 남긴 계류유산을 생각하면 그 배아는 폐기 수순으로 가도 미련이 남지 않는다.
5일 배아만 만들어지면 PGT 결과에 상관없이 이 병원에 걸어보자. 만약 그렇게 안된다면이라는 가정에 대한 대책 방안은 생각해두지 않았다.
22번 염색체 수적 이상으로 자연 도태되었던 계류유산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가장 큰 건 배아 이식 하는 걸 두렵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식만 하면 출산까지 원스탑인 줄 알고 시도했던 2차 시험관은 이식까지는 금방이었지만 분만까지 가는 시간은 더 멀어지게 했다.
시름시름 앓아가는 아기와 아기집을 인위적으로 떼어낸 후 회복하는 데 걸린 시간은 이후 시험관 시술 시기를 늦췄다. 그러는 동안 난소기능저하가 왔고 8~9개였던 예비난포 수는 2~3로 줄었다.
난임의 끝은 임신이 아니라 건강한 출산이구나. 깨달은 순간 시험관에 발을 들여놓을 때 처음 만난 첫 주치의가 원망스러웠다.
원래 남 원망 잘하는 성격이라 한 원망 쏟아본다. 왜 처음부터 건강한 배아 얻을 때까지 이식을 미루자고 설명해주지 않았을까. 배아 분열이 느리니 이식 취소 한다는 전화는 잘도 해서 설명하고 끊어버리더니마는...
정상 배아를 얻기 위해 여러 번 채취하게 될 수 있다면 그 설명을 충분히 해야 한다. 그랬으면 처음부터 PGT통과를 목표로 1년 동안 여섯 번 정도 채취만 했을 텐데. 그 의사 믿고 따라갔을 텐데. 그러면 지금쯤 통과 배아 이식해보지 않았을까. 원망스럽다. 뭐 어때. 누구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나 혼자 원망하는 건데.
시험관 1차가 끝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그 병원 그 의사는 다음 병원을 정하러 상담 다닐 때마다 다음과 같은 말을 듣게 만들었다.
‘이식을 안 해주니까 옮기겠지.’
맞는 말이다. 그렇게 옮겨 다닌 병원이 이번이 네 번째다. 충분히 아니 대충이라도 사전 설명을 해주었더라면이라는 원망만 남긴 채 끝나 버린 첫 번째 시험관 주치의가 지금도 생각난다. 멋모르고 시작한 시험관을 시작하자마자 이식 취소라는 허무한 결과로 끝내 버린 의사로 기억 한 귀퉁이에 남겨졌다.
그때로 돌아간다면이라는 후회에서 시작되는 원망.
시험관을 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 의사를 선택하지 않았을 텐데.
20대로 돌아간다면 취업 스트레스에 시달릴 게 아니라 빨리 결혼해서 출산하는 인생을 선택했을 텐데.
내 마음이 편하려면 남을 좀 원망해야 한다. 괴로움의 검은 그림자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면 모든 원인과 책임의 화살이 나에게 돌아올 뿐이다. 모든 사태와 결과물이 전부 나로 인해 비롯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비참할 수 없다.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남 탓을 해야 내 속이 편하다.
임신을 해야 하는 몸은 마음의 상처를 받아서는 안된다. 여자 아이를 낳으면 상처를 입지 않게 각별한 관심을 주며 키워야 한다. 여성의 심리에 가해지는 상처는 난소와 난자에 안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생명 잉태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는 난소와 난소에서 나오는 난자가 미세한 오류라도 일으키면 건강하지 못한 임신과 직결된다.
그런 일 없이 무난한 삶을 살아가려면 자라면서 부모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이해하고 다른 성에 대한 생물학적 차이도 알아야 한다. 나와 타인에 대한 다름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할 줄 알아야 한다. 이 과정을 부모와 거리낌 없이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아이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어려움을 같이 해결해 나가는 아이 인생의 버팀목이 되고 싶다. 함께하는 부모가 되겠다. 신이시여, 부디 나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2023년9월21일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