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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서 Dec 03. 2018

23

개인의 삶



사각형의 작은 방엔 세 개의 이층침대가 각 각 세 벽에 붙어있었고 나머지 한 쪽 벽엔 샤워실 문과 작은 소파와 의자 그리고 은은한 등을 올려놓을 수있는 작은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어머 여기 다시 모였네, 호호호.”

해윤 선생님의 밝은 웃음소리가 온 방에 울렸다. 은하씨는 그런 그녀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샤워 도구를 들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나는 2층 침대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사다리를 타고 조심조심 올라가 앉았다. 천장과 침대 사이에 거리가 꽤 되었기에 침대에 앉아서 노트북을 열 수있었다. 해 윤 선생님은 내가 있는 침대의 1층자리에 앉아계셨는데 그래서 그녀가 움직이고 부스럭 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느껴질 뿐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는 잘 보이지 않았다.
  “뭐 쓰고 있어요?”
 한참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였는지 그녀가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내 침대 위로 손을 뻗어 귤 두 개를 주며 말을 건넸다.

 아,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곧바로 노트북을 닫으면 실례일까봐 슬쩍 바탕화면으로만 바꿔놓고 노트북을 옆으로 치우고 귤을 받아들었다.

 일기 쓰고 있었어요.

 “아하! 일기 좋죠. ”

그녀는 깐 귤을 입에 한 알을 집어넣으면서 놓여있던 작은 의자에 가서 앉았다. 방 안이 그다지 훈훈하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반바지를 입고 있는 그녀가 아마 며칠동안 계속 기억에 남을 것같았다. 추위를 잘 타는 나에겐 꽤나 충격적이다.

 “언제까지 있어요, 제주도엔?”

어쩜 사람들은 다 똑같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머무르는 숙소에서 만나는 사람마다(아직 며칠 되진 않았지만) 머무르는 기간을 그렇게 궁금해하는걸 보니. 언제나처럼 나는 ‘떠날 날은 없다’고 답했다. 역시나 다른 사람들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겠지라는 생각을 했건만 그녀는 ‘그렇구나,’ 한마디만 툭 건네었다. 의외의 반응에 서운할 정도였지만 그녀는 손에 쥐고있던 귤 한 알을 다시 입 속에 쏙 집어넣었다.

 “몇 살인지 물어봐도 돼요?”

 22살이에요.

 “그렇군요, 22살. 많다면 많고 젊다면 너무 젊네. 저는 22살에 대학 다니면서 왜 이런 여행을 할 생각을 못 해봤을까 싶어요. 멋있어요.”

 저는 선생님이 오히려 멋있으신데요. 삶 자체를 즐기고 계시잖아요.

 “아, 삶을 즐긴다라…”

그녀는 마지막 남은 귤 한 알을 입에 속 집어넣고는 일어나 휴지통 근처로 걸어갔다. 그녀는 손에서 귤껍질이 무심하게 떨어뜨리고는 휴지통으로 들어간 그 귤껍질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나도 딸 하나 있는데, 21살된.”

방금 전까지 들었던 목소리와는 달리 사뭇 진지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저절로 자세가 고쳐졌다.

 “20살 때. 애 아빠여야 했던 놈은 아이 나오기 전에 연락을 끊어버렸고. 그길로 혼자 애기 낳고, 가족 도움 받으면서 살아왔어요.”

그러다 갑자기 그녀는 정신이 번뜩 든 사람처럼 밝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딸이 그래도 바르게 잘 커줘서 다행이죠! 아휴, 안 그랬으면 진짜 이렇게 돌아다니지도 못했을걸요. 호호호“

그 때 마침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확인한 그녀의 두 눈은 동그랗게 커졌다가 미소와 함께 금새 반달 눈이 되었다.

 “응! 이쁜 딸내미! 엄마 이제 서귀포야! 밥은 챙겨먹었어?....”

그리곤 통화를 하며 밖으로 나갔다. 이제 이 사각형의 작은 방 안엔 은근한 불빛과 함께 샤워실에서 들리는 은은한 물소리 뿐이었다.  

제주도에 도착한지 이제 4일이 지났다. 어제까지 있었던 게스트하우스는 혼자서 방을 썼던터라 누군가와 교류를 한다거나 할 시간도 없었다. 집 전체를 제법 경제적인 가격에 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을 통해서 숙박을 해결할 수있었던건 좋은 기회이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던게 가장 큰 단점이었다. 그래서 어제 이후로 혼자서 방을 사용 할 수있는 공간에서 숙박을 한다는 것은 한동안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여기 온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글을 쓰기 위함이 아니었나.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하지 않을까. 문득 해 선생님이 방금 나에게 했던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21살의 딸이 있고 아이를 20살에 낳았다는, 지독히도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이기적이면서도 대단하다'라는 말을 했던 한 사람도 다시 생각났다. 그래서 그랬을까, 누군가가 그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일부러 끄집어내려고 했을 때 아주 잠시 머뭇거렸던 이유가. 누군가에겐 본인의 개인사를 서스럼없이, 절대로 다시는 만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을 수있다만 또 다른 누군가에겐 절대로 만나지 않을 사람들에게까지도 개인사를 말한다는게 그렇게 힘들 수가 있다는 걸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서 더 잘 깨달을 수 있었다.

남은 귤 껍질을 침대 바로 옆 바닥에 놓여 있는 휴지통에 골인시킨 후 다시 노트북 화면을 하얀색 워드화면으로 바꾸려고 할 때였다. 샤워실 문이 열리고 뿌연 김과 함께 은하씨가 나왔다. 바닥에 놓여있던 수건에 발을 닦고는 주변을 둘러보았고 이윽고 그녀는 해 윤 선생님이 방 안에 없다는 것을 알아 차렸다.

 “어, 선생님 나가셨어요?”

 네.

그녀는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고 머리카락을 털면서 자신의 짐이 놓여 있는 침대로 걸어갔다. 나를 의식하지 않는 듯한 그녀에게서 나도 눈을 떼고 오로지 노트북 화면만을 바라보았다. 어제 머물렀던 숙소에서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면서 글을 써내려갔었기에 협재에서의 일은 이미 모두 글자로 정리가 되어 있었던 터였다.

 ‘순간이 좋던 나쁘던, 시간은 흐른다.’

이 문장으로 협재에서 나온 이후 생각의 정원과 유리의 성, 오설록 녹차밭, 5월의 꽃이라는 무인카페에서의 이야기를 정리했다. 특별한 만남이 없었던, 그저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있었던 시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오늘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 문장 아래에 대략적인 단어로 나열해보았다. 은하씨, 재준씨, 짜장라면, 해윤선생님과 그녀의 이야기까지.

 “춥진 않아요?”

한켠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잦아들면서 은하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 놀랐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며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

 아, 네. 괜찮아요. 이불이 좋네요.

이불이 좋네요,라니. 갑작스런 그녀의 물음에 나도 모르게 당황했던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불이, 두껍고 좋죠? 하하.”

횡설수설한 내 답변에 은하씨도 적잖이 당황스러워 보였지만 내 말을 되풀이하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곤 털썩, 그녀는 침대에 주저앉았다.


사각형의 작은 방에 들어가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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