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서 May 20. 2018

22

사람


 "어머 그런데 짜장라면 냄새 때문에 들어와봤는데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나봐요, 아쉬워라!"

 동그란 두 눈을 크게 뜨고 눈썹을 위 아래로 움직이면서 그녀의 얼굴은 감정을 아주 바쁘게 표현하고 있었다. 작지만 다부진 몸을 가진 그녀는 조심스럽게 나와 내 앞에 앉아 있는 그들에게 다가와 '앉아도 될까요?'라고 물어보았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녀가 바로 앉을 수 있게 내 옆에 있는 의자를 빼주었다. 그녀는 본인을 '해 윤'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녀는 본인을 제주도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본인의 이름 소개에 덧붙여 말했다. 그녀는 고등학교 지리 선생님이라고 했다. 40대 중반의 나이이지만 작은 체구 때문에 어리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을 하곤 깔깔 웃는 그녀의 모습은 소녀 같았다.

 "그나저나 다들 어떻게 제주도에 오게 되신거에요? 호호호"

그녀의 물음에 나는 다시 무슨 말을 해야하나 싶어졌다. 대답을 하려다 뜸들이는 모습이 보여서 그랬던것인지 그녀는 고개를 돌려 나에게 다시 질문했다.  

 “혼자 여행 오신거에요?”
 네, 하하.

 “멋있다, 세상에. 그래요, 이렇게 젊은 친구들은 혼자 여행해도 되고 나같은 사람은 여행 하지 말라는 법 있나요. 저도 혼자 여행다니는거 참 좋아하는데. 제주도 1주일은 무조건 포함시켜요. 그리고나서 다른 나라로 가죠. 이번에는 네팔에 다시 가보기로 했어요. 히말라야 등반하려다가 못했었거든요, 기상악화 때문에.”  

쉴틈없이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말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 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히말라야 등반하려한다고 하니깐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저더러 여행 그만다니고 이제 결혼하라는 말만하는데 결혼이 무슨 무조껀 제출해야하는 보고서도 아니고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 아닌가요, 요즘 세상에. 에휴 솔직히 저 빼고 제 동생들은 다 결혼을 하긴 했는데 저는 지지고 볶고 그렇게 살바에 차라리 혼자서 연애나 자유롭게 하다가 늙어서는 실버타운에서 멋진 할아버지들이랑 죽을때까지 재미있게 사는게 제 인생 목표에요. 깔깔깔”

그녀는 마치 누군가의 질문에 인터뷰하 듯, 마치 한 두번 답한 것이 아닌것처럼 본인의 삶과 인생의 목표에 대해 늘어놓았다. 왜인지 모르게 아마 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본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늘어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들었다. 이번에도 마치 당연하게 본인의 이야기를 테이블 위에 주르륵 늘어놓은 것일테다.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 끄덕, 나머지 세 사람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오고 가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뿐이었다. 해 선생님이 어느 나라를 주제로 던지면 앞에 앉아있던 두 남녀는 주제에 맞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를 쉬지 않고 이어나갔다. 여행 경험이 많은 그들의 대화에 직접 참여할 순 없었지만 그들의 대화 속에서 꽤 다양한 나라를 여행한 느낌이 들어 그걸로 만족하는 중이었다.

 "...빵으로 시작해서 빵으로 끝냈네. 호호호호"

 “선생님께선 어느 나라가 제일 좋으셨나요?”

마침 본인의 프랑스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던 그녀는 재준씨의 질문에 웃는 것을 멈추고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깊은 고심에 잠기는 듯 했다.

 “흐음...”
그녀는 의자를 테이블로 바짝 당겨 앉아 턱을 괴었다.

 "인도?"

 인도요?

“역시. 제 주위에도 인도 다녀온 분들 중 열에 아홉은 인도가 그렇게 좋았다고 하시더라구요.”

재준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인도는, 힘들어요. 여행자들이 여행하기도 힘들고 현지인이 살기도 힘들죠. 치안도 불안정하고 거리가 깨끗하지도 않죠. 한국 사람들과 달리 느리고 또 느려요. 특히나 한국인들이 인도에 가면 그 느림에 속이 터질지도 몰라요. 저도 그랬었거든요. "

 모든게 열악하네요.

 "그렇죠, 모든게 다 열악해요. 어쩌면 삶의 최악을 마주할 수도 있는 곳이 인도일지도 몰라요. 그런데도 인도가 가장 기억에 남는 이유는… 저는, 그렇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느리고 답답해도 친구가 되면 참 정이 많아요. 여행을 하는 이유는 그 지역의 문화나 색깔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히 몇 달을 인도에서만 지내는 사람들은 그 지역에서 만난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아, 나도 방학만 길면 인도에서 계속 있을 수있을거 같은데…. 뭐, 그만큼 매력적이죠, 인도가.”

  역시 사람이 가장 큰 이유겠네요, 삶에 있어서던 여행이던.
  “그렇죠, 우린 사람들이랑 같이 살아가니깐.”
  “좋은 사람들이랑만 같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은하씨는 해 선생님의 어깨 너머 어딘가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난 너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

그러자 그녀의 옆에서 툭 던지 듯 말을 내뱉은 재준씨는 다음 말을 이어붙였다.
  “그래. 고맙다.”
  “그래서 좋아. 진짜야.”
  “그래, 그래.”
  “얘는 진담도 농담처럼 받아들여서 문제라니까.”
 은하씨는 고개를 절레흔들며 그를 흘겨보았다.
  “적당히 해라, 적당히. 정말.”
 그리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 옆에 놓여있던 작은 조명을 켰다.
  “아직도 계셨네. 소등할 시간이라서요. 이제 다들 정리합시다.”
마침 뒤에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 그제야 맞은편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9시 50분이 조금 지나 있었다. 대부분의 게스트하우스는 10시나 11시에 소등한다. 여행자들이 일찍 잠에 들고 편히 쉴 수있도록 하는 일종의 배려인셈이다. 곧 앉아 있던 그와 해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그들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고 카페 조명을 껐다. 은하씨가 켜둔 작은 조명만이 내부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재준씨는 별관으로 돌아갔고, 해 선생님은 알고보니 나와 같은 방을 사용하고 있었다. 6인실에 2층 침대에 자리 잡았던 나는 안쪽에 있는 커다란 트렁크 가방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게스트 하우스
매거진의 이전글 2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