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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올라프 Oct 16. 2020

애증관계 모녀 사이

엄마와 친하진 않지만 존중하려고 노력합니다.


엄마.


많은 사람들에게 '엄마'는 애틋하고 뭉클한 단어다. 힘들 때 엄마를 떠올리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나에게 엄마란 단어는 꽤 중립적이다. 엄마를 떠올렸을 때,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분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애틋하거나 절절한 느낌은 별로 없다.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자식들을 위해 희생만 하며 살다가 서울역에서 실종이 되는 엄마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눈시울을 적셨던 소설이었지만 정작 나는 덤덤하게 읽어 내려갔다. <엄마를 부탁해>에서 묘사되는 엄마상은 우리 할머니 세대 때의 엄마들의 모습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의 모습과는 너무 달라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심정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 개인적으로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우리 엄마는 자식에게 정서적으로 기대지 않으시는 독립적인 분이시다. '나는 나, 너는 너'라는 구분선이 상당히 명확한 분이라고나 할까.

딸인 나와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공유하지 않는다. 보통 딸들은 크면 엄마와 친구가 된다고 하던데 나의 경우는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 옷을 사러 갈 때도 나는 엄마가 아닌 아빠와 쇼핑을 갔다.

엄마는 보통의 엄마들과는 성격과 기질이 많이 달랐다.


엄마가 전부였던 어린 시절에는 여느 아이들처럼 나는 엄마만 찾고 따르며 절대적 기준으로 삼았다.

엄마와의 충돌은 내가 내 마음과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 대학시절부터 시작됐다. 어린 시절에는 미처 인지하지 못했지만 그동안 쌓여왔던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야속함이 봇물처럼 터진 것 같았다.  


엄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내가 사시를 그만두고 취업을 할 즈음에 정점에 달했다.  

취업 면접이 있는 날 엄마는 잘 보고 오라는 말 한마디도 없이 화난 얼굴로 외출을 하셨다. 나 혼자 밥을 차려 먹고 서툰 솜씨로 급하게 다린 정장을 입고 면접을 보러 갔다. 흔한 응원 한마디 받지 못하고 가던 면접 길은 너무 쓸쓸하고 외로웠다.

엄마는 사시를 계속하지 않는 내가 미웠고, 나는 어느 길을 가든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고 보듬어주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 상처가 됐다.  


내가 일하는 아줌마한테 학대를 당했던 일, 내가 몇 주 동안 낫지 않는 감기로 아플 때 혼자서 병원에 다녔던 일, 준비물을 놓고 갔다고 집에 전화했는데 엄마에게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등 엄마의 존재가 간절했을 때 엄마가 내 곁에 없었던 일들만 자꾸 생각났다.


왜 우리 엄마는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처럼 애틋하거나 절절하지 않을까? 왜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처럼 살갑지 않을까? 왜 자식에 대해서 절절한 마음이 덜한 걸까?


속이 다부지지 못하고 여린 나는 내가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엄마, 포근하고 정 많은 엄마를 원했다. 내 말이라면 껌뻑 죽는시늉이라도 내는 엄마, 내가 아프면 오버해서라도 이마를 짚어주고 생강차를 끓여주는 엄마, 사시를 하지 않고 취업하려는 딸이 미워도 면접날엔 옷을 다려주고 아침밥을 차려주는 엄마, 내가 무슨 모습이든 나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엄마.  


나는 그런 엄마가 필요했다.  


평생 내 안에 차곡차곡 쌓여온 엄마에 대한 서운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마음 때문에 엄마에게 함부로 말하고 거칠게 행동했다가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야 비로소 어렴풋이 이해하게 될 수도 있는 엄마의 입장과 감정이 있을 것이다. 만약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된다면 미래의 내가 감당하기 힘들 것 같았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맞벌이를 하시면서 집안일도 해내야 했던 엄마, 엄마 나름의 생각으로는 나의 독립심을 키워주기 위해서 기꺼이 해주실 수 있던 일도 일부러 해주지 않았을 엄마, 회사에서 일을 하느라 몇 주 동안 아팠던 나와 함께 병원에 가주지 못한 엄마.

이제부터라도 내 서운한 감정 이면에 존재하는 엄마의 입장과 마음을 헤아려 보려고 한다.


미국에서 귀국 후 에어비앤비에서 자가격리 중인 딸과 사위를 위해 엄마가 몇 가지 반찬거리와 내가 좋아하는 곰국과 의정부 부대찌개를 싸서 아빠 편에 보내셨다.  


'그래, 엄마도 엄마 나름대로는 나에게 최선을 다하며 나를 사랑해 주신 걸 거야. 다만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어서 그렇지.'


내가 바라는 모습의 엄마는 아니었지만 엄마는 엄마의 방식대로 분명히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속속들이 알 수 없는 거대한 희생을 하셨을 터이다.


가끔 엄마가 이해가 안 되더라도 20대 초반 때처럼 버럭 하며 화를 내기보다는, 엄마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려고 한다. 나와는 성격과 기질이 너무나도 다른 엄마를 100% 이해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내 마음속 서운함과 상처를 스스로 깊게 만드는 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난 엄마에게 차갑게 대하지 않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미래의 나에게 덜 미안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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