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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올라프 Oct 08. 2021

나에게도 보통의 엄마가 필요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은 엄마가 있으면 좋겠어.


우리 엄마는 다른 엄마들과는 많이 다르다.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의식이 강하다. 엄마라고 해서 꼭 헌신적이어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우리 엄마는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超개인주의 성향의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주변의 엄마들은 성인이 된 자녀들도 아이인 것 마냥 챙겨준다는데 우리 엄마는 아니다. 밥을 더 먹고 싶어서 더 달라고 하면 “네가 먹을 만큼 직접 퍼서 먹어"라고 한다. (내가 밥을 풀 줄 몰라서 밥을 더 달라고 말한 게 아닌데 말이다!!) 학창 시절 준비물을 깜빡해서 엄마에게 가져다 달라고 전화하면 없으면 없는 대로 지내라며 극강의 쿨내를 풍기던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다. 회사 최종면접 날에도 잘하고 오라는 말 한마디 없이 아침부터 집을 나간 엄마 대신 나 혼자서 밥을 차려먹고 정장을 대충 다려 입고 면접장에 갔었다. 같은 면접 조였던 여자 지원자로부터 "셔츠 좀 다려 입고 오시지 그러셨어요"라는 말을 듣고 수치심에 엄마에 대한 서운함까지 겹쳐서 귀까지 빨개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은 내가 성인이 된 이후에 봇물처럼 터졌다. 어릴 때는 내가 보는 엄마가 절대적인 기준이었어서 딱히 아쉬움을 느끼지 못한 채로 살아왔다. 성인이 되고 나서 돌아보니 나에겐 일반적으로 ‘엄마'라고 하면 떠오르는 따뜻하고 정 많은 보통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과 내가 어릴 때부터 많이 외로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도 안다. 나는 성인이고 요리든 다림질이든 내가 할 수 있는 나이인 것을. 내가 모르는 엄마의 무한한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도 부정하진 않는다.

나에겐 힘든 일이 있으면 미주알고주알 속마음을 털어놓고 마음껏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 나를 아프게 한 나쁜 사람들을 같이 실컷 욕할 수 있는 사람, 기대에 충족되지 않을지라도 결국엔 나의 결정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사람, 나와 관련된 일에 있어서는 제일 먼저 발 벗고 나서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유난 떤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엄마였으면 했다.


나에겐 독립적이고 개인적인 엄마가 아니라 나를 세심히 챙겨주고 나라면 끔뻑 죽는 엄마가 필요했다. 회사 최종면접처럼 중요한 날에는 정장을 빳빳하게 다려주고 따뜻한 밥을 챙겨주는 엄마. 내가 도움을 요청할 때 주저 않고 도와주는 엄마. 내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는 엄마. 엄마는 내가 무엇을 하든 조건 없는 지지를 보내는 버팀목이 되어주길 바랐다. 많은 사람들에게 엄마가 그런 존재인 것처럼 말이다.



요즘처럼 현실의 무게가 버거울 땐 내가 마음껏 비빌 수 있는 언덕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울고 싶을 때 안겨서 실컷 울고 힘껏 위로받을 수 있는 어른이 너무나도 간절한 요즘이다.


아쉽게도 우리 엄마는 내가 편하게 기댈 수 있는 언덕이 아니지만 미래의 자녀에게 나는 따뜻한 엄마, 언제든지 비빌 수 있는 든든한 언덕이 되어주고 싶다.

그전에 나도 힘들 때 비빌 수 있는 언덕을 얼른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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