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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올라프 Sep 19. 2020

나는 공부만 했던 학창시절을 후회한다

단순계 vs 복잡계

수학능력시험 언어·수학·외국어 만점, 서울대학교 졸업, 토익 만점, 입사 연수원 성적 1등.

세상 기준에서는 엘리트이자 부모님께는 자랑스러운 딸로 살아왔던 나의 스펙이다.


나는 유복한 가정에서 경제적 어려움 없이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왔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으며 그저 학생으로서 내게 기대되는 일, 내가 잘하기만 하면 됐던 공부에 몰입했다. 나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었고 어른들의 인정과 관심을 받으면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는 좋았으나 고등학교 때부터는 정말 공부만 하게 되면서 평생 함께 갈 친구를 만들 시간을 가지지 못했다. 친구들은 오히려 나의 시간을 잡아먹는 존재로 느껴졌달까. 공부만 하고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단짝 친구가 나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사이가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난 별로 크게 개의치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관심사는 오직 최고의 대학교에 입학하고 멋지게 성공하는 거였으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 인생이 별 어려움 없이 술술 풀리고 대단히 성공한 인생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8년 전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철저히 무너졌다. 오히려 나보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못했던 애들보다 높은 강도의 맘고생을 했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예쁨을 받고 싫은 소리 들은 기억 없이 자라오다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처음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불합리한 상황을 겪게 되고 자존심이 다치는 경험을 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8년간 사회생활 중 특히 신입시절 2년간은 평생 먹을 욕을 한꺼번에 듣는다는 심정으로 회사에 출근했다. 이해하지 못할 일 투성이었고 회사에서 지내는 시간이 힘들고 괴로웠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크게 느낀 건, 세상을 살면서 정작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공부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말 중요한 건 그냥 공부가 아니라 '복잡계' 공부이다.


단순계 공부 vs 복잡계 공부


‘단순계’가 주체와 객체의 상관관계에 대한 평면적 사고체계 라면, ‘복잡계’는 객체 상호의 상관성까지 고려하는 입체적 사고체계이다. 어려운 말 같지만 단순계 공부가 암기·지식 위주의 비교적 단순한 공부라고 하면, 복잡계 공부는 단순계 공부를 넘어서 사람 사이의 역학 관계, 단일한 이론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세상의 복잡 다난한 특성 등 여러 가지를 복합적으로 아우르는 공부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동안 학교에서 배웠던 공부가 단순계 공부라면 복잡계 공부는 사람 공부, 돈 공부, 세상 공부를 포괄한다.


15년 전만 해도 지금과 같은 격변기가 아니어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학교를 들어가고 대기업에 들어가면 비교적 인생이 탄탄대로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과 같이 당장 내일의 미래도 불확실하고 변화무쌍한 시대에서는 단순계 공부만으로는 성공의 흐름을 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고도 성장기가 지난 현대 사회에서는 좋은 대학교를 나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도 경제적, 사회적 성공을 이루기가 어렵다. 죽을 만큼 노력했는데 겨우 아등바등 살게 되는 정도이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초고스펙을 가진 사람도 '복잡계' 공부가 없이는 빛 좋은 개살구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깨닫게 된 사실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복잡계 공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단순계 공부만 해왔던 나는 제도권 교육 아래에서는 최고의 대학과 과를 졸업한 엘리트였지만 사회생활에서는 갓난아기 마냥 실수를 연발하는 헛똑똑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국영수 공부는 생각보다 큰 효용을 발휘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어휘력, 셈 능력, 해외여행을 할 때 의사소통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 영어 실력만 있으면 충분하다. 정말 중요한 건 복잡계 공부이다. 사람들의 말귀를 알아듣고 상대방이 원하는 걸 캐치하는 센스, 세상에 널려있는 기회를 잡아내는 감, 돈의 흐름을 이해할 줄 아는 능력이다. 세계는 하나의 원리나 법칙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학교에서 배웠던 단순계 렌즈로만 세상을 본다면 세상의 1/4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복잡계 공부가 정말 필요한 이유이다.  


사람 공부, 돈 공부, 세상 돌아가는 공부 등 복잡계 공부 중에서도 아무래도 사람 공부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경제 선생님께서 "인생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거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지금 와서 그 말을 곱씹어보면 정말 제대로 틀린 말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자기 잘난 맛에 살고 남들에게 잘난 척하고 사는 사람이 있다면 머지않아 그 사람 주변에는 친구들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우월감에 빠져있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느끼게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밀어내기 때문이다. 인생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혼자 꾸려나갈 수 없기에 사람들과의 원만한 관계를 맺고 때론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배려하는 태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지고 보면 돈을 움직이는 것도, 정치를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모든 복잡계 공부는 사람 공부로 수렴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복잡계 공부를 제대로 시작한 지 겨우 2~3년밖에 되지 않는다. 은행에 들어오면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8년 전에는 '내가 이 일을 하려고 뼈 빠지게 공부했나?' '이게 정말 내 길이 맞는 건가' 회의감이 심하게 오고 자기 방어적인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에게 민원 넣는 사람, 나를 구박하는 여자 선배, 열심히 노력했는데 나를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하기에 바빴다. 그래도 다행히 그 당시 뼈를 깎는 인고의 시간을 외면하지 않고 견뎌온 탓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복합적인 현상으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 돈 공부는 빠를수록 좋다는 점, 사람 심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면 납득이 안 가던 일도 이해할 수 있다는 점 등 여러 가지를 사회생활을 통해서 배우게 됐다. 학창 시절 단순계 공부보다 훨씬 더 중요한 복잡계 공부 밭이 아직 내 앞에 펼쳐져 있고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지만 앞으로 꾸준히 하나씩 배워나가려고 하려고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복잡계 공부를 할수록 점차 내 지경이 넓어지면서 성장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복잡계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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